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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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부활주일]믿음 안에서 살라

  • 관리자
  • 2018-04-01 07: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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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안에서 살라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시는 여러분의 삶도 부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부활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당신과 함께!”

 

■ 부활에 대한 묵상

 

지난 한 주간 부활에 관한 묵상을 하면서 다다른 결론은 부활의 전제조건은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무덤에 갇힘’이 실재했으며, 그럼에도 죽음의 세력을 죽이시고 부활하셨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증거는 복음서 곳곳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의 이야기와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이야기는 모두 예수님의 죽음을 확증하는 것들입니다.

 

죽음을 죽이시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이것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단순히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이라는 것이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부활신앙에 입문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 증인들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깊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단순하게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본 이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실의에 빠져있었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었던 이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삶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비록, 육체는 예수님처럼 무덤에 갇히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 온전히 새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부활신앙입니다. 그들이 부활신앙을 가진 이후에는 주님을 전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 거는 일은 하찮은 일로 생각할 정도로 담대해졌습니다. 그들 안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함께 ‘주 보혈 날 정결케 하고’ 찬양을 하시겠습니다.

 

“주 보혈 날 정결케 하고…. 주의 손 날 위해 찢기셨고 /주의 발 날 위해 박히셨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 부활의 전제조건 죽음

 

기독교에서 부활신앙이라는 것은 부활하기 위해서 우리의 육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육체가 소멸한 후 재림의 주님이 오시는 날 부활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섭섭하시겠지만, 우리는 단지 소망할 뿐입니다. 내 소관도 아닌 것을 가지고 힘 빼지 마십시오. 그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신앙을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습니까?

 

부활의 전제조건은 죽음입니다.

무엇을 죽여야 합니까? 우리의 육신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는 자살을 권장하는 종교가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요, 살리는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죽여야 합니까?

 

우리를 죄에 사슬에 얽매이게 하는 것들을 죽여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기적인 자신의 방식을 죽이십시오. 이기적인 자신의 방식을 죽이는 방법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이 당하셨던 고난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헨리 나우엔은 <상처입은 치유자>에서 말했습니다.

 

■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죄를 본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인식하고 그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다는 것이 세상 죄를 내려놓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껴안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무력감, 두려움, 시기, 질투, 교만, 슬픔, 실망, 좌절, 이런 부정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 고민하던 것까지도 다 주님 앞에 내려놓는 순간, 이때가 십자가에 동참하는 순간이요, 그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죽이니 비로소 부활의 조건이 갖춰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모든 짐을 내려놓은 것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사흘이라는 무덤의 시간, 침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든 세상의 멍에를 내려놓았음에도 우리의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침묵의 시간, 무덤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는 기다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두려움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용기가 자라납니다. 무력감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자신감이 자라납니다. 시기와 질투를 내려놓은 자리에는 사랑이 자랍니다. 교만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겸손이 자라납니다. 슬픔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기쁨이 자라나고, 실망과 좌절을 내려놓은 곳에는 소망이 자랍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주일에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것, 그것이 믿음이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시는 여러분, 오늘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은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렇게 결단하시는 여러분에게 부활의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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