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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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그리스도인(골로새서 1:9-12)

  • 관리자
  • 2018-11-11 0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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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그리스도인
골로새서 1:9-12

 

 

 

1970년대 초반, 세계적으로 기독교 반지성주의가 횡행했습니다. 이 시기는 인류가 계몽주의 이후 지식이 급격하게 일반 대중에게 확산하면서 합리적인 이성에 기초하지 않는 것을 배척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류는 성경에 기록된 신앙 고백적인 말씀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띠기도 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기독교계는 하나님의 말씀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믿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반지성주의’라는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지성은 신앙을 냉랭하고 기쁨이 없는 신앙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에 교리같이 고리타분한 것보다는 체험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지성의 역할을 거의 없다고 주장하면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는 것’을 신앙의 가치처럼 여겼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맹신적인 신앙’도 이때 체계화되었습니다.

 

 

과연, 이런 생각은 바른 것일까요?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최근에 출간한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계속 공부해야 한다.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힘을 입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공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매우 실제적이고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믿음은 비합리적인 것이요, 무조건 믿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지성을 잃어버린 기독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절에서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2).”고 유대인을 비판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은 구약성경에 대해서 해박하다 생각했고,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을 믿는 데 열심이었지만, 구약성경에서 계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몽매함에 얽매여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핍박했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식이 없는 열정,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북음과 부활 이후에도 이어졌기에 초대교회를 열정적인 사명감으로 핍박하면서 복음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광화문이나 남대문, 서울역 등 도시의 거리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하나님은 올바른 지식에 근거한 열심과 뜨거운 지식을 원하고 계시지, 지식없는 열정, 지성 없는 신앙을 요구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인간의 교만함은 경멸하시지만, 그분이 창조하신 지성을 경멸하지는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 지성의 성경적 기초

 

 

오늘날 세계는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다른 세상 지식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세상 지식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상치되는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맞서 싸워야 합니다. 싸우려면 적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10장 4-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이 싸움은 세상의 지식에 숨어있는 인간의 거짓을 무너뜨리는 진리의 싸움에 관한 이야깁니다. 그렇다면, 세상 지식에 숨어있는 거짓을 분석하려면 무엇을 사용해야 할까요? 지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라고 할 때, 하나님의 형상의 ‘사고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은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에덴동산을 인간에게 맡기셨고, 인간이 그분과 협력하시기를 바라셨고,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하시기를 기대하시면서, 다른 동물에 대한 통치권을 맡기셨습니다.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의 다른 점이라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인간은 지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창조하셨고, 다른 피조물들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2편 9절에서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성적 판단에 근거해서 행동하도록 창조된 인간이 본능에 따라 살아가면 짐승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창조된 본성을 거스르고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아갈 때에, 즉 인간의 지성이 타락했을 때 인간은 죄를 범했습니다. 성경은 이를 ‘어두워졌다’고 표현합니다. 지성이 어두워지면, 남는 것은 동물의 생각, 즉 ‘육신의 생각’만 남는 것입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 4:18).”

 

■ 왜, “오직 예수!”인가?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시대의 풍조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말(언어)로 소통하시는 것입니다. 말을 통해서 소통한다는 것은 말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지성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성에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분의 계시는 이성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을 향한 것이므로 인격적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은 인간의 지혜가 만나 구원 역사가 이뤄집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 구속하시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인간의 지성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징표’로 그의 독생자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구속사건 덕분에 왜곡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이 열렸기에 오직 예수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본질적으로 우리를 생각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고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말씀으로 소통하심으로 우리를 지성적인 존재로 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반지성주의, 무조건 믿는 맹신은 참된 경건이나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몇 말씀을 소개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4:6) /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사 5:13).”

“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잠 1:22).”

 

신약의 사도들 역시도 거룩한 지혜를 습득하고, 그것을 거룩한 삶에 적용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 1:9-11).”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 1:9-10).”

 

성경은 지식, 지혜, 분별, 총명 같은 단어들을 되풀이하면서 지성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 없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 지성과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의 받으시는 참된 예배는 진리 안에서, 자신들이 어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지를 알고 뜻을 다해 사랑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도 예배는 기본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시 96: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과 일하심이 무엇인지 아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우리의 구속자이신 것을 알아야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은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와 죽음과 승천, 그분의 선물이신 성령님과 새로운 피조물이 교회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만 제대로 예배드릴 수 있고, 제대로 예배할 수 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므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믿음은 덮어놓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지성적입니다. 신앙은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무조건 믿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사고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만한 하나님을 사려 깊고 확신 있게 따져보고 신뢰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진리에 대해 수많은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지침에 대해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죄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그분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사탄의 유혹을 받으실 때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이기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시험극복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명맥한 성경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7).”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우리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주신 지성을 사용하기보다 비이성적인 충동이나 감정, 직감 같은 것을 의지해 행동하려고 합니다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정,의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알기 위해서, 전하기 위해서 지성을 의지한 감정에 호소하면서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성적으로 깨어있고, 성경적인 확신을 가진 이들을 부르셔서 동역자로 삼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지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성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영적인 천박함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부요한 은혜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지식은 어떻게 얻습니까?

주일예배를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성경 묵상을 통해서, 다양한 인문학 도서를 통해서 얻습니다. 수요일 저녁마다 우리는 성경공부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11월 14일부터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존 스토트 목사의 책을 읽으면서 성경공부를 합니다. 제가 온 이후, 출애굽기, 산상수훈, 네비게이토성경공부교재 시리즈, 제자도를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이제 <제자도>를 심화시킨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5주간 공부할 것입니다. 지금은 20명 정도 참석하고 계시는데, 이 모임과 나는 상관이 없는 모임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한 주제만이라도 참석하셔서 모임이 활성화되길 바랍니다.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만이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고 자신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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