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명령(사순절 첫째주일)
이사야서 55:6-9
올해의 사순절은 지난 14일 재의수요일(성회수요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영어로 Lent라고 하는데 어원은 ‘만물의 소생’입니다. 이 기간에 동토에 얼어붙었던 생명이 새롭게 태동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묵상하고 따라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생명의 삶으로 인도된다는 의미가 담긴 단어입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성회수요일)로부터 시작되는데, 재의 수요일이 되면 종려나무 가지를 태운 재를 이마에 바르고 죄를 고백합니다. 죄를 고백하는 가운데, 우리 안에 있는 욕심과 욕망, 거짓을 벗어버리는 길이 열립니다. 40일의 여정을 통해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2018년 사순절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시는 은혜가 모든 분에게 임하시길 바랍니다.
■ 하나님의 네 가지 명령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서의 말씀은 예배와 회개로 우리를 부르시는 매우 친숙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인자하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며,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얼굴을 보여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는 죽는다는 것이 구약성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화육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화육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 겪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얼굴은 우리가 떠올리는 서구형 미남이 아닙니다. 어떤 형상으로가 아니라 느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따름입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하나님의 얼굴은 인자하신 분이시며, 용서하시는 분이시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 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 “돌아오라!”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 명령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값없이 차별 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찾으라! 부르라! 버리라! 돌아오라!” 네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이 네 가지 명령은 사순절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명령입니다.
■ 본문의 시대적인 배경
이사야서는 신학적으로 제1이사야, 제2이사야, 제3이사야로 분류되는데 제2이사야 시대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이사야서 44장-55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은 제3이사야서가 쓰이기 직전입니다. 제2이사야서의 내용은 기원전 587-538년경까지 약 50년간의 바빌론 유배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강제로 고향에서 이국땅 바벨론으로 끌려간 지 50년이 되었습니다. 50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바벨론 제국에서 적응하며 잘 살기 위해 기꺼이 바벨론인으로 귀화하는 유대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귀화하면서 유대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유대 신앙, 유대 교육을 포기하고 타협하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벨론 제국은 유대민족과는 다른 신을 숭배하고 있었고 이에 따른 가치관과 교육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귀화하여 바벨론인이 된다는 것은 기존의 가치관과 교육체계뿐 아니라 신앙까지도 변질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돌아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 첫 번째 명령 – 찾으라!
이 명령에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서 3장 1절에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표준새변역).“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50년 가까이 되는 포로생활을 하면서 조국으로 돌아갈 희망도 버리고, 이제는 이런 포로생활이 지속할 것으로 판단하여 그동안 자신들이 지켜왔던 가치관들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류는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 세상 풍조는 이제 귀화하여 바벨론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는 풍조가 만연할 때, 그때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라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두울 때, 세상 풍조가 악한 일로매진할 때, 그때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찾으시는 사순 절기로 삼으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 주셔서, 선과 악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 두 번째 명령 – 돌아오라!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앙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많은 분이 한국교회의 문제를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건강한 진보와 보수가 있고, 건강하지 못한 보수와 진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수냐 진보냐가 문제가 아니라, 추구하고 있는 바가 ‘기독교신앙이냐, 세상 풍조냐?’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세상 풍조와 야합하여 적당한 애국주의, 적당한 자선과 이기적인 소비, 이웃에 대한 무관심,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으로 누리는 풍요로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풍조와 기독교신앙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건강하지 못한 현실입니다. 대부분 교회와 기독교인이 적당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코에 걸고 귀에 걸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에 주어진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본래의 가치관, 교육체계, 신앙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세상 풍조에 길들여 살아가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라는 말씀입니다.
■ 세 번째 명령 – 부르라!
왜 돌아갈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할까요? 사람은 위험에 빠졌을 때, 누군가를 부릅니다. 왜 부를까요? 도와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지금 나 혼자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와서 도와달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명령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라는 말씀입니다. 극도의 개인주의 사회는 더불어 사는 법을 잊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지나친 자신에 대한 긍정을 강요함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만들었습니다. 이웃에게 나눌 줄 아는 사람도 받는 것은 잘하지 못합니다. 유행가 가사조차도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면서, 받는 사랑을 부정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그냥 받으면 됩니다.
우리 인간은 한계성 안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한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르라!”는 말씀은 우리 삶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나만 한계성의 존재가 아니라, 이웃도 한계를 가진 존재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할 때 겸손한 삶으로 인도됩니다. 나의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
■ 네 번째 명령 – 버리라!
버리는 일을 통해서 “돌아오라!”는 명령을 지킬 수 있습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즉, 회개에는 버리는 일, 행동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버리라고 하십니까?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미 불의한 자는 불의한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불의한 자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악한 생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 풍조와 신앙인의 길이 공존할 수 없음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적당하게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가면서도 신앙인의 길도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풍조에 맞춰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것은 불의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사랑이 파괴되고 왜곡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파괴된 사랑 때문에 생명의 땅은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저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까닭에 사랑에 대한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사랑이라며 학대하는 일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불의한 길’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불미스러운 일들은 ‘불의한 길’을 버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 사순 절기에
사순절은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회개할 때에 모든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무뎌진 구태의연한 삶의 날을 벼르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벼를 때, 기쁨이 넘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호하게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찾으라, 돌아오라, 부르라, 버리라!” 그리하면,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할 때에는 세상 풍조와는 달라서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도 있고 손가락질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교회력을 종합해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택했습니다만, 교회력에 따른 구약의 본문은 창세기 9장 8-17절에 나오는 노아 이야깁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지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손가락질했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무지개 약속을 믿고 하루하루 비난을 견디며 방주를 제작합니다. 우리도 세상 풍조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고자 할 때에 비난의 광야로 내몰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부활약속을 믿고 하루하루 노아가 배를 제작하듯 오늘 내가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사순 절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길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가고자 결단하는 모든 분을 하나님께서 품어주시어 힘주시고 은혜 부어주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