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받은 자의 삶(창조절 네 번째주일)
로마서 5:1~11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창조절 네 번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새롭게 창조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 본문분석(로마서 5:1~11)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이 사랑은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5:6),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5:10),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온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뜻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무엇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예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 믿음으로 지금 서 있는 곳이 은혜의 자리임을 믿고 나아와 예배하고 있으며,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하나님 나라) 소망을 품으며, 이 모든 것을 자랑거리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었으나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이 땅에서 우리는 환난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성숙한 인격을 이루고, 성숙한 인격을 형성한 이들은 희망의 향기를 품은 씨앗이 됩니다. 이 희망(소망) 때문에 믿는 자들은 환난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소망(희망)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부어주신 것인데 이 과정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경건하지 않을 때에,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부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덕분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이들은 의롭다고 인정(칭의)을 받았고, 예수님 덕분에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과는 상관없는 삶(약하고, 경건하지 못하고, 죄인일 때)을 살아갈 때에도 구원해 주셨으니,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며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당연히 구원받을 것입니다. 죄 때문에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 안에서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환난에서 희망으로 이어지는 참평화를 누린 사도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믿음이란?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습니다! 믿습니까?”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요?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요,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것이요,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하시며,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경이 말하는 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곧 복음이며, 복된 소식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핵심만 요약하면, 성경이 전하는 믿음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요, 그분이 구약시대부터 기다려왔던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 믿음에 대한 오해
사람들은 믿음을 오해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크기만큼 응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데도 응답받지 못하면 ‘믿음이 작아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얼마나 간절하고 강하게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우주를 이끌어가시는 주인이시오, 그래서 내 방식이나 생각대로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우주를 이끌어가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깨닫지 못하는 방식으로도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하나님을 재단하고, 그를 믿는다고 하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신앙의 적입니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세워,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읽아 바로 세우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열심히 믿으면, 간절히 믿으면 되는게 아니라 방향이 올발라야 합니다.
■ 믿음이 없는 자들아!
마태복음 17장 20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이 말씀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나온 사람을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과 그 세대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17)” 꾸짖으시며 부모의 간절한 기도와 제자들도 고치지 못한 병을 고쳐주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간절함의 크기가 곧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며,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면 겨자씨보다도 작은 믿음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어린양의 희생제물로 돌아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생각에 취해있습니다. 자신들의 믿음은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물리치시고 다윗의 나라를 회복시키는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고로 그들은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까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메시아,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메시아는 ‘어린 양 예수, 희생양 예수’인데 그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지만 겨자씨만 한 믿음도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예언자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믿으십시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이해한 대로 믿고,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 본문이해(롬 5:1~11)
그러면 앞에서 로마서 본문을 분석해 드렸는데 이해를 위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십니다.’라고 믿었을 뿐입니다. 어떤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칭의’는 나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니 새 삶이 열리는데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이 열리게 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죄는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가 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순간에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으니 이 말씀은 곧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이요,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우리는 연약한 상태였으며 죄 가운데 거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마치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얻은 것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더니, 기도생활 열심히 했더니, 의심하지 않고 믿었더니, 금식기도 했더니 하나님께서 채워주셨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적인 행위의 크기만큼 채워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수많은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도 시험에 빠지고, 넘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환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따르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칭의를 받아 구원받았지만,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은 세상에 살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환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영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을 믿기에 이 세상에서 당하는 환란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환란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인내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환란 속에서도 부끄러워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을 잘하는데 세상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부끄러워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저런 고통을 당하는 거야?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손가락질합니다. 저렇게 고난 겪는 이유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야. 마치 욥의 친구들처럼 손가락질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우리가 사는 이 땅은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믿는 사람들도 고난이나 환란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큰 환난을 겪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환난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칭의’ - 우리의 삶은 의로워서가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삶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여전히 약하고 죄 가운데 있지만,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쁘게 살아갈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저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저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로 인도하시고
그 안에서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감히 어떻게 저의 신앙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나 됨이 나의 공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은혜이기에,
겸손하게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롭게 창조된 여러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족할 때에 감사하시고, 환란의 때에도 절망하지 마시고 인내하시며 그 환란 뒤에 이뤄질 일들을 미리 보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겸손하여지기 바랍니다. 이것이 칭의를 받은, 새롭게 창조된 이들의 믿음생활입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