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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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면 아니다”(사도행전 2:1~22)

  • 관리자
  • 2019-06-09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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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면 아니다”
사도행전 2:1~22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기독교 용어 중에서 ‘성령’이란 단어는 참으로 신비스럽고, 신비스러운 까닭에 오해도 많습니다. 성령강림주일에 ‘성령이란 무엇인가?’를 신구약 성경 전체적인 맥락을 따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도우셔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 깨달음의 지혜를 주시고 깨달음이 일상의 삶이 되는 은사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지난주에 요엘서(2:28~32)의 말씀으로 ‘인생이라는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궁극적으로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주신 그 선물로 큰 기쁨을 얻기를 열망하십니다. 그 열망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도 동행하시며 도우시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그리하여 인생은 선물입니다. 지난 한 주간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이라는 선물을 빛나게 하는 삶을 살아가셨으리라 믿습니다.

 

■ 성령이란 무엇인가?(구약시대)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이며, ‘영’, ‘바람’,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창세기 첫 부분에 등장하는데 1장에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등장하고, 여섯째 날,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흙(Adama)과 영(ruach)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며, 흙과 영이 함께 있는 상태를 ‘살아있다’고 하고, 영이 흙으로부터 떠난 상태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성령을 받는 대상은 정해져 있습니다.

모세와 같이 부르심을 받은 선지나, 사사, 예언자, 왕이나 특별한 사명을 위해 부르심을 받는 경우에 ‘하나님의 영’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구약에는 ‘성령’이라는 말은 없고, ‘하나님의 영’이라는 단어만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는 두 가지 영이 등장하는데 ‘나쁜 영(악령)’과 ‘좋은 영’이 등장합니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욥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통해서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영은 좋은 영이든 나쁜 영이든 기능적이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사람의 재능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사울처럼 하나님의 영을 받았더라도 겸손하지 않고 불순종하면 사라져버리고 악한 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구약성경에 성막제조업자 브살렛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가 하나님의 성막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귀한 일을 감당하지만(브살렛, 삼손, 기드온...) 다분히 기능적이고, 겸손할 때에는 임했다가 교만하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체험하던 ‘하나님의 영’은 모세와 요엘을 통해서 개인적인 은사에서 공동체적인 은사로 확장됩니다. 민수기 11장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홀로 치리히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던 모세에게 장인 이드로가 찾아와 해법을 알려줍니다. 그 일을 나눠서 할 지혜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장로 70명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일하려면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모두 회막으로 모이라고 합니다만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은 진영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받았을까요, 받지 못했을까요?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에 항의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모세는 그에게 “시기하냐? 나는 회막에 있는 장로들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예언자가 되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예수님 오시기 전 500년 전에 예언했던 요엘서의 말씀에도 나옵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대로 만민에게 영을 주어 주셔서, 아들과 자녀들이 예언을 하고 노인들을 꿈을 꿀 것이다(욜 2:28~32“고 합니다. 이렇게 창세기에서 민수기로 요엘서로 ‘하나님의 영’에 관한 이야기는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영’이지 ‘성령’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 성령이란 무엇인가?(신약)

그런데 신약은 구약과 다릅니다. 복음서 중에서 ‘성령’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복음서는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누구입니까? 사도행전의 저자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자신을 대신하여 제자들을 도와줄 ‘보혜사 성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나는 가지만 이제 나 대신 너희를 도와주는 성령이 오실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다시 모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친히 함께 하시고 보이시며 자신이 부활하셨음을 분명하게 보이십니다. 그리고 함께 40일을 지내신 후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리라” 하시고 승천하십니다. 오순절을 10일 앞둔 시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10일 이후 유월절(오순절)을 맞이하여 각지에서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던 이들이 성지 예루살렘으로 올 것을 압니다. 그들도 유월절을 지키고자 했고, 그 10일을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면서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이 되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마침내 모세의 기도와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제 남녀노소 누구나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비로소 ‘성령의 민주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제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 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리하여 신약시대에 이르러 구약의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거룩한 영’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이런 명칭의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이므로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은 출퇴근 개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이르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내재하십니다. 구약에서는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오는 개념이었는데, 신약성경에서는 한번 성령이 임재하시면 배신을 해도 끝까지 안 떠나십니다. 이런 차이가 구약과 신약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는 ‘통’으로 성령을 이해합니다. 그러하면 ‘통’으로 이해하는 성령은 어떤 분이신지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 성령을 받으면 반드시 생기는 은사


고린도 전서 12장 8~10절에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렇게 성령을 받으면 다양한 은사를 받습니다. 물론, 한 사람이 이 많은 은사를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성령의 역사를 상징할 때, 불처럼, 바람처럼, 강물처럼 임하신다고 합니다. 불은 뜨겁고, 바람은 시원하고, 강물은 차갑습니다. 뜨거운 것만 좋아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성령의 은사가 임하면,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변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게 성령이 임한 사건이지요. 그런데 만일 그 이후 사도 바울의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면 대맞에 벌어진 한바탕 어릿광대짓에 불과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그 체험을 통해서 성령 받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변화의 증거가 무엇일까요? 열매입니다.

 

■ 성령을 받으면 반드시 맺는 열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반드시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귀한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에게 임하신 것은 ‘은사요 능력’입니다. 이에 반해 열매는 ‘인품’입니다. 구분되십니까? 받은바 은사를 사용할 때 반드시 인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좀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장으로 바꿔보면 이런 문장이 됩니다.

 

종교적 신비체험(은사)에서 중요한 것은 ‘신비체험(은사)’의 종류가 아니라 ‘일상적인 형태(일상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종교적 경험을 통해서 일상적인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축약한 단어가 패러다임의 변화, 회심(메타노이아)입니다.
 


일상의 삶, 즉 열매로 이어지지 않는 은사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은사의 체험을 했든지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그 사람의 삶이 그리스도인답게 되었다면 그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며, 만일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7장 21~23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을 축약하면 “그게 아니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한남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보혜사 성령님께서 내재하시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성령 받은 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받은바 은사가 전부라고 말하지도 마십시오. 방언하는 것을 성령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성령의 은사들이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열매 맺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의 미완의 대작 <팡세>에 있는 문장을 소개해 드리고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는 이들에게
그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고 분명하게 나타나길 원하시지만,
피하는 자들에게는
자신을 감추시길 원하신다.
그를 찾는 사람은 그를 알 수 있고,
찾지 않는 사람은 그를 알 수 없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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