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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법(호세아 1:2~10)

  • 관리자
  • 2019-08-04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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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법
호세아 1:2~10


사랑이야기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거짓입니다. 요람에서부터 거짓 사랑, 왜곡된 사랑에 익숙해진 우리는 육체적인 욕정과 소유욕, 물질과 권력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을 사랑인 줄 압니다. 한때 ‘LOVE IS~’라는 연재물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나름 재미있고 간혹 의미 있는 문장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런 연재물은 사랑을 이성 간의 사랑에 한정시키고,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식의 남녀상열지사 같은 것에 머물게 합니다. 이런 사랑이야기들이 위험한 이유는 우리의 인간관계에 혼란을 가져오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도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토커’가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된 적이 있었습니다. ‘스토커’는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자식들을 사랑한 나머지 ‘마마보이’로 키우고,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키웁니다. 이런 왜곡된 사랑의 형태는 다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왜곡된 사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 호세아서의 시대적인 상황


1장 1절에는 호세아가 예언하던 시대가 언제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 왕궁의 왕 한 사람이 소개되는데 그는 여로보암입니다. 예후 왕조에 속하는 여로보암2세 치하에서 이스라엘은 상당 기간 번영을 누립니다(B.C. 787-747). 번영기의 이스라엘은 도덕적 타락과 사회 정의의 부재와 지도층의 타락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종교적인 타락’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신들의 유혹은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습니다. 당시 가나안이 신들은 자연이 힘 곧 비와 천둥과 번개, 땅의 풍요와 다산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농경 생활의 다양한 필요를 채워주는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선조의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나안 신들의 호의를 얻는 범위에서 타협한다면 자신들이 신앙도 지키고, 가나안 신들의 도움도 받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다 출신 호세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에 나타나서 “너희들에게 땅의 풍요와 다산을 보장해 주신 분은 가나안 신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셨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7절에 자신이 속해있는 유다 족속은 긍휼히 여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북왕국 이스라엘에게 호세아는 밉상이었을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도 아닌 자가 예언을 전하는 것도 기분 나쁜데, 자기가 속한 유다 족속은 여전히 축복하는데다가, 하나님의 예언자라는 사람이 창녀 고멜과 결혼하였으니 요즘 말로 비호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예후 왕조는 여로보암 다음 임금이 등극한 후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끝납니다. 오늘 읽은 4절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여로보암 2세 이후 왕위를 물려받은 이들은 6개월, 1개월 만에 시해되기도 하면서 예언자와 동명이인인 호세아라는 왕을 마지막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앗시리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B.C. 722년).

 

■ 고멜


고멜에 대해서 ‘창녀, 간음하는 여인, 음란한 여인’ 등으로 번역합니다. 그렇다면, 고멜은 ‘매춘부’나 ‘남자를 밝히는 여자’였을까요?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고멜과 결혼하라고 하셨고,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한 것일까요? 게다가 3장에 보면, 호세아와 결혼한 후 아이를 셋이나 낳았음에도 다른 남자와 침실에 누워있습니다. 호세아는 큰돈을 지급하고 그녀를 다시 데려옵니다.고멜은 단순히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정도로 부정합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법에 따르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고멜은 일반 매춘부가 아니라, 가나안인들에게서 유래하는 ‘풍요 다산의 제의’와 관련 있는 여자로서, 가나안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풍요를 기원하면서 행하는 성적인 의식에 참여하던 ‘신전 창녀’였던 것입니다. 그냥 남자를 상대로 하는 매춘부보다도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성향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신전 창녀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아이 셋을 낳고도 다른 남자 품에 안겨있는 고멜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 신들에 대한 종교적인 제의, 여전히 고멜은 가나안 신들을 섬기는 일에 빠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호세아가 그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고, 큰돈을 지급하기까지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고멜과도 같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라는 대가를 치르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5장 6-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여러분, 죄가 없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죄가 없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가나안 우상에 푹 빠져있는 고멜과도 같고, 하나님과 가나안 신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있는 북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때문에 손가락질당하고 비웃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죄의식에 빠져 살아가면 안 되지만, 죄에 대해서는 민감해야 합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의로워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우리에게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고멜과 같은 죄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이즈르엘&로루하마&로암미


하나님은 호세아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서 주위를 환기시키고 에언 메시지를 전합니다.

장남 이즈르엘은 이스라엘 땅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들의 흑역사를 암시하는 이름입니다. 4절에 ’예후’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예후에 관한 이야기는 열왕기하 9-10장에 나옵니다. 예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 아합의 가문뿐 아니라, 자신이 구테타로 획득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스르엘에서 오므리의 친척들을 모두 학살하는 잔인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열왕기하에서는 이런 예후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만, 호세아는 이런 잔인한 역사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가 끝난 후 사마리의 멸망에 이르리기까지 이어지게될 정변의 원인으로 본다.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로암미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로’는 부정부사로 ‘~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로’라는 부정관사를 제외하고 ‘루하마’가 되면 ‘긍흉히 여김을 받는 여자’라는 뜻이요, ‘암미’가 되면 ‘나의 백성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곳에 계신 문들은 루하마, 암미의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 없는 듯 살아가지만


자녀들의 이름과 관련한 이야기 끝에 아주 중요한 구절이 나옵니다.

9절에서 로암미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이름을 지으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이름이 가진 뜻에 더해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대답하신 하나님의 대답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있다, 존재한다’는 동사와 관련이 됩니다. 하나님은 있는 분이시고,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이 ‘있음’과 ‘존재함’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과의 관계에서 확증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그분의 현존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듯, 가나안 신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은 마치 고멜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서 “여보, 사랑해!”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예언자가 매춘부와 결혼해 아이를 낳으라는 명령도 놀랍지만, 버젓이 다른 남자와 누워있던 고멜을 큰돈을 지급하고 다시 데려와 아내로 삼는 이런 방식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있을 때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끝내 찾으시고,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던 우리를 마침내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 우리는 모두 고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고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도 머리로만 알고 삶으로는 살지 않습니다. 고멜처럼 용서받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우리는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그를 떠나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삶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가 누구를 정죄하고, 누구보다 더 신앙적으로 낫다고 우위를 주장하며 교만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품으시며 당신의 사랑 안에 거하시길 원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고멜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되어 새사람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그 하나님 품에 안기셔서 새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되 나의 방식대로 착각 속에서 사랑하지 마시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로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삶이 달라지고, 여러분의 가정이 변화고, 교회가 변하고, 하나님의 교회가 있는 이 나라가 부흥할 줄로 믿습니다.*

 

거둠기도

 

사랑이신 하나님, 고멜과도 같은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지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죄인임에도 우리는 구원의 길에 들어섰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 이 귀한 사랑을 깨닫게 하시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혜를 갖게 하시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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