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신앙의 뿌리 = 기도(마태복음 7:7~12, 누가복음 11:5~8)

  • 관리자
  • 2019-05-26 17:19:00
  • hit1699
  • 222.232.16.100

신앙의 뿌리 = 기도
마태복음 7:7~12, 누가복음 11:5~8

 

 

살다 보면 불안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불안한 절망의 언저리에서 팽이처럼 돌다가 언젠가는 쓰러져버릴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삶이 힘들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고향을 떠올리기도 하고, 유년시절이나 청년 시절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삶이 힘들 때, 생각이 나서 힘든 삶을 토닥여주며 다시 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을 뿌리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삶의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뿌리’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뿌리’라고 믿고 있는 그것이 진정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까?

 

■ 뿌리가 뽑힌 사회

 

 

요즘 우리가 사는 사회를 뿌리 가 뽑힌 사회라고 표현합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유년 시절이나 청년 시절 별다른 추억이 없습니다. 그저 학교나 왔다 갔다 하면서 입시와 취업을 위한 공부나 했습니다. 학교와 학원만 오가다 보니 고향이라고 해야 떠오르는 것은 재개발을 앞둔 몇 평짜리 아파트 단지입니다. 부모들은 ‘다 너를 위한 것’이라며 획일적인 경쟁에서 일등만 요구했습니다. 이런 삶을 살다 보니, 타인을 배려하거나 함께 협력해서 일하는 법을 잃어버렸습니다. 공동체보다는 개인,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공동체의 희생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공동체성을 상실한 ‘뿌리가 뽑힌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뿌리가 뽑힌 사회를 표현하는 말 중에 각자도생이라는 험악한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험악하고 무서운 말입니다. ‘각자 살 길을 도모한다’는 말 속에서 공동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뿌리가 뽑힌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는 자라나는 세대의 뿌리를 뽑아버린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뿌리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아주 혹독한 소외입니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 누구와도 자신의 느낌을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저마다 군중 속에 소외를 느끼며 이방인처럼 살아갑니다. 오늘날 SNS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과 연결된 공간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상현실이라는 점에서 휘발성 물질과 다르지 않습니다.

 

■ 뿌리 깊은 나무

 

 

《용비어천가》 2장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리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아 시내를 이루어 바다로 간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1980년 가을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된 <뿌리깊은나무>라는 월간지가 있었습니다. <뿌리깊은나무>는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창업자인 한창기 씨가 만든 잡지로 1976년 3월에 창간되어 유신독재와 소위 맞짱을 뜨며 시대정신을 이끌어왔지만, 1980년 가을에 신군부(전두환)에 의해 폐간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중학생 시절, 형님이 보던 <뿌리깊은나무> 표지를 통해서 사진가 강운구 씨를 알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엔 표지디자인과 제호가 좋아서 청계천 중고서점에서 <뿌리깊은나무>를 구해서 책꽂이에 멋으로 꼽아두기도 했습니다. 그 책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면, 가치가 제법 있을 터인데 아쉽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시인 프렌치스코 루이스 베르나르데츠(Francisco Luis Bernardez)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그들에게 묻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네."

 

‘그들에게 묻혀있는 부분’이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뿌리’입니다. 이렇게 뿌리는 중요한 것입니다.

 

■ 마태복음 7:7~12(parresia&hypomone)

 

 

기도에 관한 마태복음의 말씀이 주는 교훈은 이렇습니다. 기도할 때, 몇 번 청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한계점에 이를 때까지 무엇인가를 믿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떼쓰기’ 아니냐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진실’이라면, 이뤄질 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용기와 인내와 열정이지 떼쓰기가 아닙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기도할 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다윗이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모세가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할 때,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싸우며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끊임없이 하나님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파레시아parresia’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 라고 하면서, “기도는 parresia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parresia를 지배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내하는 ‘히포모네(hypomone)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줄여서 “파레시아는 히포모네와 함께 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진실한 마음으로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매일매일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진실된 것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매일매일 이뤄질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오. 이런 기도는 떼쓰기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뤄지길 바라는 간절한 열정입니다.

 

■ 누가복음 11:5~8

 

 

누가복음에는 빵을 얻기 위해 무례함을 잊은 채, 한밤중에 아웃 집이 문을 두드린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역시도 기도와 관련된 말씀인데, 그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손님을 위해 먹을 것을 얻는 데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대 근동(중동)지역의 ‘수치와 명예의 문화’에 관한 것과 연결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중동지역에서는 지금도 여행자나 나그네 혹은 자신을 찾은 벗을 대접하지 못하는 것을 심각한 명예훼손, 즉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 밤 중에 떡 세 덩이를 구하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이웃집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빵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이웃에게 무례함이나 실례를 범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웃집 친구는 빵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그가 ‘간절히 청하니’ 그 요구대로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빵을 얻기 위하여 빵을 구한 사람은 자신의 명예를 지킬 뿐 아니라 자기를 찾아온 벗의 배고픔도 해결해 줍니다.
 

■ 두 본문의 공통점(apocado)

 

 

두 본문에서 눈여겨볼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응답하는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부모의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고, 누가복음에는 ‘간청하다’라는 것에 방점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간청하면 ‘반드시 얻을 것이니’ 용기를 내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라”, 스페인어로 아포카도‘apocado’입니다. 열대과일 아보카도가 아니라 ‘아포카도’입니다. 그러므로 두 본문에서는 기도할 때에 매일매일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 간청하며 꾸준히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 기도는 ‘신앙의 뿌리’입니다

 

 

기도에 관한 말씀을 드리기 전에 ‘뿌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까닭은 기도가 곧 신앙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기도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샘 깊은 물이 가물에도 시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기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면, 작은 바람과 가물에도 이내 넘어지고 말라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뿌리를 깊게 내리려면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내는 참는 것입니다. 왜 참습니까? 아프니까 참습니다. 식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다른 곳에 옮겨 심거나 분갈이를 할 때면 뿌리를 적당히 잘라줍니다. 그래야 새 뿌리가 나와서 활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 다육식물을 기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다육식물의 특성은 물이 충분하게 공급되면 이미 몸 안에 물이 충분하므로 뿌리를 내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뿌리를 내린 건강한 다육식물로 키우려면 죽지 않을 만큼의 타는 목마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난도 부지런하게 물을 주면 이파리만 무성해질 뿐 꽃대를 올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목이 말라서 이젠 다 끝나는가보다 하는 순간에 꽃대를 올린다고 합니다. 갈증도 없고 추위도 없으면 난은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식물도 아픔과 고통이라는 과정을 거쳐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절망과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내입니다.

 

■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는 어떤 때 하게 됩니까?

매일매일 기도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더 간절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기도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어려움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그런 가운데에도 신앙의 촉을 민감하게 해주셔서 그동안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해야 함에도 기도제목으로 삼지 않았던 ‘감추어진 진실, 보지 못하던 진실’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늘 인내와 연결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보이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앙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보인다고 한들 일부만 보일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거의 보이는 나뭇가지 정도의 크기라고 합니다. 기도는 그래서 신앙의 뿌리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거룩한 척하는 것을 외식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외식하는 신앙에 대해 예수님은 위선자라고 꾸짖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앙의 뿌리를 깊게 하는 일에 열심을 내십시오. 그리하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한 여러분만이 골방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저 깊은 신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를 가꾸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일상의 삶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에 영양분을 공급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인생은 더욱더 귀한 열매를 맺는 인생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묵어서 굳어버린 신앙의 뿌리가 있다면 과감하게 잘라내십시오. 그리하면 새로운 뿌리가 나와 여러분의 신앙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간절히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간절히 찾고, 구하고, 두드리고, 간청하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는 신앙의 뿌리를 깊게 하는 행동입니다. 삶이 힘들 때, 주저하지 말고 기도하심으로 신앙의 뿌리를 깊게 하셔서,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