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화해의 영이여, 하나되게 하소서(고린도후서 5:17~19)

  • 관리자
  • 2020-01-05 20:29:00
  • hit1847
  • 222.232.16.100

화해의 영이여, 하나되게 하소서(20200105)
고린도후서 5:17~19


경자년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주신 말씀대로 새해에는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시는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올해 한남교회 비전은 총회 주제를 따라 ‘화해의 성령이여, 하나 되게 하소서’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비전으로 삼았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공동체’를 지속해서 추구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예배가 그분과 화해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예배 드리는 시간에 하나님은 임재하십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의 예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지켜보신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도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잘 해오셨지만, 올해는 더욱더 예배에 집중하셔서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모든 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예배를 건성건성 드리는 것은 복의 통로를 좁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매일매일 재창조하시며,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길 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도 새롭게 창조되기를 고대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제조건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라는 전제조건 없이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하고 직책을 맡았어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지 않고 지지부진하다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솔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서 안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새해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엔 스스로 자신의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대견스럽게 생각할 수 있길 바랍니다.

 

■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이미 ‘화목한 상태’라면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창세기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은 모든 것이 조화롭게 살아갔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아담과 하와의 관계도,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모두 화목했지요. 그런데 죄를 범하자 이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분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 숨고, 더불어 사랑하며 살아가던 짝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늘 풍성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던 땅이 가시덤불을 냅니다. 그렇게 분열되자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난 인간은 살인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단순히 동생을 죽인 것을 넘어 자신을 죽인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분열’인 것이지요. 죄라는 것은 이렇게 우리의 모든 관계를 분열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며, 유토피아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고작해야 그들은 ‘바벨탑’을 쌓을 뿐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꾸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지만, 바벨탑을 쌓을 뿐입니다. 이 문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18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는 이런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나님과 다시 화해하는 길을 열어놓으신 사건이 바로 ‘성탄 사건’인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화육하신 예수님,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가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게 된 것입니다.

 

■ 화목하게 하는 직분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새것으로 창조한 인간’에게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이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평화의 도구’로 살아갑니까? 오히려 사랑이 있는 곳에 미움을 심고, 상처를 더 크게 만들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위로받기만 좋아하고, 이해받으려고만 하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저도 말로는 이렇게 하면서 온전히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회개하며, 온전해지고자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발버둥을 쳐야 겨우 한 걸음 정도 나아간 저를 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이 나라에서 화목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나를 잘 살펴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 새 것이 되는 귀한 경험을 하는 새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

개역성경 19절의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말씀을 조금 쉽게 풀면 이런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재창조하시고, 그분의 대사로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올해 주제를 상기하십시오. “화해의 영이여!” 그렇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죄에 짓눌려 분열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과 자연과 생태계와 자기 분열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회복시키시어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화해자의 직분을 주시고, 그 직분을 잘 감당할 때 우리를 친구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였는데, 그리스도 안에 거하니 새롭게 재창조하셔서 친구로 삼아주신다니, 이것이 복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새해에는 화해의 영이신, 주님께서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셔서 예수님의 친구가 되시는 복을 누리십시오.

 

■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공동체


이런 일들이 가능해지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겠습니까? 예배는 복을 받는 통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복’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되는 것,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의 친구가 되고,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깨달아 가는 곳마다 화해자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새해, “화해의 영이여, 하나되게 하소서!”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이뤄지길 바라며 말씀을 마칩니다.

 

거둠기도

화해의 성령님,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새해를 주셨사오니 우리도 새롭게 창조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온갖 절망과 죄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