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오시는 주님(주현절 1주)
마태복음 3:13~17(사 42:1~9, 시 29, 행 10:34~43)
오늘은 주현절 첫째주일입니다.
주현절(主顯節, Epiphany "주님이 나타난 날")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을 뜻하는 절기로 기독교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준 때로 봅니다. 오늘 교회력 복음서의 말씀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임하셨으며,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들려옴으로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성이 공식화된 사건을 기록한 본문입니다.
■ 교회력 본문(사 42:1~9, 시 29, 행 10:34~43)
이사야서는 ‘주의 종’이라는 제목으로, 오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밝힙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상한 갈대와도 같으며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은 유다 백성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9편 다윗의 시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실 것’이므로 그에 합당한 열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권하는 다윗의 시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은 주의 종으로 오신 주님께서 전해 주시는 화평의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그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부활하셨으니 그를 믿는 자는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고 고백입니다. 사도란, 이런 주님의 증인이 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말씀은 이런 위대한 일을 하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력 주현절의 본문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에게로 오신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주현절 이사야서의 본문 말씀에 곡을 붙인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주현절에 잘 어울리는 찬양입니다. 이라는 찬양인데, 우리 함께 부르시며 주현절 첫주에 주시는 은혜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사랑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실 오실 그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박희정 곡)
■ 세례를 받으실 때에(마 3:13~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며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오십니다. 그때 세례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준비하는 자로서 세례 요한에게 그가 할 일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시는 일임을 밝히시고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가 세례를 받으시고 요단 강에서 올라오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공식적으로 ‘주의 종’임을 밝히는 현상들이었습니다.앞에서 주현절(主顯節, Epiphany "주님이 나타난 날")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을 뜻하는 절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신비에 가려져 있던 메시야,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메시야가 현현하신 것입니다.
■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세례를 받으러 세례 요한에게 오시는 주님을 보시며 세례 요한이 한 말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지난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지만, 제가 쓴 책 중에서 <내게로 다가온 꽃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절판된 덕분에 중고서점에서 제법 비싼 값에 팔리고 있는 책입니다. 책 제목을 붙일 때 ‘내가 꽃에게 간 것인지, 꽃이 내게로 온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꽃이 내게로 왔다’였습니다. 그가 왔기에 나도 그에게로 갔고, 오고 가는 과정에서 풀꽃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낸 책이 ‘하나님, 거기 계셨군요?’라는 책입니다.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는 질문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주님이 내게 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게로 오신 것일까?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간다’고 찬양하지 않습니까? 매일매일 하나님을 향해서, 그의 나라를 향해서 가고 있는데 왜 그분이 오시는 것일까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 주간에 말씀을 전하면서 황지우 시인의 시 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시의 후반부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일부)
주님께서 우리를 가만히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가다 길을 잃고 방황하며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이 기다리다 못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더 방황하다가는 갈대가 꺾여 버리고, 등불이 꺼져버릴까 우리에게로 오신 것입니다. 영의 눈을 여시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 이미 오셔서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삶에 힘이 넘치고 평강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교회력 병행본문 시편 29편 11절에 말씀은 하나님 앞에 나와 거룩한 옷을 입고 예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 내게로 오시는 주님은?(행 10:34~43)
내게로 오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본문은 베드로가 로마의 백부장 고넬의 집에서 설교한 것입니다. 첫째, 그분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는 분(34)이십니다. 둘째, 선한 일을 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38). 셋째,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부활하셨습니다(행 10:39,40).
이렇게 주님이 우리에게 오셨지만, 마귀에 눌려 그를 나무에 달아 죽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외모’로 보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선한 분이시므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부자라고 차별하지는 않으셨지만, 당시 사회에서 소외당하던 이들에게 그의 사랑은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볼 때, 세상의 가치기준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로 보신 것입니다. 내게로 오시는 주님은 이런 분입니다.
■ 내게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이의 삶
그렇다면, 그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따르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도행전 본문에 ‘마귀에 눌린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세상적인 가치관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적인 가치관’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발은 이 세상에 딛고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세례 요한은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따르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에게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면 이 가치관이 전도되어야 합니다. ‘순종’이란 이런 것입니다. 내 생각하고 같으니까 순종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내 생각과 달라도 주님의 말씀이 순종하는 것, 이것이 내게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이의 삶입니다.
둘째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며 지쳐있는 이들에게 주신 희망의 말씀에서 내게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사 42:1)
그렇습니다.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봐야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것입니다. 다양한 이유로 고향에 돌아가길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바벨론 땅에서 자리를 잡은 이들도 있고, 아직 예루살렘을 황폐한 상태이므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자신들의 삶의 정황은 여기나 거기나 다르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와도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사야는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마지막으로, 내게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이의 삶을 시편에서 찾습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 지어다(시편 29:2).”
‘거룩한 옷’이 상징 바는 ‘회개한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때에는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세상의 옷을 그대로 입고 예배에 임한다면 그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십시오. 예배 전에 오셔서 먼저, 하나님께 조용히 회개하며 마음을 정돈하시고 예배를 준비하십시오.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 분들이 계시니, 대화를 나누실 분들은 친교실에서 대화를 마치고 올라오십시오.
■ 순종, 바라봄, 회개를 통해서
순종, 바라봄,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내게로 오신 주님께서 새 일을 행하는 역사(사 42:9)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신 그분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그분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시29:11).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행 10:43).
사랑하는 여러분,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께 권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내게로 오신 주님 안에서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살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입술로만 “아멘!” 하며 변하지 않는 자신을 내어놓고 회개하십시오. 그때, 여러분 앞에 새로운 생명의 삶이 열릴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현절 첫째주일,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거둠기도]
우리에게로 다가오신 주님, 이제 우리가 주님께 다가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님만 바라봄으로, 타성에 젖어 있는 신앙을 회개함으로 내게로 다가오신 주님을 영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