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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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관리자
  • 2020-02-02 0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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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태복음 6:9~10


오늘은 주현절 넷째주일이며, 해외선교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현현하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과 활동하시던 곳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매월 첫 주에는 온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지난해까지 ‘간세대 예배’라고 했습니다만, 올해부터는 ‘온가족 예배’라고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 이유는 ‘간세대’라는 것이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바로잡은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기 전에 이원표 목사님께서 같은 제목으로 아이들이 알기 쉽게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의미하는 바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며, 임마누엘 하나님으로서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이 가지는 의미를 어른들의 언어로 바꾸어 확장시켜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믿으며 섬길 수 있는 대상을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유대인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기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죄인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도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는 우리의 뜻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바른 기도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모범적인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아빠, 아버지여...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기도하심으로,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의 쓰디 쓴 잔을 마실 것을 다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끊임없이 자신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기도의 모범


예수님은 예배와 기도에 앞서 중요한 것은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응답을 받으려면, 이웃과의 불화를 없애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이웃을 용서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가 이웃을 용서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주기도문의 서문에 해당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짧게 ‘아버지’라고만 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기도는 독백이 아니라 어떤 대상과의 영적인 대화며 교통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대상은 물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 ‘하늘에 계신’ 하나님


마태복음에서는 15번이나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어느 곳에나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일정한 장소에 매이시거나 특정한 민족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는 분이시므로, 예루살렘 성전이나 시온산 어떤 거룩한 장소에 제한 받지 않으시고 온 인류의 하나님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우리가 다른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의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진 삶, 우리의 일상에서 임마누엘 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분은 ‘절대 타자’로서 우리 곁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 계시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것과 다른 분으로서 인간의 이해와 이성을 넘어선 ‘절대 타자’라는 의미를 담아 ‘하늘에 계신’이십니다.

셋째, ‘하늘에 계신’이란 그 하나님이 혈육관계를 가진 분이 아닌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형제의 관계를 혈육에서 찾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31절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그의 모친이요, 형제라고 하심으로 새로운 가족 개념을 제시하십니다.

넷째, ‘하늘에 계신’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육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하늘에 계신 아버지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면서 또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 우리 아버지


구약성서에는 하나님을 직접 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상은 근저에 깔려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뜻에서, 둘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본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신 32:6, 렘 31:9). 이렇게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로는 생각되었지만 개개인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자주 ‘아버지’로 불릴 뿐 아니라 개인이 하나님을 ‘아빠(아람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을 아빠라고 하거니 ‘나의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이전에 없었던 아주 독특한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또는 ‘나의 아버지’라고 직접 부름으로써 자신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임을 밝히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와 ‘너의 아버지’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부른 ‘나의 아버지’와 제자들의 아버지가 다르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이 아들이 되는 것은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것인데 반해서,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롬 8:15, 갈 4: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그러므로 우리는 ;양자의 영, 그 아들의 영’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초대교회 성도들, 그리고 우리 역사도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 멀고도 가까운 하나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絶對他者(절대타자)’로 우리 인간이 함부로 접근하거나 인간의 이성을 다 알 수 없는 신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셔서 더럽고, 추한 것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가까이 하기에는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또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수난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빠셨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아빠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멀리 계시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의 모든 청원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빠이신 하나님께 직접 아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우리는 첫째, 비록 공로도 없고 죄투성이지만 은혜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게 된 것이요, 둘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게 되었으니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그가 온전한 것처럼 온전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날마다 자기 몫에 해당하는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좁을 길을 걸어가며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의 집약이 ’형제사랑 = 하나님 사랑‘인 것입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디에나 계신 無所不在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곳은 인간뿐 아니라, 인간이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곳, 인간이라는 종을 넘어선 모든 피조물, 나뿐 아니라 이웃 안에도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이들은 이 모든 것을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누구인지, 이웃은 누구인지, 더불어 살아가는 창조세계는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앎‘의 과정이 바로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과정이요, 하나님과 이 모든 관계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예배와 기도에 앞서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선각자의 말을 전해 드리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아들이나 딸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라 말하지 마십시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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