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품은 사람
요한복음 14:20-21
신년 새해 주일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2018년도가 빛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연초까지 저는 휴버트 드레이퍼스의 <모든 것은 빛난다>라는 책과 재독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타자의 추방>이라는 두 권의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고 있습니다. 아직도 곱씹으며 읽는 중이라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오늘의 시대가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요, 이런 병적인 징후는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로부터 온다고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를 빛나게 하는 그 어떤 타자가 존재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를 너무 과잉긍정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안에 있는 타자를 부정함으로써 자기 안에 있는 빛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에서의 ‘빛’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빛, 진리, 길, 문, 물, 떡, 바람, 어린 양 등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의 ‘빛’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이 성탄의 사건이요, 주님께서 현현하신 주현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빛’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이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날에는 빛이 빛 안에, 너희가 빛 안에, 빛이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빛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빛을 사랑하는 자니 빛을 사랑하는 자는 내 빛이신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빛을 나타내리라(요 14:20-21).
조금 간단하게 말씀을 정리하면, ‘빛을 품은 사람은 빛나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빛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빛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이요, 그 때문에 그 사람의 삶도 빛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빛이신 그리스도를 품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빛이 여러분의 삶을 빛나게 하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타자의 추방
하나님은 인간의 관점에서 타자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또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타자입니다. 타자와 타자가 만나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라고 합니다. 이것은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감으로 빛없는 어둠 속에 내몰리고 있음을 말합니다. 타자를 만나고 경험하는 행위는 변화를 가져옵니다. 변화는 기본적으로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엔 고통 같은 것들은 ‘좋아요’에 밀려납니다. 이전에는 갈등이 생기면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면, 오늘날에는 갈등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낯선 타자보다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만 팔로우함으로써 타자를 부정합니다. 타자로서의 하나님 역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개입하셔서 삶을 변화시키길 원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시는 하나님만을 원합니다. 여기에서 신앙의 본질이 훼손되는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훼손됨으로 인해서 ‘빛’을 어둠이 잠식해 버린 것입니다.
■ 제 몫의 십자가
‘성장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이 타자에게 ‘아픔’을 강요하는 말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을 이루고자 한다면 십자가가 따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학’이 아니라 라캉이 말했던 ‘쥬이상스Jouissance = enjoyment- 늪을 기는 기쁨’입니다. 오늘 청소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이런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잠도 안 자고 공부하다가 코피를 흘리는 경험, 더운 여름 책상에 앉아 책과 씨름하다 엉덩이에 땀띠가 나는 경험, 그런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지만 몇 등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했다는 사실로 짜릿해지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쥬이상스’라는 개념이요, 신앙에서 십자가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하셨다면, 학창시절에 꼭 한번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제 몫의 십자가라고 하니까 조금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7절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 십자가에 관해서 마태복음 11장 30절에서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예수님께서 지워주신 자기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가운데 그 십자가가 얼마나 쉽고 가벼운 것인지,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경험하시는 은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나의 계명을 지키라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에서는 ‘제 몫의 십자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성경을 통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합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느냐?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그러자 율법학자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토 달지 않으시고 “이를 행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런데 이웃은 ‘타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은 ‘타자가 추방된 세상’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타자를 환대하고 초대하고 받아들이는 친절함, 어쩌면 이것만이 획일적인 인간이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타자, 이웃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환대하고, 초대하고, 받아들여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이미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서 그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를 추방하지 마십시오. 나와 삶의 양식이 다른 타자를 추방하지 마십시오. 이것저것 선을 긋고 나와 다르면 배척하지 마십시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살아가고자 할 때 우리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으시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새해에는 품을 더 넓고 깊게 하셔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나 스스로 빛나보려고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하나님의 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삶, 이것이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새해에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삶을 빛나게 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새해 첫주일 덕담입니다.
지난 한 주간, 여러분께서 정성껏 적어주신 서원기도를 읽고, 정리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으로 소박한 기도였습니다. 가족들의 건강과 땀 흘리고 수고한 만큼의 결실과 교회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수밖에 없는 기도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받는 새해가 되시길 바라며,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중보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새해 기도문을 제출하지 못하신 분은, 친교실 옆에 기도우체통에 기도문을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서두에는 사실 좀 어려운 주제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조금 쉽게 정리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 풍조는 타자에 관해 관심을 두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기에도 바쁜데 타자에게까지 관심 둘 일이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함정이라는 것이지요. 그 타자에는 하나님도 포함되니까요.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 빛으로 거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타자를 받아들이는 일은 세상 풍조와는 달라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지만, 거기에 참된 기쁨이 있음을 발견하는 사람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보물을 사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빛은 빛나는 것이요,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그 사람의 삶은 복된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복된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켜야 하는데 ‘하나님 사랑’은 ‘이웃사랑’을 통해서 증명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이라는 타자를 환대하고 초대하고 받아들이는 넓고 깊은 마음을 키워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년도 표어는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새로워지려면 과거의 것에 매여있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이기에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이니 새로워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품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품은 사람’입니다. 새해, ‘그리스도를 품은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여러분을 통해 이 세상에 비추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가 넘쳐날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