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마가복음 4:1-9
교회 뒤편의 ‘비밀정원’에서 현재 가장 잘 자라고 있는 채소는 ‘고추’와 ‘들깨’입니다. 채소를 제외하고는 반그늘과 물을 좋아하는 산수국이 기세 좋게 자라고 있습니다. 산수국을 얻어와 심었던 해에는 극심한 가뭄이 없어서 그냥 두었더니 볼품없이 자랐는데, 올해는 가뭄이 극심해서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더니 엄청나게 퍼집니다. 산수국이 좋아하는 그늘과 물이 충족되니 못 자랄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그늘이 많이 지는 까닭에 고추나 들깨는 웃자랐습니다. 고추는 아이들 키만큼 자랐는데, 줄기가 아이들 손가락처럼 야들야들해서 지주대에 묶어주지 않으면 서 있지도 못합니다. 들깨는 잎을 먹을 것이니 부드러워서 좋습니다. 화분에도 이런저런 식물이 있는데, 어떤 것은 물을 좋아해서 물이 마르지 않게 해야 하고, 어떤 것은 화분이 좀 말라야 튼튼하게 자라는 화초도 있습니다.
‘비밀정원’을 돌아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똑같은 씨앗이지만 씨앗이 뿌려진 토양과 환경에 따라서 각기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결국, 씨앗이 문제가 아니라 ‘밭’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단 한 번만 열매를 맺도록 조작한 GMO 씨앗이나 썩은 씨앗이 아니라면, 어떤 밭이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똑같은 밭이라도 어떻게 가꾸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좋은 밭이라도 가물이 오면 제대로 자라지 못할 수도 있고, 과도하게 화학약품을 사용한다면 아무리 열매가 실해도 먹기에 적합하지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뿌린 모든 씨앗이 100%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소비되는 씨앗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밭은 가꾸지 않고 가만히 두면 잡초가 무성할 수밖에 없지만, 가꾸는 만큼 잡초가 발 디딜 자리도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베트남의 망명시인 ‘틱 낫한’의 글 중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인생은 커다란 배와 같습니다. 수십만 톤의 큰 배의 방향을 움직이는 것은 배의 크기에 비하면 아주 작은 키요, 항해사 한 사람의 조종에 따라 방향이 좌우됩니다. 인간의 삶에도 작은 키가 있다면, 그것은 곧 마음입니다. 영혼의 참된 변화는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타락 역시도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요, 좋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바로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키이므로 우리는 그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음을 잘 지킨다는 것은 긍정의 씨앗에 물을 주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 힘쓰는 것입니다. 잡초가 무성하면 거두고자 하는 곡식이 비실거리는 것처럼, 긍정의 씨앗이 무성하게 꽃을 피우면 부정의 씨앗이 발붙일 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어떤 밭이라고 할지라고 긍정의 씨앗 혹은 부정의 씨앗만 100%인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긍정의 씨앗은 물을 주고 애써 가꿔야 하지만, 부정의 씨앗을 저절로 자라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밭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가꾸고 돌봐야 합니다. 긍정의 씨앗에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긍정적인 삶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 성서에 나타난 세 가지 마음
성서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타락 전, 타락 후, 거듭남 이후’라는 세 가지 마음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타락 전의 마음은 다소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내재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하여,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살아갑니다.
둘째, 타락 후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느끼지 못하는 불안한 상태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타인에 대한 책임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결국, 자신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면서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셋째,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거듭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그 안에 심어진 마음이 있습니다. 거듭남을 통해서 내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화의 과정이라고 하고, 이것을 통해 인간 본연의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듭나는 과정 안에 자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가운데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서에 나타난 세 가지 마음 중, 거듭난 이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신앙의 큰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비유에 등장하는 마음의 밭
오늘 우리가 읽은 비유의 말씀에는 길가, 돌짝밭, 가시떨기, 좋은 땅이 등장합니다.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씨앗의 동일성’입니다. 여기서 씨앗이 상징하는 바는 예수님께서 친절하게 해설을 해주셨듯이 ‘말씀’입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쓰시는 예수님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누구에게는 디딤돌이 되었지만, 누구에게는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를 반대하거나 따르지 않던 사람들의 마음이 길가, 돌짝밭, 가시떨기와 같아서 그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행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 말씀이 진리의 말씀인 줄은 알겠으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결단했지만, 그렇게 살아보니까 어려움도 있고 지고 가야 할 멍에가 있으니 이내 넘어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욕심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뜻을 막아버립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읽고 쉽사리 “옥토가 됩시다!” “아멘!”하고 결단하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에는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과도 같은 밭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땅’도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 희망입니다.
■ 나도 예쁜 채소를 먹고 싶어요!
제가 어릴 때 저희 부모님은 서울 근교 경기도 광주에서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밭에서 나는 채소는 어머님이 지금 대학로 위쪽 동네 낙산 공원이 있는 곳까지 오셔서 팔았습니다. 그냥 ‘혜화동’이라고 하셨습니다. 새벽 첫차에 전날 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몇 보따리 바리바리 싸서 싣고 종점인 동대문에서 내리고, 하나하나 머리에 이고 흥인지문에서 지금 이대병원이 있는 언덕을 넘어 낙산동에 가셔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채소를 파셨습니다. 겨울에는 채소 대신 양계장에서 달걀을 떼 와서 짚으로 10개씩 묶어 큰 함지박에 담아 두세 개를 팔고 오시곤 했습니다. 밭에서 채소를 수확하면, 내다 팔 것들을 정리해서 보기 좋게 묶습니다. 꾀를 내서 겉에는 좋은 것을 놓고 속에는 벌레 먹고 실하지 못한 것도 끼워 넣으면 좋겠는데, 어머니는 그러면 단골이 떨어진다고, 장사는 그렇게 속임수를 쓰면 안 된다고 좋은 것들만 골라서 묶습니다. 그러면, 집에 남는 것은 벌레 먹은 것들과 못 생긴 것들만 남습니다. 상품이 안 되는 찌꺼기들만 남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걸로 우리는 반찬을 해먹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철없을 때 “엄마, 우리도 예쁜 걸로 반찬 좀 해 먹어보자. 맨날 벌레 먹은 거냐?” 했더니만, 어느 날에는 정말 가장 좋은 것만 골라서 겉절이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식탁에 올라온 것들은 벌레 먹고, 못 생긴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런 것들이 농약을 덜 탄 것이요, 무공해 채소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별다른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밑천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콩나물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가 있습니다. ‘아구찜’이죠. 그런데 어떤 집에 가면 콩나물이 너무 굵습니다. 그러면 의심하게 되면서 맛이 없습니다. 뭘 의심하죠? 성장촉진제 같은 것을 너무 많이 준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됩니다. 보기에는 좋지만, 식당 입장에서는 다듬기도 좋고 이익도 많이 남겠지만, 사람 몸에는 별로 안 좋을 것입니다. ‘무농약, 유기농’을 많이들 찾고, 벌레 먹은 채소를 좋은 것이라고 비싸게 사 먹습니다. 사람들이 ‘최소한 벌레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요즘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는 ‘벌레들도 기피하는 음식’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GMO 종자들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농약 범벅이 된 채소들이지요.
■ 좋은 씨앗으로 맺은 헛된 열매
갑자기 채소 이야기를 하고, GMO 이야기를 하고, 농약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좋은 씨앗에 온갖 성장촉진제와 농약과 화학비료를 뒤범벅 해서 사람도 먹을 수 없는, 심지어 벌레도 먹을 수 없는 열매를 맺은 어리석은 농부처럼,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갖 것들을 덧칠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외형적으로 크게 자라긴 자랐는데 마치 성장촉진제나 화학비료를 듬뿍 품고 있어서 먹으면 해가 되는 굵은 콩나물 혹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예쁜 채소니 과일 같은, 그래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죽는 부모는 있을지언정, 자기가 살려고 자식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부모는 없는 법인데 자기의 비리를 덮어보려고 교회를 세습합니다. 십자가와 교인들은 차고 넘쳐나는데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그저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는 일에만 관심을 두었지, 그것이 어떤 열매인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 열매를 맺는 게 능사가 아니라, 좋은 씨앗을 심었으니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제아무리 좋은 씨앗이 옥토에 심어졌다고 할지라도 가꾸지 않고 물을 주지 않으면 말라 죽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거나 웃자랍니다. 농약을 너무 많이 치면 벌레만 죽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독성을 품게 됩니다. 성장촉진제나 영양제를 너무 많이 주면 모양은 그럴듯할지 몰라도 좋은 열매일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좋은 씨앗으로 헛된 열매를 거두고 있으니 회개해야 합니다.
■ 나는 어떤 밭인가?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태평농법’을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며 ‘관심과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일단은 ‘좋은 씨앗’이 기장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에게는 ‘좋은 씨앗, 최상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씨앗을 품은 마음입니다.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에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으니 옥토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이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수많은 말들이 있지만, 앞에서 들려 드렸던 글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