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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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선물(요엘 2:28~32)

  • 관리자
  • 2019-06-02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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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선물
요엘 2:28~32

 

요즘 ‘슈퍼밴드’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합니다. ‘슈퍼밴드’가 젊은 세대에게 인기라면, 중년 이상의 세대에게는 ‘미스트롯’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홍자’라는 가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인기가 그리도 높은지 궁금해서 유트브에서 슈퍼밴드에 출연한 ‘자이로’의 연주와 홍자의 ‘비나리’를 들어보았습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타고난 재능과 노력의 완벽한 조화의 완결판을 보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타고난 천재성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적인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나의 노력과 수고가 만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생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꿈에 대한 열망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꿈꾸며 헌신할 때, 하나님은 또한 강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은 어느 때를 살아가시든지 열심히 살아가시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풍성하게 하시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재앙이 편만한 시대에서

 

 

요즘 우리 시대는 사회적으로 큰 재앙을 겪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파괴로 인류가 겪는 재앙은 제4차 과학혁명시대도 풀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세계의 석학들도 인류의 위기를 직감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중입니다. 정치는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봉사하고, 종교는 현실을 회피한 피안 세계에 머무는 신앙인을 양산해 내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타락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방향을 잃고 표류합니다. 한 마디로 재앙이 편만한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재앙의 시대에 ‘우리 인생은 선물일까?’ 질문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인생의 목적을 상실하고 ‘죽지 못해 산다.’고도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인생은 여전히 선물’이며,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 요엘 선지자

 

 

재난의 시대에 예언한 요엘은 재난의 전거로 ‘메뚜기 재앙으로 모든 농작물이 초토화된 상황’에 비유합니다. 메뚜기의 재앙을 적군의 대대적인 침공 사태로 비유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메뚜기 떼는 주기적으로 중동 지역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요엘서 2장 2절에 묘사하고 있듯이 ‘메뚜기 떼가 산등성이를 넘어 구름처럼 몰려와 태양을 가리면 세상은 어둠으로 뒤덮이고, 사방으로 기어 다니며 닥치는 대로 곡식을 먹어치웁니다. 농부들은 두껍게 벽을 치기도 하고, 빗자루로 후려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고 머지않아 농작물은 산불에 타버린 것처럼 됩니다. 한 해의 수확물로 먹고사는 지역에서 그런 메뚜기 떼는 침략하는 적군처럼 치명적입니다(2:4~10).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먹을거리‘의 초토화처럼 큰 재앙은 없을 것입니다.

 

■ 재앙의 의미

 

 

재앙이 편만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처럼, 요엘이 메뚜기 떼로 보여주는 상징은 이스라엘에게는 참으로 큰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엘서를 읽을 때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재앙들을 통해서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뚜렷하게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게 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포함함으로 각자도생의 삶에 공동체적인 삶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앙은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살아가는 바쁜 일상과 자기 몰두에 빠져서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실을 드러나게 하는 축복일 수 있습니다. 재앙을 통해서 우리 삶에 드러나지 않던 영적인 차원을 인식하게 됩니다. 재앙을 통해서 우리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별일이 생기고 나서야, 별일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말입니다. 평온한 삶을 살아갈 때에는 진리가 드러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게 하는 것입니다.

 

■ 새로운 기회의 시간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일, 기쁜 일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재앙까지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고, 다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엘서에서 강조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재앙이 닥쳤으나 아직 늦지 않았다. 삶을 고치라. 옷만 바꿔입지 말고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함으로 새롭게 태어나라. 재앙의 날이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고, 재앙으로부터 피할 곳이 있을 것이요, 남은 자가 있을 뿐 아니라 부름을 받을 자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재앙의 시간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의 시간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의 결과물인 플라스틱공해, 미세먼지,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문제는 재앙입니다. 이런 재앙을 겪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동역자로서의 인간이 얼마나 죄를 범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봅니다. 공장식 축산과 화학물질로 생산량은 전 세계 인구가 풍족하게 먹고살 수 있을 만큼 성장했지만, 나눔의 부재와 기형 동식물 등의 재앙으로 우리는 그 방법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이미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힘써온 환경단체와 구호단체와 개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인식하지 못했던 이들도 이런 재앙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함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45대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Albert Arnold "Al" Gore, Jr, 1948년 3월 31일 ~)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에서 ‘지구 온난화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불편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진실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책 제목이 참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재앙, 원하지 않는 고통과 아픔의 시간은 우리를 끝장내시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요, 새로운 기회의 시간임을 믿으십시오.

 

■ 좋은 선지자

 

 

그럼에도 재앙의 때에는 각종 풍문이 나돌기 마련입니다.

돌연한 발병이나 죽음, 국가적인 재앙, 사회적 대혼란, 개인적인 상실, 전염병, 홍수, 참사 등의 재앙을 만나면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사람도 단번에 신학자가 됩니다. 이럴 때 떠도는 단골 풍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무능하다. 하나님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지옥 같은 현실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재앙으로 말미암은 환란을 더 부추기거나 절망하게 합니다. 좋은 예언자는 재앙을 통해서 절망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재앙을 죄에서 해방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편으로 사용합니다. 요엘은 이스라엘에 당면하고 있는 재앙 앞에서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단 하루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온 날이 없었으며,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 새 삶 새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고 외치며 희망을 보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좋은 종교요, 구원의 종교인 것입니다.

 

■ 예언과 꿈과 환상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재앙 이후에 이스라엘을 멸망의 길로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셔서 새롭게 하시겠다는 희망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자녀들은 예언을 할 것이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다(28).”고 합니다. 조금 이상한 구석이 없습니까? 오히려 자녀와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노인들이 예언하고 이상을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지 않은가요? 그런데 아무리 문장을 뚫어질 듯 바라보고,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고, 원문을 보아도 자녀가 예언하며 젊은이들이 이상을 보고, 노인들이 꿈을 꾼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왜 이런 말씀일까요?

 

예언자는 단죄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이상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청년은 이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말은 세련되지 못했지만 순수하고, 그들은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청년들이 갖춘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정하기보다는 종종 청년들의 뿌리를 뽑아버립니다. 마치 예언자의 예언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내리면, 이런 청년들의 말과 이상이 받아들여지고, 자녀와 젊은이들이 제시하는 것이 노인들의 꿈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리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힘들 때에나 기쁠 때에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해서 선물인 이유는, 단 한 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기쁠 때에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절망 가운데에서도 재앙 가운데에서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은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대해야겠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저마다의 재능을 주셨습니다. 여기에 더해져야 할 것은 노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나의 노력과 수고가 만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꿈에 대한 열망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꿈꾸며 헌신할 때, 하나님은 또한 강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노년기 같은 구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은 어느 때를 살아가시든지 열심히 살아가시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발견하시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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