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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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3주] 광야를 지나

  • 관리자
  • 2023-03-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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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셋째주일(3월 12일)
광야를 지나
출애굽기 17:1~7


삶을 살아가다보면 맑은 날도 있지만 굳은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 항상 맑은 날만 이어질 수 없으며, 흐린 날도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그 날 앞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굳은 날을 살아가시는 분들을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셔서 맑고 화창한 봄날을 주시길 바랍니다. 

 

■ 카타르시스(정화)의 시간


지난주에는 바다의 풍랑에 관한 묵상을 하며 그림을 한 점 그렸습니다. 묵상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잔잔하기 만한 바다는 없다
풍랑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풍랑이 온다고 바다는 절망한 적 없다
오히려
심연까지 뒤집어 
생명의 바다, 카타르시스의 카이로스
그렇다
잔잔하기 만한 바다는 썩는다
풍랑이 일어야 바다는 썩지 않는다

 

■ 성서정과(출애굽기 17:1-7)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과 비교해 보면 중간을 향해 가는 여정 즈음이되겠습니다. 
출애굽기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은 출애굽하여(1:1~15:21) 광야로 나온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물이 피가 되는 기적,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두 번째는 시내 산에 도착하기 전 광야생활(15:22~18:27)을 하던 시기입니다. 이때 쓴 물이 단 물로 바뀌는 마라의 기적,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는 기적 등을 경험합니다.
세 번째 부분은 시내산 체험(19:1~40:38)과 성막봉헌까지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정과는 출애굽기 두 번째 시기에 해당합니다.
 

◾맛사 므리바


이스라엘이 직면한 광야는 단순히 지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는 신학적으로 혼돈의 상태이고, 고통의 상태요, 역경의 상황입니다. 광야는 척박한 곳이라, 사람은 물론이고 동식물도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장정만 육십만 명이 넘는 대규모였습니다. 척박한 광야에서 인간생존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의식주의 문제 중에서 인간을 가장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것은 ‘먹는 문제’입니다. 먹는 문제 중에서도 ‘물’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는 40일 이상도 견딜 수 있지만, 물은 사나흘만 먹지 않아도 안 됩니다. 그래서 단식하는 분들도 물은 먹습니다. 물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물이 있는 곳은 생명이 풍성하게 자라납니다. 그래서 인류 문명도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 감사에 대한 망각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입니다.
어쩌면 잊어야 할 것은 잊지 못하고, 잊지 말아야할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목이 말라 아우성 칠 때, 쓴물이라 마실 수 없었던 마라에서 단물을 얻었던 감격을 망각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얼마 안 되어 르비딤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에게 다시 물문제가 불거집니다. 그러자 백성이 또다시 모세를 원망하며 ‘물을 달라’고 이우성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일 강을 치던 지팡이를 들고 나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쥐어짜도 물 한 방울 나올 수 없었던 반석에서 물이 나와 백성들은 목마름을 해결합니다. 

모세는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습니다. ‘맛사’는 ‘이스라엘이 다투었다’는 뜻이요, ‘므리바’는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라는 뜻입니다.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였다’는 것은 부끄럽고, 잊고 싶은 역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맛사 므리바’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잊혀진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맛사 므리바’를 기억할 때마다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였던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들을 사랑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을 망각했을 때 이스라엘이 다시 광야의 삶을 살아간 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Homo passus ‘고통을 감내하는 인간’


삶의 여정에서 누구도 ‘역경’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역경이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미리 대비할 시간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우리를 힘겹게 하는 그 무엇입니다. 인간은 ‘불확실성 속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상상하고 대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상상과 준비한 모든 노력이 무산된 상황,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경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진리인 것처럼, 어떤 역경이라도 기회로 삼이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진리입니다. 삶은 역경을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경은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같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교학자 배철현 교수는 ‘고통은 인간을 온전한 인간으로 서서히 조각하는 신의 손길이다’라고 하며 인간을 ‘호모 파수스 Homo passus’라고 정의합니다. ‘고통을 감내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성장하는 인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직면한 ‘광야의 시간’은 우리 삶의 군더더기를 없애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또한, 이 시간은 신앙의 군더더기를 없애버리고, 오롯이 진리를 향해 선명하게 설 수 있게 하는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40년 광야의 시간, 모세가 경험한 시내 산에서의 40일,  호렙 산을 향해 40일 주야를 걸어가는 엘리야,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던 예수님, 그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런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사람을 세우셨고, 광야로 나간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광야의 시간을 살아가신다고 여겨지신다면, 광야에 서 있는 시간이라면, 어리석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시고, 광야를 지날 때에 하나님께서 임마누엘하실 것을 믿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 유약강강(柔弱勝剛强)


오늘 병행본문 시편 95편의 말씀 오늘 출애굽기의 말씀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8절에 “므리바에서처럼, 맛사 광야에 있을 때처럼, 너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하십니다.

“완고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다윈의 가설을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인류의 석학들이 밝힌 바는 다릅니다. 인간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는 능력,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서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도덕경 36장에 ‘유약승강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저는 봄에 솟아나는 새싹을 보며,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봅니다. 그리고 제 삶을 돌아보니 강하게 살았을 때보다 부드럽게 살았을 때 더 유익했습니다.
 

■ 광야를 지나

광야는 거칠고 강합니다. 이 거칠고 강한 광야에서 강대 강으로 맞서 완고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코 광야를 지나지 못할 것입니다. 광야의 시간을 보낼 때에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시험하고, 모세를 원망한다면 얻고자 하는 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 거친 광야의 희생양이 될 것입니다. 그 광야를 디딤돌로 삼고, 기회로 삼아 광야를 지나가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생각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광야의 시간 앞에 직면하면, 이런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쉽다면, 누구나 광야를 지날 것이고, 광야라고 하지도 않겠지요.
여러분, 사순절기에 광야에 서 있는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하여 돌처럼 굳은 우리의 마음에 생명수가 솟아나는 기적을 이루어 가는 삶이시길 축복합니다.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시는 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거둠기도]


하나님, 광야의 시간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고난도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넉넉히 광야를 지나가게 하옵소서. 평안할 때에는 감사하게 하시고, 고난의 때에는 기도하게 하옵소서. 가정마다 성부 하나님께서 임마누엘로 지켜주시고,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교회와 광야를 지나는 것과도 같은 이 나라를 지켜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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