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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낚인 사람(막 1:16-20 / 욘 3:1-5,10/ 고전 7:29-30)

  • 관리자
  • 2018-01-21 0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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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낚인 사람
막 1:16-20 / 욘 3:1-5,10/ 고전 7:29-30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현상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잘 아는 것도,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핫이슈’가 있습니다. 혹시 무엇인지 아십니까? ‘비트코인, 가상화폐’입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포기하지 마?

 

‘포기하자 마라!’는 주제는 도서, 음악, 영화, 언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대부분 포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입니다. 인터넷 교보문고 검색창에 ‘포기’라는 단어를 치니 이런 책들이 검색됩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포기하지 말자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포기하지 말자 한 번뿐인 인생이다>, <포기하지 마, 넌 최고가 될 거야!>, <포기 없는 기다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등등. 이런 종류의 책들에서는 이것을 증명하고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들려줍니다. 성공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로 이룬 것이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포기하지 않아서 이룬 것이라도 합니다. 성공담에는 귀담아들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함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담은 ‘생존편향적’이어서 성공담에만 이목을 집중하게 합니다. 그래서 실패한 사람들을 잘 보이지 않게 합니다. 또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이 “나는 왜 실패했는가?” 에 대해서 증언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현대인들은 언제나 포기를 비판하는 메시지에만 노출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고성장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더 많이, 더 높이!’가 통했지만, 이미 우리는 필요 이상의 것을 가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높이와 꿈 높이를 낮추고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아직 가지지도 못했는데 포기하라고?” 하며 주저하게 되고, 이미 이룬 사람이 “포기하라!”고 조언하면 “이미 자긴 성공해 놓고선?”이라고 비판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성공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음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니 삶이 피폐해집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흐름입니다.

 

■ N포세대

 

이 시대의 풍조를 정의하는 말들이 많은데 그 중에 N포세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N가지의 것들을 포기한 세대를 뜻하는 신조어이며, 청년실업 등의 문제에 시달리는 20대~30대 한국 젊은이들의 암울한 현실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처음엔 삼포세대였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란 뜻의 신조어였습니다. 2-30대 젊은 층이 좀처럼 연애를 안 하려 들고, 연애를 해도 결혼을 꺼리며, 결혼을 해도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적인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에 취업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오포세대, 인간관계와 희망을 포기한 칠포세대, 건강과 외모관리까지 포함해서 구포세대, 마지막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삶에 비관하여 삶까지 포기한다고 해서 십포세대 혹은 완포세대 혹은 전포세대 등으로 부릅니다. 하나하나 부르기엔 어차피 공통 선상에 있는 용어들이기에 'N포세대'로 통칭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 우리나라 청년의 현실입니다. 얼마 전 보도에는 고등학교마다, 9급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고등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의 꿈은 건물주라 합니다. 이런 현상은 절대로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꿈과 희망이 없는 N포 세대입니다.

이런 N포 세대, 희망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이들에게 꿈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가상화폐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비트코인인데, 몇만 원으로 수백억 원을 벌었다든지, 몇십만 원으로 삽사 십 분 만에 몇천만 원을 벌었다든지 하는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영원히 흙 수저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어쩌면 금수저로 갈아탈 수 있는,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생긴 것과도 같은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소식이 들려오자 가상화폐에 관해서 관심이 없거나 가상화폐에 투자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만 세상의 흐름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나 두려움과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과 호기심은 성실하게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세상에서 더욱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세상에 나타나는 병적인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FOMO증후군입니다.

 

■ FOMO증후군 Fear of missing out.

 

FOMO는 본래 기업 마켓팅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매진임박, 마지막 세일, 한정판매 등의 광고를 통해서 지금 바로 구매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마켓팅의 일환입니다. 오늘날 이것은 사회관계망 서비스인 SNS의 확산으로 더욱 커졌습니다. 이젠 SNS에 접속하지 않으면 소외되는 것 같은 불안감에 매일 접속하고, 그러다 중독되는 것이지요. SNS를 통해서 수많은 팔로워를 만나고 친구를 맺고 ‘좋아요!’가 쌓여도 타인을 만날 수 없는 ‘타인이 추방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열풍도 이런 연장선에 있습니다. ‘나만 안 하면 손해 보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땀 흘려 수고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 것은 도둑질하는 것이며, 거품은 반드시 꺼진다는 것이고, 언제 누가 희생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FOMO증후군은 화병(火病)과 연결이 됩니다. 화병은 말 그대로 불이 뭉친 병입니다. 화병의 특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점과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병은 가는 곳마다 따라붙습니다. 왜냐하면, 그 불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불은 옮기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는 “누구 하나만 걸려 봐라!”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타인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고, 더 나아가서는 아무 곳에나 불을 지르고는 “너 때문이야!”라고 화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한 놈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SNS에서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가상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터넷 공간에서 악성 댓글로 나타납니다. 인터넷 공간은 가상의 적들이 자라나는 최고의 인큐베이터인 셈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일베로 표출되고 있는데 심지어는 대통령 모가지를 쳐낼 참수부대를 모집하는 공지가 올라오고, 그 모집에 열광합니다. 너무 큰 아픔을 당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단식투쟁을 하는 이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는 혐오스러운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한 걸음 바깥에서 이런 현상을 보면 지극히 비정상적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 FOMO증후군에 빠지면 객관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길었지만, 오늘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주현절 셋째주일 교회력

 

요나서 3:1-5,10, 고린도전서 7:29-31, 마가복음 1:14-20절의 말씀이 이번 주 교회력입니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는 복음서의 말씀만 읽었습니다. 세 본문을 정리해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먼저 구약 요나서의 말씀은 요나가 니느웨성에 회개를 촉구하자 니느웨성의 백성이 회개함으로, 하나님이 재앙을 거두신다는 내용입니다. 서신서의 말씀은 좀 어려운 말씀인데 임박한 환란의 날에는 이 세상의 외형,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나 소유한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말씀은 제자를 부르시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 본문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한 교회력 안에 들어온 것일까요?

 

복음서의 말씀부터 분석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이유는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사역을 지속해서 이뤄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연유로든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낚인 사람들입니다. 낚시를 해보셨나요? 낚시하다 보면 원하지 않는 고기도 잡힙니다. 그물로 고기를 잡으면 다양한 물고기가 잡힙니다.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 요나서의 본문이 이해될까요? 요나는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서 그들을 낚으신 거에요.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가던 그들이 하나님에게 낚이자 회개를 하고 새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일시적인 사건이었지만 말입니다. 이제 물고기의 처지에서 생각해 볼까요? 물고기는 물에서 자유로워요.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죽음이에요. 먹이가 되는 거죠. 낚시에 낚인 순간, 코가 꿰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져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곧 물 밖으로 끌려나갈 수밖에 없어요. 물 밖은 지금까지 살아오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놀던 물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지요. 물고기에게 물속이 세상 풍조였다면, 낚인 이후의 세계는 자신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에요.

고린도전서 7장의 본문이 조금 이해될까요? 아내가 있는 자는 없는 것 같이,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함같이 임박한 환난의 때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양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서는 사람 낚는 일을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부는 고기를 잡아먹거나 팔기 위해서 낚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통해 사람을 낚아 죽이거나 팔겠다는 말씀일까요? 번역하기에 참으로 난해한 문장인데 원래는 ‘사람의 낚는’ 이라는 번역이어야 하는데, 우리 말로는 뜻도 통하지 않고 어색하지요. 그래서 2격이 아닌 4격 ‘사람을’로 해석된 것이에요. 영어 성경도 각각 달라요. 킹제임스는 of people이고 NLT 성경과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and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로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fish가 명사라면 ‘사람들을 위한 물고기가 되라’는 말씀이겠지만, 아쉽게도 동사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낚는’이라는 말씀은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의미는, 제자를 통해서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이들을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께 낚인 사람

 

저는 ‘하나님에게 코가 꿰였다’고 고백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낚인 것이지요. 코가 꿰여도 단단히 꿰여서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 낚였기 때문에 세상 풍조를 따라가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강요가 판을 치는 시대에서 저는 많은 부분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거기엔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 소비욕구, 경쟁, 성공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세상 풍조는 빨리빨리 살아가라고 하지만, 저는 천천히 느릿느릿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은 큰 것을 좋아하고 높은 것을 좋아하지만 저는 작은 것이 좋고, 낮은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예쁜 것을 좋아하지만 저는 못생긴 것도 좋아합니다. 세상 풍조는 쉽게 얻는 것을 좋아하지만 저는 어렵게 얻는 것에도 만족합니다. 사람들은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지만, 제 삶에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저는 좋습니다. 거룩한 성직자보다는 불의를 보면 화를 내는 세속적인 성직자가 더 좋습니다. 하나님에게 코가 꿰이고 나니 세상의 명예나 권력, 좋기는 하겠지만 그게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금의 내가 좋습니다. 물론, 아쉬운 것도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족하는 것이지요. “벗어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그래서 저는 큰 욕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FOMO증후군 같은 것에 빠질 일도 없고, 비트코인이나 도박 같은 것에 빠질 일도 없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저는 요즘 들어 이런 꿈을 꿉니다. 100명만 만들자, 100명만 만들자.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하는 사람 100명만 낚자! 그리고 기도합니다. 능력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여러분이 저를 위해 중보기도하실 때에는 이런 기도를 해주십시오.

 

■ 세상 풍조에 초연하십시오!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세상 풍조는 그리 건강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신자유주의 질서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그리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따르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캐논으로 삼아 살아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구원받기 전에 우리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낚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낚이기 전까지는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나 이제 우리는 그런 불순종의 아들들과 결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마시고 결연하게 사십시오. 이 세상의 삶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생의 삶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길지 않은 시간을 하나님께 낚인 사람답게 멋지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영생은 주어집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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