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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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나그네였음이라(출애굽기 22:20-24)

  • 관리자
  • 2018-06-24 18: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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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다섯째주일/ 6.25민족화해주일
너희도 나그네였음이라
출애굽기 22:20-24

 

이번 주는 성령강림후 다섯째주일이며, 6.25민족화해주일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한국전쟁은 3년간 수많은 아픔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올해 한국전쟁 발발 68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3년 뒤 휴전협정을 맺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정에 반대했기 때문에 협정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남한을 제외한 미국과 중국과 북한이 서명하여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그 이후 남한과 북한은 서로 적대하며 살았습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비상식의 세월을 살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에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개발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나도는 등 어수선했습니다. 그런데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민족이 화해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 길이 열렸습니다. 아직은 멀고, 평화의 나라를 이루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멀고 험해도 최근 남북한의 관계개선은 남북한 모두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상식’의 변화일 것입니다.

 

■ 상식이란?

 

상식은 영어로 ‘common sense’입니다. ‘공통의 감각’이란 뜻입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 ‘sensus communis’에서 왔고, 라틴어는 그리스어 ‘koine aisthesis’에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상식’이란 ‘공동체 안에서 통용되는 공통의 감각’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상식은 공동체적이므로 주관적 판단과는 다를 수 있고, 어디서나 객관적이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중동지방에서는 여성이 히잡을 쓰는 것은 상식으로 통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벗어버려야만 여성도 해방될 수 있다고 믿지만 어떤 이들은 여성이 히잡을 벗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동에서는 상식인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이 아니며, 그 상식을 받아들이는 이도 있고, 거부하는 이도 있다는 점에서 주관적이지 않습니다.

해방 이후, 분단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를 떠받쳐온 ‘공통감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반공’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공은 하나의 가치가 되었고, 상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빨갱이, 좌파, 종북 등의 딱지만 붙으면 매장되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을 통해서 이런 ‘공통감각’은 와해하고 있습니다. 분단체제를 고착화하는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상식에서 서로 화해하며 살아가는 평화체제라는 상식이 서서히 우리의 공통감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과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의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 여겨지던 공통감각에 균열이 가고 새로운 생각들이 상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2016년 10월 29일 시작되어 2017년 4월 29일까지 6개월간 이어진 촛불집회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촛불집회 이전의 사회와 이후의 사회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촛불집회는 상식의 변화를 요구하던 이들에게는 혁명이었지만, 과거의 상식이었던 공통감각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에게는 반동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촛불을 등에 업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이들도 있었고, 태극기를 등에 업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촛불과 태극기 모두 우리 사회가 공통감각을 형성해가기 위해 중요한 것임에도 우리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요, 아픔일 것입니다.

현재 남북관계도 그렇습니다. 평화통일을 너무 낭만적으로만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너무 순진해서 남과 북이 화해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그 산을 넘을 체력도 안 되면서 막연하게 넘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민족 간의 화해를 이루는 일은 우리의 과제입니다. 순수한 감정만 가지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공통감각’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공통의 감각’인 ‘상식’은 진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관적이고 공동체적이지만, 점차로 객관적이고 세계화되는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전의 공통감각이 붕괴되면 더 성숙한 공통감각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상식은 국가의 범위를 넘어 세계적인 공통감각이 되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적대하지 않고 공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이념에 따른 편 가르기에 편승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상식을 세워가야 합니다.

 

■ 성경의 공통감각(상식)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놀라는 것은 그토록 오래전에 성경은 어떻게 지금도 유용한 ‘공통감각’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구약 성경 중 모세 오경은 주전 5세기에 정경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2500년 전입니다. 게다가 경전으로 확전되기 전에 구전으로 전해지던 세월까지 더하면 3,000년 전으로까지 소급할 수 있습니다. 100년도 안 되는 분단의 세월을 살았음에도 남과 북의 ‘공통감각’이 완전히 다른데, 3천 년 전에 인간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여전히 ‘공통감각(상식)’일뿐만 아니라,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상식’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렇습니다.

먼저 21절의 말씀에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고 하십니다. 노예생활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갑의 입장이 되면, 자신들이 노예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을의 아픔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회적인 약자를 상징하는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면, 약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지 않으시고 벌을 내리셔서 노예생활을 하던 때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전제는 20절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입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고 학대하거나 과부나 고아를 학대하는 이들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우상은 모두 갑으로 상징되는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를 합리화시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인간 바로를 ‘신의 아들’로 찬양하게 하는 ‘공통감각’이 그 사회의 상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이방인과 나그네를 노예로 삼고, 과부나 고아를 학대하는 일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상식처럼 여겨지던 것들을 붕괴시키시고 새로운 상식을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즉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이들의 상식을 따라 살아가면 너희는 멸망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칼로 죽일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지요. 이 말씀은 누구에게 무서운 말씀일까요? 기존의 상식, 우상을 섬기는 이들에게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 이방 나그네들과 고아나 과부들에게는 희망의 말씀입니다.

 

■ ‘이방 나그네’는 누구인가?

 

요즘 세계적으로 난민의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는 가운데 제주도 역시도 예멘 난민들을 수용할 것인지의 문제로 심각한 열병을 안고 있습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예멘 난민신청허가폐지 청원이 올라와 35만 명 이상이 찬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한 쪽에서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내전을 피해 머나먼 이방 땅으로 온 나그네와 같은 존재들, 그들은 나그네요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잠시 이 세상에서 살아가다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로 살면서 나그네를 배척하고 거절하는 것은 예수님의 뜻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뜻을 따르려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되어있고, 다른 종교와 문화 등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복잡한 것입니다.

무엇이 옳은 줄 알고, 그것을 품을 능력이 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품을 능력도 없으면서, 무조건 대의를 향해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저는 그럼 품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과제들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결정이든 우리 사회의 ‘공통감각’을 성숙한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단추를 잘못 끼우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반목과 큰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공통감각’은 예멘 난민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 조선족, 탈북민,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예멘 난민 인터뷰를 보니 양식장에서 그들의 취약점을 이용해서 15시간 밥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키고, 일을 제대로 못 하면 물고기로 따귀를 때리고, 욕을 다반사로 했다고 합니다. 이런 행동들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맹렬한 노를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일일이 다 말하지 않아도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갑질은 세계상위권에 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노를 맹렬하게 불타게 하는 이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이 ‘상식’이 되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것이 상식인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이방인이요, 나그네임을 인식하고 이웃과 함께, 사회적인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방 나그네는 우리요, 동시에 사회적인 약자요, 우리에게 기대고자 하는 조선족이요, 탈북민들이요, 예멘 난민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상식이 자리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하시 바랍니다.

 

■ 민족화해주일에 부쳐

 

남북미정상회담으로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장 통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막대한 통일비용은 물론이지만, 아직 우리의 ‘공통감각’은 남이나 북이나 아직 미성숙합니다. 분단된 것도 억울한데 남한의 경우 지역갈등과 차별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그런데 여기에 북한까지 더해지면 이 나라는 분열의 분열을 거듭할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이 답이 아니라 평화협정을 맺어 종전선언을 하고 서로 왕래하고 교류하며 경제적인 협력을 이뤄가야 합니다. 그렇게 분단되어 살아온 것 이상의 시간이 지나서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면 그때 통일해도 됩니다. 그리고 남과 북이 자유로이 오가고 협력한다면 꼭 정치적으로 한 체제만 존재하지 않아도 됩니다. 연방제통일, 이러면 또 국가보안법일까요? 어느 한 체제로 흡수 통일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만일, 통일한다고 우리에게 자본주의를 포기하고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절대로 못하죠. 북한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겠습니까? ‘공통감각(상식)’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낡은 상식이 무너지고 성숙한 상식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대한민국을 사랑하십니다. 예멘 난민, 외국인 노동자, 조선족, 탈북민 등 이방인과 나그네를 통하여 우리를 훈련하시며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촛불 이후, 우리 사회는 낡은 상식을 버리고 성숙한 상식을 세우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기성세대들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적대하던 모든 것들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그리고 이 말씀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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