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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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골로새서 4:2-6)

  • 관리자
  • 2018-01-14 0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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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골로새서 4:2-6

 

■ 기도 – 감사함으로 깨어있는 것

 

기도는 경청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지만, 경청하지 않고 내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한합니다. 기도의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조율하는 시간입니다. 기도의 시간은 하나님의 마음과 접속하는(연결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큰 중심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마음 내킬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해야 하고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깨어있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깨어있는 기도를 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골로새서의 4장 2절의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는 말씀의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2부 10번에 ‘모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에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은 은혜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아주 작은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은혜의 샘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로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은혜를 주시는 분에게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은혜의 샘은 말라버립니다. 은혜의 샘이 차고 넘쳐 흐르려면 은혜의 샘이신 하나님께 그 은혜를 되돌려야 합니다. 은혜의 샘이 차고 넘칠 때 은혜의 선물이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혜는 항상 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의 마중물입니다. 감사의 마중물 없이는 은혜의 샘에서 솟아난 은혜를 맛볼 수 없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하나님이 벌주시거나 고난을 주신다 해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시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깊은 감사를 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깊은 감사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조율하며, 항상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렇게 깊습니다.

 

■ 전도 -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는 것

 

전도란 무엇인가? 전도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자요 맡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전도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터키 서부지대에 있는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특이한 점은 바울이 직접 방문한 적도 없는데,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동안 복음이 전파되어 세워진 교회라는 점입니다. 서신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골로새 태생의 에바브라가 회심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는 거짓선생들에 대처하기 위해 로마에 갇혀있는 바울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2:8). 골로새서 2장 8절에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당시 골로새 교회에는 헬라 철학과 유대 율법주의와 신비주의가 혼합되어 예수님께서 온전한 하나님도 아니시고 온전한 사람도 아니시며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반신적인 존재라는 주장이 교인들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2장 9-10절에서 분명하게 ‘하나님의 비밀’을 밝힙니다. 그 비밀은 이렇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즉,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리스도가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빚 문서를 지워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안 사람들은 더는 이 세상에 속절없이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자요 맡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부족함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그저 내 삶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거나, 예수님을 잘 믿어서 복 받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 신앙의 목표라면 전면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끊임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로워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것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달라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남을 배려하고, 다른 이들을 더 따뜻하게 대하고, 자기를 더 낮출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가치판단으로는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우리가 먼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할지라도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고요함과 따스한 온기를 전하기 위해 애쓸 때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요,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는 것입니다.

 

■ 지혜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 사도는 외인들에 대해 전도할 때에 지혜롭게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5)고 합니다. 외인은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교회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하나는 모이는 교회로 존재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일정한 시간에 주님 앞에 모여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경청하고 삶의 경험을 나누며 친교를 나눕니다. 모이기에 힘쓰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이기에 힘쓰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또 다른 형태의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입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경험한 삶의 충만함을 가지고 일상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 일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입니다. 이 일상의 자리야말로 우리의 신앙의 진실함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일상의 자리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외인’이 있습니다. 종교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정치색이 다릅니다. 이런 일상을 대할 때, 우리가 종교가 다르거나 가치관이 다르거나 정치색이 다르다고 하여 누군가를 백안시하거나 미워하게 된다면 하나님 나라는 희미해집니다.

 

‘2015년 떼제공동체는 수단 출신의 난민들을 맞아들였습니다. 난민들을 맞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난민 중 수단 청년 하메드에게 슬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수단에 남아있던 여섯 살 난 여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슬람교도였던 하메드는 동료와 함께 떼제 공동체에서 새벽 3시까지 꾸란을 함께 읽으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때 떼제는 그들에게 개종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기도를 막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강도 만난 것 같은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믿음이 아닐까요?

 

“외인에게 대해 지혜로 행하라”는 말씀을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가치관이 다르다고, 정치색이 다르다고 편 가르기하고,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이 전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요 6절의 말씀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살맛 나지 않는 세상을 살맛이 나게 하는 일, 그것이 지혜를 가진 이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 시간 - 세월을 아끼라

 

5절 말씀에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는 kairos(카이로스)입니다. 시간의 질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시간이나 세월을 가리키는 단어가 성서에는 또 있는데 chronos(크로노스)입니다. 이것은 시간의 양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경직된 사회일수록 크로노스의 시간, 즉 양적인 시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싸우다가 밀리면 “너 몇 살인데?” 묻습니다. 먼저 몇 년을 더 살았다는 것이 훈장이 됩니다.

사도 바울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은 ‘다메섹 도상’이었습니다. 그의 삶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고, 그가 전적으로 회심하게 된 것은 고작 사나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카이로스이 시간이 크로노스의 시간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크로노스의 시간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통해 사도 바울은 순교하기까지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철학개념 중에 ‘양질전화’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적정한 양에 이르게 되면 질적으로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카이로스의 시간은 너무 강렬한 시간이라 보통의 사람들은 늘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보통 우리는 크로노스의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시간들이 그저 양적인 시간이거나 시간의 축적 혹은 시간 보내기가 되지 않으려면 평범한 일상의 가치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크로노스의 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월을 아낀다는 의미입니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날이 아니라, 오늘은 어제와 다른 날로 삼아가십시오. 어제보다 오늘 더 이웃들에게 따스하게 다가가고, 더 많이 용서하고, 더 마음을 넓히고, 나도 모르게 더 냉랭하고 미워하고 옹졸해졌다면 ‘이렇게 살면 안 되지?’하며 돌이키는 순간, 우리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이렇게 살아갈 때,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요?

감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됩니다.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면 기도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요, 그 비밀을 전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 비밀을 전할 때 우격다짐으로 전하지 않고 사랑으로 지혜롭게 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처럼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가지만, 순간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함으로써 빛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빛은 그 안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지난주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빛나게 해주신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여러분, 2018년 감사함으로 깨어있으십시오.

그때 은혜의 샘이 차고 넘쳐 여러분의 삶으로 흘러넘치는 카이로스의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기쁨이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거둠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함으로 깨어있게 하시어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을 깨닫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그 놀라운 신비를 이웃에게 전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그때 사랑으로 지혜롭게 전하게 하시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아끼며 살아가는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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