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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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는 삶의 시작

  • 관리자
  • 2020-01-26 0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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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의 시작
데살로니사전서 4:7~12


■ 품위, 품격(ευσχημονωσ -euschemonos)은 어디서 오는가?


말은 그 사람입니다.

말은 입으로 나오지만,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의 근원은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자어 중에서 ‘입’을 뜻하는 ‘구(口)’자가 가장 많이 들어있는 단어는 ‘품(品-물건, 榀-집의 뼈대)’자가 아닐까싶습니다. 집의 뼈대를 뜻하는 ’榀‘자는 나무’木‘ 변이 붙음으로 ’뭔가 뼈대를 이루려면 ’나무에 입을 묶어 두어 한결같게 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뼈대를 이루는 것이 이랬다저랬다 하면 안 되겠지요. 그래서 나무에 묶어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건을 뜻하는 ’品‘자는, 입’口‘자가 세 개인데,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 선달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입니다. ’입‘이 세 개 모이면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거짓말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거짓말을 전하면 ’설마‘하다가, 두 번째 사람이 꼭 같은 거짓말을 하면 ’정말?‘하고, 세 번째 사람이 또 같은 거짓말을 하면 ’사실‘로 믿는 팔랑 귀를 가진 인간을 빗댄 단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品位‘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한 것에 사람이 서있는 모습입니다. 즉, 말한 대로 사는 것이 ’품위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品格‘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한 바를 바로잡아 나무에 묶어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개역성경 12절에 ’단정히 행하고‘라는 말이 ’품위(ευσχημονωσ - euschemonos)’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40절에서는 ‘적절하게’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니 ‘품위’를 지키려면 언어생활이 단정하고, 시의적절한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이라는 말은 이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품격 높은 사람이 되고 싶으시다면, 언어생활을 단정하게 하시고, 시의 적절하게 필요한 말을 하시고, 혀를 제어하십시오. 나이가 들어 존경을 받으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도 있습니다.

 

■ 친교의 식탁과 대화의 주제


한남교회는 예배를 마치고 나면 친교실에서 식탁의 교제를 나눕니다. 저는 교인들 간의 식탁의 교제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맛있고, 풍성하게 밥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남교회 점심식사는 서울북노회 교회들 중에서 상위클래스에 속할 겁니다. 아직 친교실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으시다면 오늘을 꼭 가셔서 친교의 식탁을 나누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식사를 하면서 뭘 하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을 먹지 않죠? 제가 어릴 적에만 해도 밥을 먹으면서 말을 하면 어른들한테 꾸중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는 ‘밥상머리교육’이라고 해서,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하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교육청에서도 밥상머리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저도 강원도교육청의 ‘밥상머리교육 강사’입니다.

친교실에서 식사를 하시다보면, 친한 분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대화가 꽃이 핍니다. 그 대화의 내용이 뭡니까?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친교실에서 식사를 나누실 때에는, 품위 있고, 품격 있는 신앙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셔서 듣는 이들에게 복을 끼치시길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 서신들 중에서 최초로 기록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빌립보 교회에 이어 유럽 지역에 세워진 두 번째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에 머문 시간은 3주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으나 유대인들 중 일부, 경건한 그리스인, 제법 많은 귀부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이 불량배를 동원하여 소란을 일으키고,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그리하여 신도들이 야밤에 그를 빼돌려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자마자 그들을 돌볼 겨를도 없이 데살로니가를 떠난 바울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보내어 교인들의 형편을 살피게 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에게서 들려온 소식은 우울한 소식도 있었지만, 크게는 곤경과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잘 지키고 있으며, 바울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사도 바울은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고 기뻐하며, 고린도에서 그들에게 애정을 담아 편지를 보냅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갈리오 총독의 법정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통해서 51~53년 경에 쓴 편지로 추정할 수 있으므로 바울 서신 중에서 최초로 기록된 서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애정을 담아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들에게 신앙의 근본을 가르칩니다. 신앙의 근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 7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개역성경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라는 말씀을 표준새변역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더러움에 빠져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러움(άκαθαρσία - akatharsia)은 ‘욕심의 노예가 된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에 반해 거룩함(άγιασμω - hagiasmo)이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욕심의 노예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거룩한 삶은 낯선 것으로 보였으며,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불량배를 동원하여 소란을 일으키고 사도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버리는 자는(거룩한 삶이 무엇인지 전했음에도 여전히 욕심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을(사도 바울) 저버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8).”

 

■ 거룩한 삶이란?


더러움(άκαθαρσία- akatharsia)은 ‘욕심의 노예가 된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뜻이 있는데 ‘사치의 노예가 된 상태, 불순한 동기를 품은 상태’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이란 자기 안에 있는 욕심을 덜어내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니라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聖化)된 삶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화의 삶은 우리의 일상에서 욕심을 덜어내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밥을 먹든, 길을 가든, 사람을 만나든, 일을 하든, 옷을 입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것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로, 그들은 사람을 대할 때 사랑으로 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너희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하면서, 사랑에는 수고가 따라야 함을 강조합니다.

수고(κόπος - kopos)의 문자적인 의미는 ‘슬픔으로 가슴을 두드리다’라는 뜻으로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혹은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슬픔과 고통을 감내하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조용하게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말씀은 자기를 드러내거나 돋보이려고 나서지 말고, 내적인 고요와 침묵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떠벌이거나 광고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하라는 것입니다. 산상수훈 마태복음 6장에서는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4),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18)‘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은 중뿔나게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조용하게 해야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셋째로,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 있던 초대교회는 아주 강한 영적인 일치를 맛보았습니다. 사람들을 가르던 모든 담이 무너졌을 뿐 아니라, 모든 물건을 통용하는 인류 최초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것은 ’곧 오시리라는 주님의 재림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이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정결한 신부로 주님을 맞이한다고 세상일을 작파하고 기도하고 말씀 읽는 일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은 그들이 문자적으로 이해한 시간과는 다르게 오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가 쓰인 시기를 감안하면 ”곧 오리라“하시던 예수님이 20년이 지났는데도 재림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물론 데살로니가교회가 생긴지 20년이 된 것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 새워진 교회들은 초대교회 공동체가 실현했던 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문제가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재정적인 문제였습니다. 기도만하고 말씀만 읽고 전도만 하고자하는 이들은 초대교회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일 주님이 재림하신다 해도,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라는 말씀은 교회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애쓰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들의 품위

이렇게 사랑의 수고를 하며, 조용하게, 자기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품위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12절에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라는 말이 ’품위(ευσχημονωσ-euschemonos)’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권면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꼈습니다. 외인들에게 ‘칭송’을 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는 사도행전 2장 47절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 교인들은 매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매력은 잡아당기는 힘입니다. 그래서 <흩어지는 교회>의 저자 호켄다이크(J.C.Hoekendijk)는 선교에 대해서 정의하기를 ‘매력의 감염’이라고 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력 있는 사람입니까? 자신이 흠모할 만한 사람입니까? 배철현 교수의 <위대한 리더>라는 책에서 강조하는 바는 ‘위대한 리더란, 자신이 흠모할 만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위대한 리더는 스스로에게 리더인 사람입니다. 그(녀)는 항상 자신에게 감동적인 리더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것을 위해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매력이란, 사람을 끄는 아우라입니다. 그래서 자석과 같습니다. 매력있는 여러분과 매력있는 한남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볼썽사납다’고 합니다. 품위가 없다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고, 마음 씀씀이나 지향점도 다르지 않고, 오히려 신앙적인 확신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혐오하고 정죄합니다. 신앙의 ABC도 없고, 예의도 없고, 상식도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매력적인 공동체였습니다. 누구든지 포용하는 문턱이 낮은 공동체였지만,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는 날마다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는 흠모할만하며, 건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공동체입니까?

최소한 한남교회와 한남교회에 속해있는 여러분은 볼썽사나운 신앙인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좋은 말을 하시고, 그 말을 붙잡아 매어서 말한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도우셔서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창조해 주실 것입니다.

 

[거둠 기도]

하나님, 세상이 어둡습니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방황하다보니 우리도 어둠에 물들어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어둠을 닦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볼썽사나운 존재가 아니라, 매력적인 존재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설교문은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의 <그리스도인의 품위>라는 설교가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많은 부분 생각이 겹치고, 성경본문을 주해하다보니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표절설교는 아니지만, 딱히 나만의 독창적인 것으로부터만 온 것은 아니기에 밝히는 것입니다. 주석서를 참고할 때에도 늘 같은 고민입니다. 설교가 어디까지가 표절인지의 문제는 설교자들의 한결같은 고민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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