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맥추감사주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박국 3: 17~18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날을 단순히 해마다 한 차례씩 있는 기념행사로 여기지 마시고 한해의 절반을 돌아보며 감사하고, 한 해를 시작하며 계획하고 기도했던 일을 이뤄가는 힘을 얻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맥추감사주일의 기원
‘맥추감사주일’은 출애굽기 23장 16절의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기원합니다.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를 출애굽 시키신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그들을 인도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은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40년 광야생활은 430년 동안 대를 이어 노예 생활하면서 몸에 밴 노예습성을 벗어버리는 기간이었습니다. 그 훈련 끝에 이집트에서 유월절 사건을 경험하고 목격했던 세대는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으며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광야 생활과 정착생활
광야 떠돌이 생활을 할 때 그들은 “오늘은 무엇을 먹고 마실까, 어디에 머리를 두고 잘까? 비가 오고 모래 폭풍이라도 몰려오면 어떻게 하나?” 온갖 근심과 걱정에 빠져 살았습니다. 광야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생존에 급급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생활을 마감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월세나 전세를 살며 2년에 한 번씩 마음 졸이다가 평생 살아가도 좋은 ‘내 집’을 마련한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광야의 생활이 생존하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면, 가나안에 정착한 후 비로소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정착생활을 하면서 당연히 농사를 짓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그리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둔 날을 기념하여 ‘맥추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만, 근동지방에서도 곡식류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먼저 수확할 수 있는 것이 ‘보리’였습니다. 다른 곡물에 비해 쓰임새도 뛰어났기에 고대 근동에서 농사는 곧 ‘보리농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모세는 첫 열매를 보리로 생각했고, “맥추절‘이라 이름 붙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이스라엘의 역사패턴
이렇게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사사시대’를 거쳐 사울로부터 시작된 ‘왕정체제’를 시작으로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들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분단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주전 7세기 분열왕국 시대에 하박국 예언자가 활동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바벨론 군대를 들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실 예정인 것을 알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로부터 하박국 예언자가 활동하기까지 이스라엘 역사는 기이하리만큼 동일한 패턴으로 이어집니다. 그 패턴은 이렇습니다. ‘배반-전쟁-지도자-퇴치–평화’, 이 패턴이 사사시대 이후, 분열왕국 시대까지 변치 않고 이어집니다. 바보들도 아닌데 왜 이럴까요?
노예생활 430년을 마치고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떠돌던 이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나니 가나안 원주민들이 ‘부럽부럽 광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과 비교해 보니 자신들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풍요의 신과 보이지도 않는 야훼가 의심스럽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의 삶을 기웃거리며 ‘우리도 저렇게 살고 싶다.’ 생각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다 펌프를 사용하니까 너무 편했는데,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옆집에 가보니까 정수기가 있어요. 부럽겠죠? 그래서 정수기를 샀더니 이젠 얼음이 자르르 나오는 정수기가 나온 겁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이 꼭 그렇습니다. 노예생활을 할 때에는 출애굽만 했으면 좋겠다, 출애굽 했더니 정착했으면 좋겠다, 정착했더니 원주민들처럼 광나게 살고 싶다, 저들처럼 왕을 세우고 싶다……. 결국, 끊임없이 가나안 원주민들과 주변 국가를 기웃거리며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은 결과 우상숭배를 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납니다.
■ 초점 주변의 것들이 보이는 이유
바보들도 아닌데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생활을 하는 이유는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지 않고, 자꾸만 주변의 것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담을 때 초점을 맞추면 주변의 것은 흐릿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사진을 현상하면 초점이 맞은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것들도 나옵니다. 초보운전자는 운전할 때 앞만 보고 갑니다. 그러나 운전이 능숙해 지면 옆도 보고 뒤도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앞을 보고 운전하지 옆을 보고 운전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옆을 보고 가다가는 사고가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을 주로 바라보지만 그렇다고 옆의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갑자기 옆으로 끼어드는 차가 보이는 이유는, 옆에서 쳐들어오는 차가 있으니 안전하게 운전하라는 사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목표를 두고 살아가도 하나님만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의 것들도 보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원주민들과 주변 강대국의 ‘비까번쩍 부럽부럽 광나는 삶’이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옆에 보이는 것은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가게 하는 장치지, 목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미련하게도 반복해서 주변 국가들을 기웃거리며 목표를 상실하고 맙니다. 하박국이 살던 주전 7세기의 상황도 똑같습니다.
■ 하박국 예언자의 특별한 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사랑을 받는 민족이니 하나님께 특별대우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기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자라고 해서 인생길에서 특별대접을 받진 않습니다. 놀랍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인생길에서 만나는 풍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닙니까? 단지 다른 것이 있다는 그 풍랑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예언자 하박국은 특이한 예언자입니다. 대체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거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동과 말로 회개를 촉구하는 형식으로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 하박국은 우리의 말을 ‘하나님’께 전해주는 예언자입니다. 그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과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을 서슴지 않고 하나님께 털어놓습니다. 그는 예언자답게 단호한 말로 “하나님, 얼마나 더 외쳐야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항변합니다. 하박국은 이제 곧 하나님께서 바빌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이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이스라엘을 치게 하시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따집니다. 여러분은 그럴 때가 없습니까? 하나님의 침묵에 대하여, 하나님을 잘 믿는데도 풀리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매사에 일이 꼬이기만 할 때, 하나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시던가요? 하박국 예언자가 이렇게 하나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 하박국 선지자의 깨달음
그러나 그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비로소 자신이 보고 불평한 것은 ‘옆에서 치고 들어온 것’이며, 오직 자신이 바라봐야 할 것은 하나님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잠시, 옆을 보고 흔들렸던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제자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한결같이 신뢰하는 삶이야말로 제대로 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신앙고백의 노래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노래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그 이전에 목표를 상실하고 가자미 눈을 하고 보았을 때에는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으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찬양한 이유도 없고, 자신의 삶도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을 바라보니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신앙을 지키는 하박국, 그는 ‘하나님’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 절반의 감사와 새로운 시작
‘맥추감사주일’은 한 해의 절반을 결산하고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절반의 감사를 드리며, 새해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목표’를 재점검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새해에 다짐했던 ‘목표’를 선명하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혹시 6개월 동안 목표 옆에 아른거리는 다른 것들을 바라보다 목표를 잃어버리지는 않으셨습니까? 목표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이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보십시오. ‘연초에 세웠던 목표를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특히 신앙생활과 관련해서 세운 목표를 분명히 하십시오. 그 목표를 분명히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해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2017년 하반기, 여러분의 삶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