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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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5주] 이 강물의 흐르게 하라!(음성설교포함)

  • 관리자
  • 2023-03-2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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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6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이 강물이 흐르게 하라!
에스겔 47:6~12





길이요, 진리요, 생명수이신 진리이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사순절 마지막주일입니다. 다음 주에는 종려주일이 이어지고, 고난주간이 지나면 부활주일을 맞이합니다. 희망 없이 살던 우리에게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생명이요, 희망의 근거인 것입니다. 
 

■ 예언자 에스겔


에스겔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은 나의 힘’ 혹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는 기원전 597년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그발 강가에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된 해가 기원전 586년이니, 이스라엘 멸망 9년 전 긴박하던 시기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예언자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보는 예언자’입니다.

그가 본 하나님은 돌처럼 굳어진 마음을 도려내고 새 영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굳어진 마음은 생기가 없는 마른 뼈와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사해와 같은 것으로서 ‘죽음, 절망’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환상 중에 두루마리를 먹고, 마른 뼈들의 환상을 보고, 각 나라와 성전에 대한 다양한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벙어리로 만드시고 행동으로 예언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열강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듯이 될 것이요, 성전에서 흐르는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온갖 생명을 품은 풍성한 바다가 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 환상은 현실인가?


성경의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진실일까요?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읽는 말씀에는 사실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상징이고, 상징이기에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재해석된다고 해도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재해석을 통해서 진리는 우리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마른 뼈들의 환상’은 골짜기에 흩어져있는 마른 뼈처럼 희망도 없고 생기도 없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전에서 흘러간 물이 사해까지 흘러들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이것이 물리적인 사실이라면, 지금 사해는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생명의 바다여야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해수면보다 더 낮은 사해, 그래서 흐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물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해는 지금도 죽음의 바다입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환상은 사해가 물리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것이 아닙니다. 사해와 같은 죽음의 삶을 사는 이스라엘이 언젠가는 다시 생명 충만한 바다처럼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른 뼈들의 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가 다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생기가 없는 것,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에도 성령의 바람이 불면 생명의 기운이 충만해질 것이라는 비전입니다. 
포로지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은 영적인 비전이었지 물리적인 현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영적인 비전과 사실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 설교자가 해야 할 일


성서의 이야기하는 방식을 알지 못하면 문자주의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문자주의에 빠지면, 상징으로 읽어야할 것도 문자로 읽어 하나님의 말씀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늘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여전히 문자주의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좋은 말씀만, 자신의 논리를 펼칠 수 있는 말씀만 취사선택합니다. 반쪽짜리 신앙입니다. 성경의 언어는 사실도 있지만, 상징의 언어가 대부분입니다. 그 상징을 오늘의 말씀으로 풀어내어 전하는 일을 하는 이들을 설교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씨름을 할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문제에 대해서도 눈감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예언이 남왕국 유다나 이스라엘의 현실적인 삶과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경고, 사회구조의 문제 등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설교자들에게는 ‘세상얘기하지 말고 성경말씀만!’이 강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성경뿐 아니라 시대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과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는 안목과 그것을 정리해낼 수 있는 묵상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고민 없이 “믿습니까, 아멘!”만 강요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 상선약수(上善若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흘러가면서 죽은 물을 살려내고,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살려냅니다.

도덕경 8장에 나오는 ‘상선약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라는 의미인데, 왜 물처럼 되는 것이 가장 선한 것인지 몇 가지만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합니다.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움트게 하는데, 그렇게 하고자하는 마음이 있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마다 사랑이 넘쳐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해야겠다.’라는 의지 없이 그냥 그곳에 계심으로 ‘사랑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물은 정결케 합니다. 에스겔서 36장 25절에 ‘물을 뿌려 정결케 하면 새 영과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세례와 침례도 여기에 기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물은 정결하게 하고자 자기가 더러워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걸레 빤 물을 상상해 보십시오. 걸레를 깨끗하게 하는 대신, 물은 더러워지지요. 그걸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정결케 하려고 인간의 모든 죄 짐을 짊어진 어린 양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외에도 자기를 낮추어 늘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는 법이 없고, 굽은 길은 돌아가고, 패인 웅덩이는 채운 후에 흐르고...이런 자연현상을 보면서 노자는 ‘상선약수’를 말한 것입니다.
 

■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이런 의미들을 가진 물이 ‘성전’에서 흘러나와 곳곳으로 흘러갑니다.
흘러가며 강 양쪽에 많은 나무들을 살려내고, 동쪽으로 흘러나가 아라바로 내려갔다가 바다로 흘러갑니다. 여기서 바다는 ‘사해’입니다. 사해로 흘러간 이 물은 죽은 바다를 살릴 것입니다.

9절 말씀에서는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고,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여러분을 적시어 생기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무엇입니까? 그 물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면 마른 뼈와 같고 사해와도 같던 우리의 삶이 생기가 돌고, 생명의 바다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무엇인지 알려면 왜 이스라엘이 마른 뼈와 같은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 왜, 마른 뼈와 같은 삶을 살게 되었는가?


왜 이스라엘이 마른 뼈처럼 살게 되었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미 수많은 예언자들이 회개를 촉구했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에스겔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끝내 멸망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회복을 약속하셨지만, 결국 북왕국이스라엘은 회복되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출애굽의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고 가나안 땅의 풍요에 젖어 살아갔습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믿음생활’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의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와 같이 되었고, 죽음의 바다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하나님입니다. 오늘날의 언어 표현하면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는 성령님이요,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믿음을 회복하라


저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계도, 대한민국도 위기의 이스라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기독교국가 미국이 초강대국이라고 하여도, 대한민국 곳곳에 교회가 없는 곳이 없다고 해도 무늬만 기독교국가요, 교회일 뿐 하나님의 말씀과는 너무도 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세한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속히 회개하지 않으면, 돌이키지 않으면, 죽음의 골짜기에 나뒹구는 마른 뼈처럼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추상적이니까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삶이 마른 뼈, 사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에 지쳐서 사해처럼 변해버린 우리의 마음에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돌게 해야 합니다. 빈들의 마른 풀처럼, 죽음의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처럼 생기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들, 우리를 죽음의 바다로 내모는 찌꺼기 같은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그것은 성령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을 회복하고, 바로 세우셔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고, 그 강물을 누군가의 삶 속으로 흘려보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진펄과 개펄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서 짚고 넘어가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1절에 나오는 ’진펄과 개펄은 깨끗하게 고쳐지지 않고‘라는 말씀입니다. 진펄과 개펄은 수렁이나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입니다. 물이 고여 있고 가득 차 있어서 강물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강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여 있으니 당연히 썩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고여 있는 신앙‘에 대한 경고입니다.
삶으로 살아지지 않는 신앙, 변화를 거부하는 신앙, 자기 생각에 갇힌 신앙, 이것이 진펄개펄과 같은 신앙입니다. 진펄과 개펄이 썩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강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말씀을 삶으로 살고자 힘쓰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신앙의 성숙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진펄과 개펄도 은혜의 강줄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 마지막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온 여러분에게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이 강물이 흘러들어가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또 하나의 강줄기가 되어 누군가의 삶으로 흘러 들어가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거둠기도]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주님, 죽음의 길을 걸어가던 저희들에게 오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저희들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오나 그 은혜를 잊고 마른 뼈처럼 썩어질 진펄과 개펄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주님, 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을 받아들여 다시 새롭게 거듭나게 하옵소서. 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에 젖어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삶인지 알게 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또한 작은 강물이 되게 하셔서, 이 세상에 생명의 기운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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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물이 흐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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