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2018 송구영신예배)
전도서 3:1~8
한 해를 맞이하는 첫 시간을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열어가시는 여러분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인도하심이 내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나간 모든 날에 대한 후회는 벗어버리시고,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지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때’를 기쁘고 힘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물때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
제주도에 살면서 ‘물때’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달과 태양의 상대적인 위치 변화로 일어나는 해수면의 주기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물때를 잘 맞춰서 나가야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도 있고, 조개나 바지락을 많이 캘 수도 있습니다. 물이 육지로 밀려올 때에는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고, 물이 바다로 나갈 때에는 갯벌이 드러나 조개를 캐거나 해산물을 쉽게 채취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목회하던 종달리 앞바다에 나가 호미같이 생긴 골갱이로 갯벌을 긁으면 바지락이 많이 나옵니다. 골갱이로 갯벌을 긁다 보면 ‘탁!’하고 부닥치는 소리가 납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왜 바지락을 줍는다고 하지 않고 캔다고 하는지 알았습니다. 제법 쏠쏠하게 바지락이 나오는지라, 제주시에서 목회하고 있는 후배에게 쉬는 날, 바지락을 캐러 오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그 후배 목사는 강원도 촌놈이라 바다를 잘 모릅니다. 집에서 바지락을 캘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며칠 전 갯벌이 드러났던 시간에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갯벌은 사라지고 바닷물만 출렁거립니다. 물때가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전도서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이후, 물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바다를 보면 ‘때’에 대한 묵상을 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준비하고 그 준비가 완벽해도 ‘때가 맞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떤 성과를 얻었다면 ‘때를 잘 만난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때는 언제일까?’ 이것이 궁금해졌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잘 안다면 실패했을 때나 슬플 때에도 넉넉히 ‘그때’를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정한 때가 있고, 시기가 있는 법’이라는 말에 토를 달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종종 그때를 거슬러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이나 자신의 생각에 따라 때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때를 만드시고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바라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때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기도를 통해서 그때를 알 수 있으며, 준비된 사람들만이 그때가 왔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기도하시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하신 그때를 잘 아는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모든 순간이 연결되는 드라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고, 헐 때가 있으며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으며 춤출 때가 있고,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전 3:1-8)”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다가, 전도서에 나오는 두 가지 상반되는 듯한 단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상반되는 듯한 두 단어는 긴밀하게 연결된 것입니다. 이 단어들은 마치 모자이크 같아서 얼키설키 연결되어 삶이라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서구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역경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은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역경의 때, 눈물 젖은 빵을 먹을 때, 그 경험과 그 순간은 끝이 아니라 역경을 극복한 때와 평범하게 대하는 빵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 그리고 깊이 있는 삶과 모자이크처럼 연결된 것입니다.
■ 인생은 배우면서 가는 것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그 어떤 힘에 따라 굴러갑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면, 주어지는 삶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형성하는 시간의 연속임을 알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를 끌어당기는 수많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소리는 대체로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인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고 손을 뻗기만 하면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잡기 위해 분투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을 가질 수 있다면, 삶의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메달과 트로피, 직업과 재산, 인정과 평판, 승진과 지위를 원합니다.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당장 이뤄지기를 바라고, 영원히 얻고자 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탈진할 때까지 노력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을 알고 원하면서도 그저 빈둥거리며 살다가 신포도라고 치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은 가진 것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스로 피폐한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비교’라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상기시키거나 혹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우리를 안심시켜 교만함과 우월함에 빠져 살게 할 뿐입니다. 새해에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피워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삶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자족할 수 있다면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고통과 실패와 눈물
인생은 예측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계속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예상한 것이든 예상하지 못한 것이든, 고통과 실패와 눈물 같은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으로 들어가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까닭으로 실패했던지 실패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도록 이끕니다. 우리 삶에 대해서 그냥 손 놓고 살아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직선처럼 똑바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던 곳에서, 전혀 바라지 않는 곳에서, 난데없는 변화가 시작되고 반복되기도 합니다.
1970년 동대문 평화사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외치며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기억하시는지요? 아들의 급작스러운 죽음, 그것은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전혀 바라지 않던, 난데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이소선 여사의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이후, 평생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살았습니다. 아들을 잃어 실패한 어머니가 되었지만, 마침내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전태일 열사도 실패한 삶인 듯했지만,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성공과 실패와 슬픔의 때와 웃을 때와 춤출 때와 죽을 때와 살 때’가 혼재된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하실 때, 그 ‘모든 일’은 인생의 성공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라는 희망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인생이 순탄할 때에는 겸손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십시오. 인생이 힘들다면, 이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믿음으로 이겨내십시오.
■ 지금 여기를 살아가십시오!
과거를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의 삶’입니다. 과거의 삶에 안주한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포기한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려고 하기보다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려고 합니다. 과거를 내려놓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미래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염려하는데 수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현재의 삶을 갉아먹는 두려움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인생의 기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생의 기회는 지나간 과거에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지금 이 순간 적극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곳에서, 지금 우리의 삶에 몰두하며, 민첩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씀에서 ‘때’는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지금 여기’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항상, 여기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십시오.
그런 이들에게 과거의 아픈 경험조차도 인생의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될 것이며, 지금의 삶이 바탕이 되어 아름다운 한 편의 아름다운 인생드라마를 완성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현재에 충실하기보다 다른 것을 찾을 때가 잦습니다. 대체로 이 사회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미래지향적’인 삶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중에 돌아보면 미래에 붙들려 ‘현재’를 살아가지 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항상, 한 발을 내일에 걸쳐놓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일을 계획하고 준비하다가, 내일을 두려워합니다. 지금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2018년 새해에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십시오! 카르페 디엠입니다.
■ 지금이 그때일 뿐이다
신앙에서도 이것은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지나치게 천국, 내세에 집중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를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천국이 있을까요? 우리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기다릴 때가 많습니다. 그냥,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현재라는 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삶은 모래시계 속에 있는 모래와 같다고 합니다. 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으면 모래는 다시 흐릅니다. 우리의 현실에 죽음과 슬픔과 상실과 미움과 전쟁이 다가올지라도 다 끝난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은 ‘그때일 뿐’입니다. 지금은 죽음의 때요, 지금은 슬픔의 때요, 지금은 상실의 때요, 지금은 미움의 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전도서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허무를 노래하는 책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죽음과 슬픔과 절망과 상실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삶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인생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우리가 원하지 않는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도서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다시 한번 인생을 새롭게 봐. 그동안 네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아름답게 네 인생을 빛나게 해주고 있을 거야.’
2018년 새해, 어떤 일을 만나든지 담대하고 기쁘게 맞이하며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일 년 뒤 그 모든 것들을 모아 아름다운 모자이크작품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모든 때에 동행하여 주시길 빕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