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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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마가복음 10:35-45)

  • 관리자
  • 2018-12-09 0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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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마가복음 10:35-45

 

 

대림절 첫 번째 주일에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에게 빛으로 오셔서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분,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빛을 비추어 주실 때에, 예수님은 말로만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 ‘말구유’로 오셨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나귀’를 타셨으며, 고난받으시기 전에는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고, 고대 세계에서 가장 두려웠으며 가장 잔인한 처형 방법이었던 나무 십자가를 지심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이 사건을 당시 유대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신명기법전 21장 23절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는 말씀에 비추어보면 예수님이 얼마큼까지 낮은 곳까지 내려가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손에 죽임을 당하시기까지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판결을 하나님이 뒤엎으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은 바로 ‘부활’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인간의 판결을 하나님이 뒤엎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끝없이 낮아지시고 섬기신 일을 통해서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을 열어가신 것입니다. 대림절기에 예수님을 섬김의 도를 본받아 부활의 영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을 섬기셨다.”

이것이 그 당시의 종교나 오늘날의 모든 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다른 종교는 신을 섬기는 것을 통해서 신앙을 확증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오히려 ‘하나님의 섬김을 받음’으로 신앙을 확증하고, 그분의 섬기심을 겸손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이웃을 섬기는 길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섬김을 받으셔야 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시니 감사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섬김의 도를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섬김조차도 하나님은 직접 받으시지 아니하시고 이웃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섬기라고 하시면서, ‘이웃 사랑이 곧 하나님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위대한 하나님에 천착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참으로 낯선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림절기에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철저하게 낮아지신 분, 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제자들의 착각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제자들과 함께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예루살렘 입성은 이미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세 번이나 말씀하신 뒤입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간곡하게 말씀하셨다면, 삼 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라면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아들었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바대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끊임없이 그들의 욕심을 구합니다. 그러자 다른 열 제자도 화를 냅니다. 두 제자가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함에 대해서 화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자리는 자기들의 것인데 야고보와 요한이 탐한다고 화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오히려 화를 내실만도 한데 조근조근 알려주십니다. 현대어로 풀어보면 이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통치자들이 얼마나 위세를 부리는지, 사람이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얻으면 얼마나 빨리 취하는지 너희는 보지 않았느냐?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먼저 종이 되어야 한다. 내가 한 일이 이런 일이었다.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포로로 사로잡힌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내어주려고 왔다.”

 

제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나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는 제자나 예수님의 적대자들처럼 착각하는 오류를 반복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자기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 중 하나가 교회의 직분에 관한 것입니다.

 

■ 교회의 직분

 

 

오늘 한남교회는 공동의회를 통해서 장로님 한 분을 피택하려고 합니다. 장로로 피택을 받으시면 6개월 동안 당회의 교육을 받은 후, 노회 장로 고시에 합격하면, 노회의 지도를 받은 후에 장로 임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세상의 직분과 다릅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교회의 다양한 직분을 받은 자들이 유념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새우려하심이라.”

 

특별히 장로의 직분을 받으면 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과 교회를 섬기는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장로가 되어 권위를 앞세우고 교회 일을 자기 뜻대로 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교회는 큰 분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직분을 세상의 직분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디모데전서 3장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보면 장로가 되려면 어떤 것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당시의 시대상황),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에게 본이 되어야 하며,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하며…(딤전 3:2~13)

 

이것은 디모데전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장로교회에서 목사와 더불어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가 되려면 이런 것들도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주일 성수, 십일조 헌금, 교회봉사.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예배공동체요, 목사와 장로는 이 예배공동체를 위해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일 성수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장로를 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속해있으므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재정이 필요합니다. 십일조 생활은 물론이고, 교회가 꼭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할 때에는 목사와 장로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헌금 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장로가 되려고 한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교회봉사입니다. 예배와 선교를 위해서 자잘한 것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교회에는 많은 일이 있습니다. 모든 교인이 함께 그 일을 하지만, 목사와 장로가 되면 앞장서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교회를 섬기면서도 권위를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은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섬기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장로는 교인들의 총회인 공동의회를 통해서 선출합니다. 그리고 선출된 장로는 목사와 함께 당회의 구성원이 되어 교회의 다양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장로를 세우는지에 따라, 그 교회의 명암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장로직은 명예직이 아닙니다. 봉사하고 섬기는 직분입니다. 인맥을 떠나 한남교회를 위해서 겸손하게 헌신하고 봉사하고실 분을 뽑아주시기 바랍니다.

 

■ 십자가의 길

 

 

저는 어머니의 서원 기도가 있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머님 당시에는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면 곧 ‘목사’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뭔지를 알게 되니까, 목사 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와 함께 신학교에 입학한 동기들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60명 정도의 동기 중에서 10명 안팎의 동기들만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저 역시도 목사안수를 받기 전에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목사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목사가 되어야만 합니까?” 끊임없이 반문했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저를 목사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그렇게 목사안수를 받고 23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저는 덜된 목사입니다. 덜된 목사지만, 기관에서 일할 때에는 동료 목사님들을 통해서, 개척교회를 할 때에는 교인들을 통해서, 일반교회에서 목회할 때에는 장로님들을 통해서 덜된 부분을 채워주시면서 목사직을 감당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큰 잘못 없이 지금껏 목회할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의 판결

 

 

예수님은 인간의 판결에 따라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그것이 부활사건입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습니까? ‘섬김과 순종’을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권위를 부여하고, 높아지려고 하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섬김과 순종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 만일 우리가 어떤 직분을 받았다고, 신앙생활 몇 년 되었다고 섬김 받기를 원하고,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한다면 유아기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받는 삶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빛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빛나는 삶은 끊임없는 섬김에서 온다는 것을 또한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빛이 되신 이유는, 끊임없는 섬김 때문이었습니다. 섬김 받으셔야 할 하나님,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계절에 우리 신앙의 교만은 없는지 돌아보시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고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판결 앞에서 영광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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