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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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복음 18:33~37)

  • 관리자
  • 2018-11-25 0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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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교회력설교)
요한복음 18:33~37

 

 

오늘은 창조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교회력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서의 본문은 요한복음 18장 33~37절의 말씀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던 예수님이 사람들과 대제사장들의 의해 고발당하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심문을 당하십니다. 유다 제5대 총독인 빌라도는 될 수 있으면 자기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 역사가 필로의 빌라도에 관한 평가는 ‘완고하고 부패한데다가 잔인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가 인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군중의 마음, 즉 ‘민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가장 싫어하던 것 중 하나가 ‘민중봉기’였습니다. 만일, 군중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봉기가 일어날 수도 있고, 자기가 다스리는 자치지구에서 봉기가 일어나면 로마제국으로부터 문책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속내가 있었으므로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빌라도는 유대인과 대제사장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라는 사도신조의 고백으로 빌라도는 영원히 예수를 죽이는데 관여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는 로마제국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은 유지했지만, 그의 뜻과는 다르게 예수를 십자가에 죽도록 넘긴 자가 된 것입니다.

 

■ 질문과 대답

 

 

빌라도는 관정에서 “당신이 유대인의 왕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반문합니다. “그것이 당신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말입니까?” 하고 물으십니다. 이에 대해 빌라도는 “나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당신의 동족과 제사장들이 당신을 내게 넘겼을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모르겠다.”는 말이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가 유대인에게 고발당하여 여기에 서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유대인의 왕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당신은 왕이지 않소?” 라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말한 대로 내가 왕이요.”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덧붙여서 “나는 진리의 왕이지, 유대인의 왕이 아니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그가 ‘진리에 속하지 않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는 말씀대로 그는 예수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은 39절에서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질문과 대답에 나오는 ‘왕’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이 질문과 대답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그들이 기다리던 왕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로서 정치적으로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해서 다윗 왕조와 같은 전성기를 구가할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에 대해 이토록 무능한 예수는 자신들이 기다리던 왕이 아니었습니다.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존재가 감히 로마 제국을 향해 항거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자라야 자신의 자리가 보장됩니다. 자기가 능히 제어할 수 있는 유대인의 왕, 그러니까, 예수가 유대인이 그토록 갈망하던 왕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유대인들도 빌라도도 진리에 속해있지 않고 육에 속해 있으므로 진리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왕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도 빌라도도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1)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유대인의 현실은 나라를 빼앗기고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꿈꾸는 나라는 로마제국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세상이었습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 속한’ 로마의 현실은 초강대국으로서 군사력으로 현상 유지되는 세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현실 속에서 유대인이 꿈꾸는 나라나 로마제국이 유지하고자 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나라는 그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꿈꾸는 ‘내 나라’와 ‘이 세상에 속한 나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유대인이 꿈꾸는 나라를 이루려면, 무력으로 로마 제국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로마 제국이 꿈꾸는 나라를 유지하고 이루려면 무력으로 통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이루고자 하는 나라나 로마 제국이 이루고자 하는 나라는 ‘폭력과 무력’에 기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하게 ‘비폭력’입니다. 군림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동은 사랑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사랑 역시도 세상이 사랑하는 방식과 다를 뿐 아니라 그들이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미워하고 무시하던 사회적인 약자와 죄인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나라의 왕은 군림하고 지배하지만, 내 나라, 즉 하나님 나라의 왕은 섬김의 왕이요, 기꺼이 그 백성을 위해 죽음도 마다치 않는 왕입니다. 그런 까닭에 ‘진리에 속한 자’만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에게 속한 자만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속한 자들은 “내가 왕이니라.”라는 예수님 말씀의 진의는 물론이고, 그가 공생애를 통해서 보여준 행위를 통해서 예수님이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이 세상에 속한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고자 말다툼하고, 예수님을 팔고, 도망하고, 배반합니다.

 

■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상징하는 단어는 다양합니다. ‘말씀, 진리, 생명, 길’ 등이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이 진리 안에 속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예수님께서 잡히시어 심문을 당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제사장은 물론이고, 빌라도도 모르고, 심지어는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신은 우리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지, 우리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지만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지만, 그분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그분을 알기 위해 힘쓰라고 격려하시며,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도록 하셨으므로 ‘그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1장 20절의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셔서 하님의 존재를 알게 하심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이에 서 있습니다. 주님을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사이의 존재가 인간입니다. 온전히 알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 때문에 신앙은 곧 믿음입니다. 다 알아서 믿는 것이 아니라, 다 알지 못하지만 믿고, 그 믿음 때문에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진리 안에 거한다고 인정받는 것이 ‘칭의’라는 신학적인 개념입니다.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함으로, 우리는 그의 음성을 비로소 듣게 되는 것입니다.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2)

 

 

같은 소제목으로 다시 이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이들 중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속히 벗어나야 할 곳’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원론적인 생각에 빠져서 ‘내 나라’와 ‘이 세상’을 대립구도로 설정하고, 이 세상을 더러운 곳으로 규정하여, 이 세상의 일을 의미 없는 일인 것처럼 치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이 곧 저주받은 곳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고, 이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게 하셨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자녀와 교회에게 “너희는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마 5:13-1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풍성하게 살아갈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내 나라, 즉 ‘하나님 나라’에 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하늘을 사는 존재’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지금 여기, 이 세상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이음공동체, 이것이 교회입니다.

 

■ 그들은 왜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했는가?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던 유대인들과 제사장들이나 빌라도는 왕이신 예수님을 눈앞에서 직접 보면서도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먼저, 빌라도의 관심사는 온통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것이었고, 이 권력욕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육에 속한 것에만 관심을 둔다면 우리도 빌라도처럼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지평을 넓히십시오. 공동체의 구원과 이웃의 복에 관해, 영적인 것에 관해 관심을 두십시오. 유대인들과 제사장들은 편협하게 굳어진 자신들의 메시아 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신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학’이라고 하면, 목사나 신학자들만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신앙관도 결국은 ‘신학’에 입각한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관을 갖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언제나 그것은 인간의 한계성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자기의 신앙만 옳다고 생각하면, 편협해집니다. 우유부단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굳어진 신앙, 화석화된 신앙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도 다 알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 창립 64주년을 향한 한남공동체에 주시는 말씀

 

 

이제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창립 64주년을 향해 가는 한남공동체에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오로지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관심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빌라도를 통해서는, 우리의 관심사가 육에 속한 생각을 넘어 성령의 일로 향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남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교회가 되려면 우리의 관심사를 성령의 일로 확장해가야 합니다. 둘째, 굳어진 메시아 관을 가진 유대인들과 제사장을 통해서는, 끊임없이 개혁되고 성화하는 신앙의 진보를 이뤄가야 한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매일 새롭게 거듭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셋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찰과 고민과 헌신을 통해서 제대로 된 교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아니라, 군중심리에 휩쓸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군중이 아니라 책임 있는 공동체의 주인이 되어 한남교회를 세워주십시오. 여러분이 꿈꾸는 교회의 비전을 나누시고, 주인의식을 갖고 교회를 세워가십시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남교회는 비록 땅에 속에 있지만, 하늘에 속한 거룩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면’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관심사의 지평을 이웃에게 향하고, 끊임없이 거듭나고, 한남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위임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비밀을 보여주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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