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창세기 3:1-7
입춘도 시작되었고 이제 겨울도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는 계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새해는 1월 1일 시작되지만, 한 해의 시작은 봄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신정보다는 구정이 좋습니다. 졸업과 입학,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 겨우내 움츠렸던 몸도 기지개를 켜는 시기입니다. 새롭게 계획하시고 시작하시는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셔서 큰 기쁨을 누리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렇게 새해를 시작하는 계절에 저는 성경에서 가장 큰 실패로 인식되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이야기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도 잘 알고 있는 ‘에덴동산’ 이야기입니다.
■ ‘에덴동산’ 새롭게 바라보기
에덴동산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이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영원히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았을 것이며, 사망, 질병, 슬픔, 고통, 늙음과 같은 죄의 결과물도 전혀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사랑과 화평과 행복과 기쁨만이 가득하였을 것이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므로 그 모든 조화는 깨어지고 엄청난 어둠과 재난의 그림자가 이 세상에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죄가 시작된 총체적인 책임은 아담과 하와에게 있다. 그들의 모든 후손도 이들 때문에 원죄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실패작이다. 아마 많은 분께서는 이렇게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사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우리에게 구세주의 필요함을 알게 해주었고, 아담과 하와로 인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 열렸습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자유의지를 갖춘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아담과 하와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에덴동산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의 실패에 대해서 혹은 하나님의 실패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주변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삶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부활절에 불리는 가톨릭 찬양 중에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참으로 필요했네, 아담이 지은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씻은 죄. 오 복된 탓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를 알게 되고, 구세주의 위대함과 필요성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요? 이 찬양은 이것을 역설적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 실패, 또 다른 선택으로 초대하는 초대장
선악과가 그러하듯, 삶에서 완전히 나쁜 것은 없습니다. 젊은 시절 변호사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경험했기 때문에 비폭력 저항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영국으로부터 인도가 독립할 길을 열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력을 잃었기에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상실이나 실패는, 우리의 영혼을 굳어지게 하려는 생활 방식으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줍니다. 그런 점에서 실패는 또 다른 삶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이기도 한 것입니다.
저의 삶도 돌아보면 크게 실패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가장 첫 번째 가슴 아픈 실패는 총회교육원 간사로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동기들이 죄다 부러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뒤틀어지고 결국 사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임을 하고 보름 만에 한남교회 부목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장교회의 경험을 토대로 다시 그곳으로 복귀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한남교회의 담임목사가 공석으로 있을 때, 친하던 선배 목사들에게 총회법과 노회법도 무시하고 담임목사를 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고, 졸지에 싹수없는 후배가 되고 나니 목회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캄보디아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선교사로서의 계획도 허망해졌고, 그렇게 다시 국내로 돌아왔을 때 제 앞에 목회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목회자로서 더 바닥으로 내려갈 것이 없는 것 같은 심정이었는데, 공항에 내렸을 때 제주도에서 목회하시는 선배 목사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제주도 작은 농어촌교회에서 목회할 생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앞뒤 잴 것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부모님은 난리가 났죠. 나중에 하신 말씀인데 마치 제주도로 귀양보내는 기분이셨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도 가겠다고 했으니 갔지만, 처음에는 실패하고 떠나는 것 같아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제 삶의 새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험하고, 그곳에서 이뤘던 일을 통하여 아직 제 삶을 관통하는 큰 신앙의 줄기와 삶의 깊이와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앞서 실패는 또 다른 선택을 하게 함으로 새 길을 열어주는 초대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실패나 상실은 끝이 아니라,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또 다른 길입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일등만을 강요하고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패의 미덕과 창조력이 파괴된 세상, 한 번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 실패, 새로운 시작과 자유의 상징
이처럼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삶의 지혜는 늘 풍성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실패를 창피한 것으로, 죄책감으로, 분노로 바꿔놓았습니다. 사실 누구도 지속하는 성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인생은 웃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으면 기쁠 때가 있으며, 얻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는 전도서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실패라는 소중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내가 가려고 했던 길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기는 것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을 통해서도 배우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입춘 맞이 윷놀이대회가 있었습니다.
우승은 교육부서가 했는데 거기엔 약간의 비리가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교육부서 아이들이 게임에 져서 상처를 받지 않을까 ‘뵈뵈회’에서 공공연하게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교육부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우승했습니다.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입니다. 이 이야기를 친구 목사님들과 나누는데 두 파로 나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분도 있고, 어릴 적에 패배의 쓴맛을 보게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둘 다 맞는 이야기겠지요. 올해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으니 내년에 실패의 쓴맛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사실, 교육부서 친구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인생의 어떤 일에 있어서 ‘실패’를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실패는 재앙이 아닙니다.
실패를 극복하려면 우리가 넘어야 할 두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에 대한 집착이고, 다른 하나는 잃어버린 자존감입니다.
질문 한 가지 하겠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성공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만약 그들을 신과 유사하게 본다면, 진리를 알면서도 진리를 무시한 행동을 한 것이므로 엄청난 실패를 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담과 하와는 인류에게 황당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아담과 하와는 신이 아닌 인간이었으며, 천사와 같은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일은 그러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선악과 앞에서 정신 차리려고 했지만, 실패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요, 실패했지만 끝난 것이 아니라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창 3:21)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 에덴동산 이야기의 핵심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성공/실패 여부는 우리가 그들을 신으로 생각하느냐, 인간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은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는 존재지만, 그것이 곧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실패의 가치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는 다른 하나는 잃어버린 자존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삶, 에덴의 동쪽의 삶이 주는 희망을 향해서 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존재인 것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편안하지 않고, 흙이 가시덤불을 낸다고 할지라도 삶은 여전히 이어진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는 것입니다. 자존감을 가지려면, 바라는 것을 할 수 없을 때 그 길만이 유일한 자신의 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배우가 되지 못하면 연출가가 되어 부대를 만들 수 있고, 가수가 되지 못하면 작곡가가 될 수도 있으며, 일류 요리사가 아닐지라도 가족에서 가장 맛난 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기는 것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지는 것을 통해서도, 실패를 통해서도 우리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실패했다고 자존감을 잃어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는 재앙이 아닙니다.
■ 새로운 시작을 하는 모든 분에게
봄이요, 새 학기요, 새 출발을 하는 새로운 시작의 계절입니다. 그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지는 오늘은 이 세상이 창조된 이후 처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날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이젠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패했어도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공은 실패가 삶에 가져다주는 황금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듭나라’고 하십니다. 그 거듭남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봄이 되면 씨앗이 싹을 틔웁니다. 싹이 트면 꽃이 핍니다. 꽃이 지면 열매가 맺힙니다. 이렇게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익는 과정을 우리는 실패라고 하지 않습니다. 거듭남이지요.
문득 배 한 조각을 먹다가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과일마다 맛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 당연한가요? 과일 한 조각에도 수많은 실패와 상실과 고통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야 더 말할 바가 있겠습니까? 새로운 시작을 하시는 분들, 파이팅입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