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첫째주일/ 새해주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공동체
시 99:9 요 4:23-24, 롬 12:1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주일, 함께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음 감사드립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어 2019년, 큰 기쁨의 해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해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라는 표어로 한 해를 보냈습니다. ‘말씀으로 새로워진 교회’는 어떤 단계로 나아갈까 고민했습니다. 말씀의 깊은 심층으로부터 길어 올린 영생의 물을 마신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19년도 교회의 표어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공동체’로 정했습니다. 물론, 제가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의 생각을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신앙생활의 알파와 오메가는 ‘예배’입니다. 이 ‘예배’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예배하는지에 따라 신앙노선이 달라집니다. 그 신앙의 노선은 대중교통의 노선처럼 다양할 수 있겠지만, 종점은 ‘하나님 나라’이어야만 합니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한 해 표어와 관련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2019년 표어를 함께 제창해 보겠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공동체!” 우리 한남교회가 올 한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잘 드리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예배(Worship)란?(1)
‘예배’라고 하면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우리의 모든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삶의 변화’가 없는 예배, 그것은 형식적인 예배에 불과합니다. 삶의 변화 없이 드려지는 예배는 ‘죄인들의 범죄행위를 합리화 하는 도구’가 됩니다. 삶의 변화 없이 스스로 위안을 받는 것이지요. 예배에 대한 정의 중 하나는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형식적인 예배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간의 편의대로 이용하면서 하나님을 수단으로 인간의 욕심을 극대화하게 됩니다. 예배가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단이 된 예배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김소영 교수는 <교회예배 갱신의 과제>에서 “모든 교회의 갱신은 예배의 갱신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을 극대화시키는 예배는 교회의 갱신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예배의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교회도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개신교회에 속해 있으므로 개신교회의 예배가 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 두 가지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는 ‘말씀’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예배는 없고 ‘설교’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았기에 ‘형식적인 예배’는 거부하는 것은 옳지만, 제가 보기엔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린 형국입니다. ‘주일예배’에서 말씀의 선포는 중요하지만, 그것도 예배예식의 일부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입례송’으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예배의 순서들은 ‘축도’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합니다. 설교만 난무하는 예배를 극복해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소위 ‘열린 예배’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예배입니다. 신사도운동계열의 교회들이 이런 예배를 좋아하는데, 제가 볼 때에는 ‘인간을 위한 쇼’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아닙니다. 주일예배가 아닌 특별예배를 그렇게 드린다면 문제 삼지 않아도 되겠지만,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송도 없고, 감히 예배할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배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대한 ‘참회의 기도’도 없고, 제사장에게 하나님께서 위임한 ‘용서의 선언’도 없습니다. 거기에 ‘신앙고백’도 없습니다. 예배는 인간의 자기만족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사전적인 의미는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경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최상의 존재, 절대적인 존재를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유일하게 예배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배는 ‘드리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배의 주인공을 설교자로 혹은 찬양대로 바꾸면서 마치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영화나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할 때만도 못하다는 것이지요. 최소한 이 두 가지 문제만이라도 해결된다면, 그래서 한국교회의 예배가 갱신된다면 교회도 갱신될 것입니다.
우리 한남교회가 주일예배로 드리는 예배의 형식은 그냥 김 목사 마음대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예식을 따르면서도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만든 예배의 형식입니다. 오늘 간 세대 예배로 드리고 있는데, 교육부서 세대들이 조금 따분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형식적인 예배의 중요성’을 전수해주기 위해서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Worship)란?(2)
다시 한 번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위급한 상황에서, 지하교회에서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며 드리는 예배에서 이런 형식들을 다 고수할 수 있을까요? 그런 상황에서 예배의 기본요소가 빠졌으니 ‘예배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옳은 주장일까요?
예배에 관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온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두 단어에 집중해야 합니다. ‘산 제물’과 ‘영적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의 저작시기를 바탕으로 해석한 이 말씀의 진의는 이렇습니다. ‘산 제제물’은 유대교의 ‘죽은 제물’과 대비되는 단어입니다. 즉, 종교적인 형식만 남아 이웃관계를 상실한 죽은 제물로 제사하지 말고, 살아 있는 여러분의 몸으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영적 예배’라는 단어의 원어는 ‘합당한 예배, 온전한 예배’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개신교의 예배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교회공동체로 보며 경배와 찬양으로 드리는 공 예배이며, 다른 하나는 각자의 삶에서 이웃을 섬기는 행위로서의 삶의 예배입니다. 이 두 예배가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합당하고 온전한 ‘영적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왜, ‘예배자’로 부르시는가?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시 99:9).”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로마서의 말씀과 함께 2019년 표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공동체”의 뼈대가 되는 말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라 명령하셨고,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셔서 우리를 한남교회로 불러주셔서 ‘예배자’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에서 제가 예배의 본질 중 하나를 소개하면서 “예배의 갱신을 통해서 교회의 갱신도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어학사전에 따르면 ‘갱신(更新)’은, 계약이나 서류의 유효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그 기간을 연장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는 좀 더 다양한 단어로 표현되는데, update, renewal, break record 등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만료된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것입니다. 죄란, 하나님과 우리를 끊임없이 분리시킵니다. 그래서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update’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얽매인 신앙이 아니라 끊임없이 ‘renewal - 다시 새로워짐’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정 관념break record’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것은 모두 ‘예배’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자로 불러주시는 이유는 분명해 집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새롭게 하셔서, 여전히 당신의 계약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매 주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드리는 예배는 이런 계약의 갱신과정입니다. 새해에는 예배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셔서, 하나님께서 새롭게 해주시는 삶으로 들어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배드릴까?
시편에서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예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밝힙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을 강조하고 있고, 로마서에서는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결국, 같은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시편의 ‘거룩’이라는 단어는 ‘구별된다(카도쉬)’는 뜻이 있고, 요한복음의 ‘영과 진리’는 당시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는 왜곡된 ‘영과 진리’가 아닌 다른 차원의 ‘영과 진리’, 로마서의 ‘산 제물’은 유대교의 ‘죽은 제물’로 드리는 예배와 구분된다는 점에서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귀결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먼저, 예배 전에 나와 우리의 마음을 세상의 온갖 번뇌로부터 떠나 예배하기 위한 마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새롭게 갱신되기를 기대하며,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예배당에 오신 분들의 복장은 단정해야 합니다. 비싼 옷이나 화려한 옷을 입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입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의 자세는 참관자가 아니라, 투항하여 굴복한 자의 심정이어야 합니다. 예배담당자나 봉사자들은 감사해야 합니다. 내 미천한 달란트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사용해 주신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성전을 떠나가기 전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 주간의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한 주간의 계약서를 쓰고 성전을 떠나 세상으로 나간다는 심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추상적으로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예배하는 자세가 이렇게만 바뀌어도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예배하는 공동체
예배가 달라지면 우리의 삶이 달라지고 교회가 달라집니다. 제가 새해에 ‘예배’를 목회의 중심으로 삼은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는 희랍어이며 ‘안에서 밖으로(out of)’를 의미하는 전치사 ‘에크’와, ‘부르다(to call)’를 의미하는 동사 ‘칼레오’가 합해진 합성어입니다. 즉, 교회는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는 뜻이 있으며 이것은 죄로부터(세상으로부터)의 구원(하나님 나라)됨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필연적으로 이 세상에 발 딛고 있으며,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러 하나님께 예배하게 함으로 ‘예배자들을 이 세상의 가치관 밖으로 불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부흥시켜 주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아니라면, 존재할 이유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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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우리 한남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한 마음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예배와 관련한 소소한 것들까지 온전하게 드림으로 살아있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삶도 풍성하게 살아가는 귀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과 이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함께해 주십시오. 아멘.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