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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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목표가 있습니까?(빌 3:12-16)

  • 관리자
  • 2018-01-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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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목표가 있습니까?
빌 3:12-16

 

새해를 맞이하고 한 달이 되었습니다.

혹시 새해를 맞은 감격이 이미 흐려졌고, 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조차도 무색하게 지내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어떻게 하면 늘 새해를 맞듯이 살 수는 없을까요? 타성에 젖어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제 나 새로 출발하듯 살아갈 수 없을까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는데, 지금까지 일 년 365일 하루 쉬지 않고 코 꿰어 살아왔는데, 지금까지……. 뭐가 달라지겠어.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거지. 이렇게 타성으로 살아가면 발전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은 진부한 생활습관과 타성 젖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분야에서 빛을 내고 살아가는 분들의 공통점은 이런 타성에 젖어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새해를 맞이하듯 늘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신정으로 맞이한 새해, 이런 마음을 놓치셨다면, 구정으로는 아직 새해가 오질 않았으니 가는 해 잘 보내시면서 새해 목표를 잘 세우시길 바랍니다.

 

■ 달에서 바라본 지구

 

1969년 7월 16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아시는지요?

그날 미국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아폴로 11호기 발사되었습니다. 우주선은 닐 암스트롱, 에드위 올드린 주니어, 마이클 콜린스를 태우고 달 궤도로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나흘 뒤인 1969년 7월 20일(한국시각 7월 21일)에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21시간 30분 동안 달에 체류했고, 여러 가지 탐사 장비를 설치한 후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습니다. 세 명의 우주인이 달에 갔지만, 그 중의 한 사람 마이클 콜린스는 달 표면을 밟지 못하고 홀로 사령선에 남아 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그 특별한 경험은 지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달의 뒤편을 본 경험이었습니다. 그가 달의 뒤편을 보고 있는데 암흑 속으로 파랗게 빛나는 오아시스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구였습니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콜린스는 자료로 남기기 위해 달 사진을 수도 없이 찍었습니다. 그런 그가 후에 이런 말을 말했습니다. “회색빛밖에 없는 달은 지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주인들은 지구를 벗어났을 때 비로소 지구의 참모습을 보았습니다. 회색빛 달을 바라보면서도 동양의 시인들은 얼마나 많은 시와 노래를 지었습니까? 그런데 달에서 바라본 지구, 그것은 달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세상이었던 것이지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구라는 공간을 떠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주를 만드시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꾸미시고 사람을 만들어 다스리게 하셨는데, 달 탐사 덕분에 그 에덴동산이 지구 어느 한구석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에덴동산이라는 것이 드러난 셈입니다. 지구라는 공간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지구의 아름다움을 본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타성을 벗어버리고 진부한 생활습관과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합니다. ‘그것’은 10절과 11절에 명시되어 있는데 ‘예수님처럼 죽어 부활에 이르겠다.’는 것입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12절의 말씀과 연결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 무엇을 얻지 못한 것일까요? 부활의 전제조건인 ‘죽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살아있으니까요.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 부활은 죽음 뒤에야 있는 것인데 아직 죽지도 못했으니 온전히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해 달려왔지만, 아무것도 잡은 것이 없습니다.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잡은 것이 없으니,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고 합니다. 뒤에 있는 것, 그것은 바로 그동안 자신이 잡으려고 달려왔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라는 말씀은 타성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뭔가 새로운 목표를 이루려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게서 자유로워져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면, 뒤에 있는 것에 대한 미련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 목표를 향하여

 

그런데 이렇게 새 출발을 하려고 할 때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타성에서 벗어나는 것(뒤의 것을 잊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 목표를 명확하게 바라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곧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요,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목표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목표를 향해서 쉬지 않고 달려가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희망(목표)이란,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 잡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목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저절로 목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올해도 그냥 옛날처럼 그렇게 신앙 생활하겠다가 아니라, 올해는 주일 성수를 하겠다. 헌금생활과 봉사생활, 기도생활은 이렇게 하겠다. 성경은 몇 독을 하겠다. 예배는 어떻게 드리겠다. 등등……. 목표가 없다면 희망이 없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냥 흐느적거리는 신앙생활, 타성에 젖어서 그냥 교회나 왔다갔다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목표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달려갈 다리를 주셨고, 달려가다 힘들 때 잡을 수 있는 손을 주셨으며, 그 목표가 무엇인지 깨달아 알 수 있는 마음도 주셨습니다. 그 목표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을 주셨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과 재간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목표를 다소 추상적으로 제시했습니다. 부활에 이르는 것, 부름의 상을 위하여, 하늘의 시민권 등으로 제시할 뿐 그 목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질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앞에서 희망은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푯대를 향하여”라는 의미입니다. 푯대가 우리를 향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는 것이지요.

 

■ 목표 안에 있어야 할 것

 

우리가 푯대를 향하여 간다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이 목표는 곧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인데, 실제로는 내가 세워야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어렵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대한 계획을 갖고 창조하셨습니다. 각 사람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적하신 바대로 하신다면, 인간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푯대를 향하여 간다는 의미는 이런 맥락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로 옮겨와서, 하나님의 계획이 내가 세우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목표는 누구도 대신 세워줄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이 세워야 하는 목표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인생의 최대 목표가 무엇인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물으시고, 깊이 생각해 보시면서 삶의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목표 안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과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목표에는 예수님의 믿음, 예수님의 심정,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세계관이 들어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나 혼자 새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세운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 목표를 세우면 하나님께서 달려갈 힘을 주시고, 잡아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돈을 벌겠다.” 좋은 계획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나 혼자 세운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을 세우고, 그 돈은 어떻게 벌 것(정직하게)이며, 어떻게 쓸 것(이웃과 나누며)인지 하는 목표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대학 가자, 좋은 직장에 들어가자! 유명인이 되겠다.” 이런 것들도 같습니다. 단지, 뭐가 되겠다가 목표가 아니라, 그 목표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타성에 밀려서,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세상의 흐름을 따라서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렇게 살아가면, 목표를 이룬들 헛헛합니다. 우리의 삶이 목표를 이룬 뒤에도 여전히 앞으로 달려가려면 그 목표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서원기도와도 연결됩니다. 진실한 서원기도는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냥, ‘뭐가 되겠다’고만 목표를 정하지 마시고, 그 목표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모든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런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신앙의 목표가 있습니까?

 

여러분께서 신앙 생활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받지 못할까 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우리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참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요,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16절 말씀에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주석성경은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던지 같은 길로 나아갑시다.”로 해석했습니다. 또 “이미 도달한 그 수준에 맞는 생활을 계속해 나가도록 합시다.”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목표’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지속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다하는 날, 그래서 사도 바울이 부활의 전 단계로 이르고자 하는 죽음의 순간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들은 생동감이 넘칩니다. 신앙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삶의 분명한 목표가 주는 생동감에 더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더욱 빛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아직은 엄동설한이지만, 이제 일주일 후면 입춘입니다. 봄이 서는 입춘은 자연 만물이 긴 휴식의 시간을 끝내고 새 삶을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입춘지절에, 여러분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 목표를 새롭게 세워 힘차게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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