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1)

  • 관리자
  • 2019-04-07 17:04:00
  • hit1818
  • 222.232.16.100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
마태복음 27:32~44. 시편 55:12~13

 

 

아르마 크리스티(Arma Christi)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할 때 썼던 고난의 도구, 죽 ‘형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림으로 표한 그림 중에서 십자가 옆에 타원형으로 넓게 그려진 분홍색 이미지가 있습니다. 무엇처럼 보이시는지요? 대게는 창에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 즉 ‘성흔’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분홍색 그림이 입술처럼 보입니다. 입술처럼도 보이시죠?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입술이 뱉는 말이 줄 수 있는 상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십자가도 가시면류관도 채찍질도 아니라, 사람들이 쏟아낸 거친 말이었겠다 싶습니다.

 

■ 십자가 보다 더 힘든 고통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 고통스러운 거친 말들을 들으십니다.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예수야,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맞혀 봐라.”했을 때,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칠 때,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조롱할 때,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너나 구원해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하며 조롱할 때,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가 보다!”. 십자가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조롱의 목소리를 높일 때,

 

그 하나하나의 말들은 예수님의 몸과 마음에 독화살처럼 깊이 박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고통과 수치를 당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과 수치가 “나의 것이 되어도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상했다며 교회를 등지고, 예수님을 등지지는 않습니까? 아르마 크리스티 중심에 그려진 성흔, 그것이 입술처럼 보인 이유는 오늘날 ‘입술’을 제어하지 못해서 상처를 주고받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인가 봅니다.

 

■ 다윗의 탄식(시편 55:12~13)

 

 

 

오늘의 병행구로 선택한 시가서의 말씀은 다윗의 탄식입니다.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시편 55:12~13).”

 

이것을 조금 더 쉽게 풀어보면 이런 말입니다.

 

“나를 비난하는 자가 내 원수였다면, 참았을 것이다.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나의 동료요, 내 친구요, 내 가까운 벗이라니 참을 수가 없구나!

 

 

그렇습니다.

말로 입히는 상처는 창보다도 깊이 마음을 찌릅니다. 신앙인은 말로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아픔을 주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더구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탄식시’처럼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고,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건네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삶이 활짝 피어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난 안돼!”가 아니라 “난 할 수 있어!”, “난 못났어!”가 아니라 “난 아주 특별한 사함이야!”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삶은 말한 대로 살게 되는 법입니다.

 

오늘, 어린이 청소년부도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제가 꼭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말, 긍정적인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한 마디씩 해주세요. “넌, 참 멋져!”

 

■ 자신을 존경하라

 

 

제가 존경하는 분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自己’를 존경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을 대하듯 이웃을 대합니다. 자기에게도 이웃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고 존중하는 삶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은 자화자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은,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매일매일 돌아보면서 보완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현재를 자랑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막연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분명한 삶의 목표를 정하고 도달해야 할 과녁에 몰입하는 사람이 자기를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신을 존경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자신을 갈고 닦고 있습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매일매일 돌아보며 보완하고 있습니까?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있다면 자신을 존경하는 것이고, 없다면 존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의 질문을 잘 새기셔서 오늘부터 자신을 존경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는, 자신을 존경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이 빛나기 때문입니다.

 

■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유대교엔 예수님과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랍비는 힐렐Hillel(기원전 110년-기원후 10년)이라는 랍비입니다. 그의 <선조들의 어록> 14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힐렐)은 이렇게 자주 말했다.
만일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한단 말인가?
만일 내가 나를 위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인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힐렐은 과거에도 말했고 그 당시에도 말했으며, 이 글을 읽은 우리에게도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한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더 나은 자신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만일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할 때, 내가 아닌 다른 것들 즉, 부모나 친구나 스승이나 더 나아가 하나님의 힘에 의존하려고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다르게 풀면 ‘자신을 위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이라도 도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먼저,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을 위하십시오. 그리고 부모와 친구와 스승이나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나를 위한 유일한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이란 시간, 지금이라는 순간은 그런 나를 위해 정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나는 나를 존경하는가?

 

 

나를 위하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시간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잘하고 싶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게으름, 포기하고 싶은 유혹, 당장의 충동들을 과감히 거부하는 태도도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소중하니, 나의 오늘도 정말 소중한 시간인 것이지요.

 

“나는 나를 존경尊敬하는가?”

자신을 존경해야 타인을 존경할 수 있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을 발견한 사람만이 타인의 최선을 발견하기 할 수 있습니다. ‘존경’이란 영어단어는 ‘respect’입니다. 자신을 ‘보고(spect) 또(re) 보아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아는 것, 그것이 존경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존경하게 되면,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말은 삶을 바꾼다고 합니다. 즉, 생각에서 나온 말이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신을 살리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타인, 즉 이웃에게도 그들을 살리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의 시작은 자기 자신에게 좋은 말 하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상흔을 남긴, 아르마 크리스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고난이셨습니다. 그 고난의 흔적을 볼 때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말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사용했던 형구인 ‘아르마 크리스티’를 더 날카롭고 예리하게 한 것은 아닌지, 나의 말 때문에 예수님께 고난의 상처를 더 깊게 새긴 것은 아닌지.

 

영화 <나이 페어 레이디(1964년)>에 등장하는 음성학자 히긴스는 “말이야 말로 신이 인간에게 주신 아주 특별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말을 모욕하는 사람들은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남은 사순절 동안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시면서, 자신을 세워가시길 바랍니다. 우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꿈을 확실하게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존경하는 삶의 경지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언어생활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자신에게 한마디 하십시오. “당신을 존경합니다.!”*

 

(김민수 목사)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