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발견하는 진리(성령강림후 제1주)
잠언 8:1~4, 22~31

지난주 성령강림주일에 교회력에 따라 “그게 아니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고린도전서 12:8~10)는 성령의 열매(갈 5:22~23)로 확증될 수 있습니다. 즉 일상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성령을 받았다고 한들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로 “그게 아니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1주입니다. 이번 주일에 교회력으로 제시된 말씀은 구약 잠언 8:1~4, 22~31절과 시가서 시편 8편, 서신서 로마서 5:1~5, 복음서 요한복음 16:12~15절의 말씀입니다.
■ 교회력 본문의 연관성
잠언 말씀에는 ‘지혜’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전반부 4절까지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지혜’는 길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 있어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혹시 못 본 사람이 있을까 싶어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사람을 소리높여 부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누구라도 ‘지혜’를 보지 못했다거나 듣지 못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지혜를 볼 수 있고,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지혜로워지면, 진리의 영이 임하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잠언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을 지혜의 내용으로 제시합니다. 시편 8편은 창조세계의 신비를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이 먼저 깨달아 알아, 원수들과 보복자의 입을 막아버린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의 말씀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새롭게 창조된 새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채워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은 ‘진리의 성령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축약하면, 지혜와 진리의 성령은 ‘일상의 삶’을 통해서 누구나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비밀과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 때문에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특별한 곳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평범한 삶에서 일어나며, 그 일은 특별한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나 어린아이나 젖먹이 같은 이들을 통해서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 우리를 재창조하시어 은혜의 삶으로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 지혜, 지식, 진리
비슷한 단어지만 많이 다른 단어입니다. 일단 히브리어로 지혜는 호크마(wisdom), 진리는 예멧(faithfulness), 지식은 야다(knowing)입니다. 지혜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잠언서에서는 지혜와 지식을 의도적으로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단어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국문학 강의시간이 아니므로 간단하게만 설명하겠습니다.
진리는 ‘그냥 믿는 것’입니다. 진리의 속성은 ‘절대적’입니다. 기독교에서 진리는 곧 예수님이 십니다. 그래서 진리는 ‘믿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자신의 이로움을 위해 습득합니다. 그래서 지식은 일단 생기면 자신들 드러내게 됩니다. 이에 반해서 지혜는 깨우치는 것입니다. 지혜는 궁극적으로 평안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식은 흔하지만, 지혜는 희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식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지만, 지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진리가 우리 삶이 도달해야 할 목표라면, 지혜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는 안내자요, 지식은 그런 과정을 돕는 수단입니다. 그러나 지식은 수단이기 때문에 필수조건은 아닙니다.
■ 창조세계의 신비
지난주에 시크릿가든과 화분에서 수많은 것을 만났습니다.
불가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우담바라를 위시해서, 일액현상으로 카라꽃 끝에 맺힌 영롱한 이슬, 산수국 헛꽃에 피어난 꽃과 참꽃, 꽃보다 꽃받침이 더 예쁜 으아리, 아침 햇살의 빛에 빛나는 텅 빈 충만의 속새, 사철나무와 대추나무의 연록색 꽃과 하얀 별을 닮은 달래 꽃…. 교회 주변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보고 담았습니다. 그리고 묵상을 하며 이런 글을 썼습니다.
신비스러운 하루를 열어가고 있다.
창조세계의 신비를 볼 줄 모르는 이들은 장님이다.
눈을 뜨면, 우리 주변에 아름다운 것 투성이다.
신앙도 그렇다.
신앙의 눈을 뜨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진리는 너무 평범해서, 신비롭게, 감사하며, 소중하게 여기기 쉽지 않다.
그 누군가, 보여주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제가 사진을 찍어서 이런 모습이 있더라 하면, ‘아, 그런 모습이 있군요!’ 하는 거지요. 그냥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세세하게 살펴보면 작은 정원과 화분에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신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하고 신비스러운 것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지요.
중국인 오경웅이 시편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1946년에 출판한 <성영역의>라는 책이 있습니다. 최근에 그 책을 송대선 목사가 <시편사색>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습니다. 오늘 교회력 본문인 시편 8편 3절의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靜觀宇宙內 氣象何輝煌 瑞景燦中天 星月耀靈光
고요한 눈매로 세상 이치 살펴보면 천지 기상의 오묘함이여 상서로운 기운은 하늘에 찬란하고
별과 달 요요히 빛을 발하네(송대선)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개역성경)
주님이 거대한 하늘, 캄캄하고 광대한 하늘을 우러러봅니다. 손수 만드신 하늘 보석, 제자리에 박아 넣으신 달과 별들을(유진 피터슨)
여기서 제가 주목한 단어는 ‘靜觀’입니다. 송대선 목사는 ‘고요한 눈매로 세상 이치 살펴보면’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저는 ‘맑은 눈으로 바라보면’이라고 읽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들여다본다는 것은 선입견이나, 어쭙잖은 지식이나 판단 없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립니다. 이것이 눈뜸의 기적이요,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는 기적이요, 벙어리의 혀가 풀리는 기적입니다.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일상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교회오빠
지난주에 <교회 오빠>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대부분 영화관에서 지난 화요일 영화상영이 끝났다고 하니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37살 이관희 집사라는 분이 종합검진 결과 4기 대장암 판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6차에 거친 항암치료결과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아내가 4기 혈액암에 걸립니다. 아내도 무사히 항암치료를 마치고 다시 회복될 즈음, 이관희 집사의 암이 다시 재발합니다. 12차에 이르는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어머니가 자살하고 주인공 부부의 삶은 욥의 고난에 견줄만한 고난을 겪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부부의 소망은 아주 소박합니다. 딸아이 돌잔치까지 죽지 않고 함께 하는 것, 유치원 입학식 때 딸아이 손잡고 유치원 가는 것, 딸아이 결혼식 때 손잡고 결혼식장 들어가는 것….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돌잔치는 함께 했지만, 이관희 집사는 결국 딸아이 세 살 무렵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어떤 기적도 없이 끝납니다. 영화 ‘교회 오빠’의 명대사 7가지는 이렇습니다.

“내 안에 나는 죽고, 오직 예수님만 사는 삶, 어떻게 보면 굉장히 멋있는 말이고, 굉장히 어려운 말인데,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나나 은주나,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인 거야.”
“그래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어. 쫄지마!”
“숨 고를 겨를도 없이 밀려오는 고난의 흐름 앞에 깊은 탄식과 함께 제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모든 죄에 대한 처절한 회개와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하면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증오하면서 보내고 싶진 않은 거야.”
“얼마다 고통스럽고 힘드시면 저렇게 울부짖으실까.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누워있는게 아니고, 예수님이 지금 누워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오빠가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오빠 마음은 그게 아닌데 은주한테….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해서…. 많이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은주야.”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법이, 저는 나만의 손익계산서를 쓰거든요. 여태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누렸던 은혜와 내가 지금 느끼는 절망….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보면 항상 플러스에요. 우리가 힘들어하고 원망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당한 이 고통의 현실에만 집착하고 있지만, 내 삶 전체를 보았을 때, 내가 받은 은혜들을 다 계산해 보면, ‘감히 하나님께 원망을 할 수 없다.’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
이 대사에 대해 구구절절 해석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하루라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것인지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일상
우리의 일상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충만과 공허, 의미와 무의미, 빛과 어둠이 수시로 교차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처럼, 슬픔에 처할 때에도, 절망 속에서도, 공허할 때에도,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어둠을 경험할 때에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잠잠하게, 맑은 눈으로, 고요한 눈매로 세상 이치 살펴보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 안에 살아가는 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혜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성령에 붙잡혀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한 주간 살아가시면서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에 흠뻑 젖어들길 바랍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