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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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역(느헤미야8:1~3, 5~6, 8~10)

  • 관리자
  • 2019-01-27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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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넷째주일(20190127)
아름다운 동역자
느헤미야8:1~3, 5~6, 8~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실 때에 홀로 일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동역자로 삼아주셔서 일하십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아담을 창조하신 후 그에게 책임을 주심으로 동역하셨으며, 아담의 짝 하와를 지어주심으로 함께 더불어 일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도 노아를 불러 동역하셨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약속을 이뤄가셨으며, 야곱을 통해서, 모세를 부르셔서 당신의 위대한 계획을 실현해 가셨습니다. 모세를 위해서 동역자 아론과 함께 일하게 하셨고, 예수님도 제자들을 동역자로 부르시어 함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조차도 홀로 일하지 않으셨으며, 인간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에는 반드시 동역자를 보내주셨음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 그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오늘의 병행 본문인 고린도전서 12장 12~31절의 말씀은 ‘하나의 몸과 많은 지체’에 관해서 말씀합니다. 지체는 많지만, 몸이 하나인 것처럼, 교회 안에도 다양한 직분과 은사가 있지만 서로 더불어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남교회에도 다양한 직분이 있고, 각기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우리 모두 직분과 은사를 통해서 선을 이루어 가는 것,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 하나쯤이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한남교회로 보내주신 것은 한남교회를 통해 영광 받으시기에 꼭 필요한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목회자(교역자), 교인’이라는 세 축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라도 없으면 교회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한 분 한 분, 하나님께서 한남교회를 위해 꼭 필요한 동역자로 보내주셨음을 알고, 사명을 잘 감당하셔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귀한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해 갈 수 있도록 헌신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삶에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읽은 느헤미야의 말씀에 ‘에스라와 느헤미야’라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두 사람은 탁월한 동역자였습니다. 이들이 활동하던 당시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동역자로서의 삶을 결단하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대상황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본래 한 권의 책으로 역대기 역사의 결말 부분에 해당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Memorian’ 즉, ‘회고록, 비망록’의 성격을 가집니다. 그래서 두 책 모두 연대기적이라기보다는 결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결론은, 많은 방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의 재건을 잘 마칠 수 있었으며, 이 모든 일을 마친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주현절 둘째주일에 ‘너는 내 것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 땅에서 고향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물 가운데 지날 때에도 불 가운데 지날 때에도 하나님께서 너희를 지켜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내 것이라.”라고 하시며 격려했습니다.

 

 

기원전 588년, 페르시아가 바빌론 제국을 무너뜨립니다. 바빌론 대제국은 50년 지속되었는데 그중 40년은 느부갓네살이 통치했고, 나머지 10년은 여러 왕이 교체되다가 페르시아 고레스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고레스는 기원전 538년에 ‘고레스 칙령’을 발표하면서 유대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고레스 칙령이 발표된 뒤에도 대부분의 유대인은 이미 고향이 되어버린 바빌론에 그냥 남아있었습니다. 이유는 비록 포로지라고 할지라도, 나름 재산도 형성했고 고향 땅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이후 황폐한 채로 버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개서 1장 6절에 그 당시의 예루살렘 상황이 어땠는지가 기록되어 있는데 가난이 그 땅을 지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 건축이나 성벽 재건에 힘쓸 겨를도 없이 먹고 사는 생존 문제에 매달리는 일만으로도 벅찼던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그런 황폐한 조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레스 칙령 이후, 100년 정도 지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가 대략 기원전 444년 경이고, 느헤미야는 기원전 445년~433년,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술 따르는 관원이었으나 왕의 총애를 받아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은 바빌론으로 이송되었던 예루살렘의 성전기구를 돌려보냈고, 재정지원을 했으며 느헤미야를 총독으로 보내 성전을 재건하게 했습니다. 이 시기에 느헤미야는 학자이며 성경에 능통한 ‘에스라’와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동역자가 되어 성전재건과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에스라는 학자이자 선지자였으며 히브리어에 능통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해석하여 깨닫게 하는 일을 했으며, 성경에서도 그를 ‘학사 에스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모세의 율법에 근거하여 새롭게 종교의 틀을 잡아갈 때에 원칙에 근거하여 극단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일 정도의 개혁을 단행하는 것으로 볼 때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인품을 가진 인물입니다. 느헤미야는 선지자도 아니요 학자도 아니었지만 다재다능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아닥사드다 왕의 술 따르는 관원이었지만, 그의 신임을 얻었고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성전 재건의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지 않고 행동한 적이 없었고, 행동하지 않고 기도만 한 적도 없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 역시도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인품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강력한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근거하여 율법을 선포하고,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들을 다 쫓아내고, 성전을 재건할 때에도 사마리아인들을 배척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을 배척한 결과는 그들과 원수처럼 지내게 되었고, 이방인들을 배척하고, 율법 중심적인 종교개혁은 반발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룻기, 요나서, 욥기 같은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룻기는 종교의 이름으로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고, 요나서는 이방인도 여호와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며, 욥기는 율법을 지킨 자만 복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개혁의 결과는 결국, 페르시아 제국의 기반을 더 튼튼하게 하는 데 이바지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의 통치방식은 관용정책을 통해서 식민속국들이 자립해서 자기들의 지배 아래에 들어올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세금을 낼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책으로 바빌론이 50년 제국을 누렸지만, 페르시아 제국은 220년 동안 고대 근동지방을 지배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지금의 이란을 중심으로 해서 동쪽으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북쪽으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서쪽으로 터키·이라크에 접하는 광대한 지역이었습니다. 중동 사람들은 대제국의 후예들이라는 자부심이 강해서 명예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명예와 신념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일은 당연하게 여깁니다.

 

■ 성전을 완공한 후

 

 

귀환한 땅에서 성전 건축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생존투쟁을 벌여야 했던 이스라엘은 마침내 성전을 완공합니다. 그러나 성전이 완공되었음에도 여전히 어렵고 힘든 상황이 지속하자 그 때문에 환멸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성전 완공으로 오히려 제국의 왕권 통치만 확고해졌고, 성전은 이교도인 페르시아의 금전적인 지원 없이는 유지도 되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사마리아인과는 성전 건축 참여에 거부한 이후 유대 주민과의 갈등이 증가합니다. 이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리하여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강력한 율법에 근거하여 배타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정책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침내 예루살렘은 종교적인 중심지가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종교적으로 결집시킨 것은 ‘새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공동체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은 성전예배를 통해서 형성된 공동체를 의미하는 말로 확장되었습니다.

 

■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역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야곱이라는 한 인물의 새 이름이었습니다. 이것이 확장하여 이스라엘 12지파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이스라엘 12지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사울의 왕정국가를 이뤘습니다. 그리고 이어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이 되었으며, 남북으로 분열된 후에는 ‘북왕국이스라엘’이었습니다만,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멸망해서 동화되어 그들의 후손은 사마리아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의 이스라엘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새 성전 이후 ‘예배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를 이스라엘로 부르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이스라엘’이며, 더 확장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이들을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스라엘과 종교적 차원의 이스라엘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 아름다운 동역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함께 동역자가 되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이스라엘을 새롭게 세워갔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를 나눠주시고 직분을 주시어 한남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만 직분이 아니라 ‘평신도’도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직분입니다. 우리 몸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단 한 사람도 필요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꼭 있어야 해서 한남교회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서로 귀하게 여기고 친절하게 서로 대하고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동역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아름다운 동역자로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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