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옷을 입으십시오(성탄 후 제1주-송년주일)
골로새서 3:12~17
■ 사랑 = 죽음과 생명을 잇는 유일한 다리
오늘의 시대를 ‘사랑의 환상과 왜곡의 시대’라고 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아이를 학대하면서 사랑한다고 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에로스의 종말>이라는 탁월한 책을 통해서 이 시대에 대해 ‘사랑이 종말을 고하는 시대’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끝난 것이 아니라 ‘사랑의 환상과 왜곡과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사랑을 재발명하기 위한 투쟁’을 하는 이들이 있고, 이런 의식을 가지고 사는 이들은 ‘절대적 타자’인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을 경험함으로 타자를 진정 사랑하는 데까지 이름으로써 환상과 왜곡으로 가득한 사랑을 종식 -이런 의미에서 <에로스의 종말>-시키고, 타자를 경험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알던 이기적인 존재, 타자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으면서도 타자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던 존재, 그래서 마침내 우울증이라는 극심한 자기 세계에 갇혀 자신을 익사시켜 버리던 존재가 하나님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지요. 이것이 중생이요, 거듭남이요, 어둠에서 빛으로 옮긴 삶이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 삶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땅과 죽음의 땅을 잇는 유일한 다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이어준 유일한 다리는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 2018년 대한민국
2018년에는 ‘다사다난’하다는 말로는 다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조국에서 일어났습니다. 2018년은 ‘북한의 핵개발과 전쟁의 공포’로 시작되었지만, 반전을 이루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이어지면서 ‘주님의 손안에서 하나 되는 평화의 나라’를 꿈꾸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꿈은 언젠가 이뤄지겠지만, 아직 우리의 준비가 덜 된 듯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분단이데올로기로 말미암은 갈등이 너무 과도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분단 때문에 받았던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평화로운 나라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고, 진정 저 북녘의 사회주의자들을 사랑할 수 있을 때 평화통일의 길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투운동’을 통해서 가부장적인 사회인 대한민국에 <82년생 김지영>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 ‘비정규직 김용균 씨의 사망’을 계기로 열악한 비정규직의 노동환경에 관한 관심이 전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 제주도 예멘 난민의 문제로 ‘난민’의 문제가 다른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 등은 마음 아프지만, 고무적인 일들이었습니다. 한편으로 감추고 싶지만, 대형교회의 세습문제와 성직자들의 성추행 문제 등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한국 교회가 맘몬과 결탁하고, 과거 우상숭배가 성적인 타락을 필연적으로 동반했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던 한 해였습니다. 지난해 있었던 대표적인 사건 몇 가지만 말씀드렸지만,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사랑’이라는 연결고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생명의 땅과 죽음의 땅을 잇는 유일한 다리는 사랑’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위에서 열거한 것들이 죽음의 땅을 향해가고 있다면, 종말을 고해야 할 왜곡된 사랑에 근거한 것이고, 생명의 땅을 향해 가고 있다면 우리가 소중하게 감싸고 가꿔야 할 사랑일 것입니다.
■ 하나님이 입혀주신 옷(12)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골로새서 3:12-17절’의 말씀은 주석이 필요없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입혀주신 옷은 ‘사랑’이라는 옷이요,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기본적으로 갖춰 입어야 할 의복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에서 ‘사랑이 없으면’ 방언도 천사의 말도, 예언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도, 구제도, 심지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새로운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왜곡된 사랑이 아니라, 참된 사랑, 새로운 사랑입니다. 다가오는 새해, 이 말씀 중에서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말씀들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공감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자제(인내)하는 마음입니다. 다들 이렇게 살고 싶어합니다만,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세상이다 보니까 이렇게 살다가는 손해 볼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를 자기만 생각하면서 살고, 친절하게 대해도 감사할 줄 모르고, 겸손하면 못난 줄 알고 업신여기고, 따스한 마음으로 대해주면 필요할 때만 찾고, 자제하면 함부로 대합니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리를 따라 사는 일이 쉽다면, 누구나 진리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분명 진리의 길은 기쁨의 길이요, 기꺼이 모든 삶을 다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길이지만, 그 길이 좁은 길인 이유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진리는 실패하고 넘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늘 낯설지요. 좁아서 낯설고, 그 길을 걸어가는 이들도 많지 않아서 낯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직접 골라주시고 입혀주신 옷이니 우리는 그 옷을 장롱 안에 모셔두지 말고 자랑스럽게 입어야겠습니다.
■ 기본적으로 갖춰 입어야 할 옷(13~14)
공감과 친절과 겸손와 온유와 자제의 옷을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라고 권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라고 권합니다. 혹시라도 누가 기분 상하게 한다면 신속하게 용서하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용서의 본을 보여주셨으니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족하고 용서하는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사랑’이라는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갖춰 입어야 할 옷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족하고, 용서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빠져버린 평정심, 사랑이 빠져버린 자족, 사랑이 빠져버린 용서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영화 밀양에서 아이를 유괴해서 살해한 범죄자가 “나는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혼자 득도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 놓여있습니다.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절대 타자인 하나님을 우리는 타자를 통해서만이 만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타자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타자를 부정하며 살아가게 하는 이 사회가 어두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타자를 부정하고 극도의 이기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살아감으로 인해 절대적 타자인 하나님을 만날 고리를 단절시켜 버린 것입니다. 관계의 단절, 분리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죄’입니다. 단절된 관계의 회복,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 입어야 할 기본적인 예복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사랑의 옷을 입고 잘 살아오셨습니다. 새해에도 신앙인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 입어야 할 사랑의 옷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 사랑의 옷에 더할 것(15~17)
옷의 기본적인 기능이 무엇입니까?
옷을 입는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연약한 피부를 가졌습니다. 피부를 보호하고, 가릴 곳은 가리기 위한 것이 옷의 기본적인 기능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능만 다하면 될까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입는 옷을 기능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적인 측면이 더해집니다. 하나님은 자족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의류판매장에 가면 늘 불만입니다. 왜냐하면,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여성의류고, 남성의류 중에서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너무 비쌉니다. 저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옷이 기본적인 기능에 디자인을 더해서 멋진 옷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랑의 옷을 기본적으로 입혀주셨지만, 거기에 더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15절 이하의 말씀에서 봅니다.
중요한 단어들을 정리해 보면 ‘평화, 감사, 말씀, 지혜, 찬양’ 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옷’을 입혀주셨는데 우리는 그 옷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치장함으로써 사랑의 옷을 가치 없게 만든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합니다. 분단이데올로기와 성차별과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열악한 노동환경과 이방을 홀대하고, 맘몬을 덧붙이고, 인간의 육정으로 사랑의 옷을 더럽힌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곳곳에 흔하디흔해서 계급장처럼 치장하고자 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감사와 말씀과 지혜와 찬양은 땅에 숨겨진 보물과도 같아서 구하는 자에게만 보이는 법입니다. 이 보물을 발견한 이들은 전 재산을 팔아서 밭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입혀주신 ‘사랑의 옷’에 이를 더함으로 그 옷을 가치 있는 옷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혀주신 사랑의 옷을 입고, 그 옷에 아름다운 평화와 감사와 말씀과 지혜와 찬양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누구나 입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가십시오.
■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게 하라
오늘 주신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15절의 말씀을 주의 깊게 생각하십시오.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아의식’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자아의식은 점점 강화되는데, 자아의식이 생길 때 당연히 생겨나는 것이 ‘자기관심(self-concern)’입니다. 이것은 곧 ‘자기중심적인 자아’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은 속해있는 세상의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형성되는데 아주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은 자기에게만 관심을 기울여, 눈이 어두워지고, 자신의 삶에만 파묻히며,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고,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존재 방식’인 것처럼 믿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에만 몰두 되어 자기의 뜻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지 말고, 우리의 뜻을 복종시켜 주님의 뜻에 보조를 맞추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장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주장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거하는 삶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풍성하게 거하게 되면 우리 삶 속속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스며들어 분별력을 가지게 하여 남을 가치고 지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며,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 한 해를 보내면서
다사다난한 한 해를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 ‘사랑의 옷’을 입고 헌신하셨기에 교회와 가정과 나라가 이렇게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사랑의 환상과 왜곡의 시대’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으며 하나님께서 친해 입혀주신 ‘사랑의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사랑의 옷을 입으십시오. 그리고 새해에는 이 사랑의 옷을 ‘평화, 감사, 말씀, 지혜, 찬양’으로 더 아름답게 디자인하십시오. 사랑의 옷을 저마다 아름답게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십시오. 어떤 분은 사랑의 옷에 평화를, 어떤 분은 사랑의 옷에 감사를, 어떤 분은 사랑의 옷에 말씀을, 지혜를, 찬양을 더함으로 특별한 자신만의 옷을 지어갈 것입니다. 공장에서 찍혀나오는 판에 박힌 옷이 아니라 저마다 개성이 넘쳐나는 ‘사랑의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땅과 죽음의 땅을 잇는 유일한 다리는 사랑’이라 했습니다. 이 사랑의 옷을 입고, 그 옷을 더욱 아름답게 가꿔가시기 원하시는 모든 분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기도
사랑의 옷을 입혀주신 주님, 주님께서 입혀주신 사랑의 옷에 주님께서 맺으시라고 하시는 귀한 열매들을 덧입게 하옵소서. 주님, 이 모든 일을 할 때에 사랑으로 하게 하시고, 새해에는 주님께서 입혀주신 사랑의 옷을 입고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시는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