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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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용서하라(마가복음 12:28~34)

  • 관리자
  • 2019-09-15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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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용서하라
마가복음 12:28~34

지난주에 ‘용서’에 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설교에 대한 피드백이 여느 설교보다 많았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아직도 용서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용서하지 못해서 그로 말미암은 상처를 품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용서가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라는 주제에 더 깊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되어 오늘도 ‘용서’를 주제로 말씀을 전합니다.

 

■ 지난주 설교 요약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두 가지는, 죄를 안 짓고 사는 것과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폴 마이어’의 명문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바람을 멈출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풍차를 만들 수는 있다.
파도를 멈출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배의 돛을 조종할 수는 있다.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살면서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며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세상은 현세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용서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상처가 있다면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깊은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면, 자신의 삶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상처는 반드시 치유해야 합니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묘약,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용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용서하기로 했다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다음에 나를 아프게 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그러나 값싼 용서나 섣부른 용서는 하지 마십시오.

 

■ 용서의 완성을 위해서는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남들은 다 용서해도 나 자신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처를 받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지요. “왜 내가 그런 상처를 받도록 행동했을까? 상처받은 내가 바보지. 그런 나를 용납할 수가 없어. 다 용서해도 나는 용서가 안 돼!” 이런 생각입니다.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에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듯이 용서도 나를 용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의 말씀은 일반적으로 ‘이웃사랑’에 관한 말씀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할 점은 ‘이웃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며, 그 출발점이 어딘지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에 이웃사랑에 관한 구절은 많지만, 자기 자신과 연관해서 구약성경 레위기에 처음으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을 사랑하듯 하라(레 19:18).”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시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황금률-변하지 않는 법-이라 하셨으며 공관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공통적으로 이 말씀을 전합니다. 서신서인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야고보서에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 최고의 법’이라고 하면서 복음의 모든 진리가 이 안에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웃사랑도 용서도 모두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삶을 합리화시켜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동양사상에 이와 유사한 깨달음이 있는데 석가모니 탄생설화와 관련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만, 이 해석은 석가만 홀로 귀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독보적인 존재인 만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귀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소중함을 인정할 수 있을 때 타인도 소중한 존재로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웃사랑도 그렇습니다. 자기 사랑 없는 이웃사랑은 껍데기 사랑입니다.

 

■ 자기를 용서하라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고 단죄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벌을 줌으로써 자신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고 단죄하는 사람은 그를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려고 해도 인간이 스스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는 무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죽이도록 넘겨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 중 한 사람이 유다를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를 용서할 수 없었기에 자살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가 자기를 용서한 사람들입니다.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렀던 다윗,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했던 베드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던 바울,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자신을 용서함으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하고 실패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허점이 많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나는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라는 죄의식에 빠져들면 안 됩니다.

 

용서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용서로 인한 지속적 기쁨을 누릴 수 없다.
- 켄달

 

■ 용서에 대한 오해


첫 번째 오해. 용서하면 상대방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독교인이 용서라는 말 앞에서 종교적인 콤플렉스를 가지는 이유는 예수님처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용서에 대해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했다면 더는 그 사람 때문에 괴롭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지로 용서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용서하는 것이 서로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용서하고자 하는 의지는 종교적인 선택이요, 결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적인 용서까지 이르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아무리 신앙의 이름으로 용서했어도 상처 준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굳어지고 상처는 다시 도집니다. 용서했음에도 미움의 감정이 계속 올라올 때마다 해야 할 일은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용서했어도 불편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번째 오해, 용서는 곧 화해다.

많은 분이 ‘용서=화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둘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용서했다고 반드시 화해가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과 관계없이 나를 위해서 내가 혼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화해는 쌍방의 행위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고, 내가 그를 진심으로 받아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용서가 화해까지 나아간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명령은 용서지 화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화해까지 나아가면 좋겠지만, 용서가 꼭 화해로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종종 실수하는 것이 있습니다. 굳이 상처를 준 상대방에게 찾아가 “당신을 용서했습니다.”라고 말하다가 더 큰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주인공 신애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어린 아들과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를 당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해 주겠다고 다짐하고 살인자를 용서해 주기 위해 교도소로 갑니다. 신애는 유괴범이 죄책감으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며, 자기를 보면 무릎을 꿇고 용서해 달라고 빌 것이며, 용서해 준다고 하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갑니다. 유괴범은 편안한 얼굴로 신애를 맞이하면서 “나는 교도소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은 너무나 평안합니다.” 그녀의 가슴은 아직 썩어 문드러져 있는데 그는 이미 용서받고 평화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애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향해 절규합니다. “나보다 누가 먼저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후 신애는 신앙을 비웃고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과 용서를 권한 신자들은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와는 상관없이 피해자 자신의 내면에서 홀로 이뤄지는 고귀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용서를 결심하기 전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세 번째 오해, 용서했으면 다 잊어야 한다.

용서했어도 과거의 상처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꼭 기억해야만 하는 때도 있습니다. 또 상처를 준 사람이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려면 기억해야 합니다. 정신의학자 사스는 “멍청한 사람은 용서하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용서하고 잊어버린다.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어버리지 않는다.‘ 했습니다.
 

네 번째 오해, 중독자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병자와 관련된 오해

알콜 중독자, 도박 중독자 같은 경우는 용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중독자나 병자에게서 끊임없이 상처를 받는 사람이 신앙의 이름으로 묵인하거나 참고 사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값싼 용서요, 서로에게 불행을 자초할 뿐입니다. 상대방이 언제가 변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면, 상대방은 자신이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습관적으로 배우자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언제가 상대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가정이 깨질까 두려워하고,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명분 때문에 참고 사는 여성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렇게 참고 견디는 것은 상대방에게 나는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위입니다.

 

■ 효과적인 용서 방법


지난주에 용서를 결심한 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오늘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베개를 가지고 십자가 앞에 앉으십시오.
십자가는 용서의 강력한 상징입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나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에게 맺힌 분노와 적개심과 한을 강력하게 표현하십시오. 격식 갖춘 말을 고르려 애쓰지 말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가슴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으십시오. 욕을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상처가 치유되려면 화를 노출할 기회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그렇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다면 먼저 안에 있는 화와 분노, 적개심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내어 표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룩한 십자가 앞에서 그럴 수 있는가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모든 것을 받아주시는 그분 앞에서 자기 안에 있는 격한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가운데 순화되어갈 것입니다. 감정 표출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왜 베개를 가지고 앉아야 하는가? 분노가 극에 달하고 참기 어려우면 주먹으로 상처를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베개를 칩니다.

 


둘째, 증오심에서 벗어나 맺힌 한을 풀고 싶다는 바람을 말씀드리십시오.
성급하게 용서하겠다고 결심하지 마십시오. 다만 미움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결심을 표하십시오. 진정으로 미움의 운동장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그 인간 때문에 내 상처를 더 크게 만들지 않고 싶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셋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억울하게 돌아가시면서도 한을 품지 않으시고 원수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한 맺힌 사건과 예수님의 억울한 사연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런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내 상처는 당신의 상처보다 작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어찌하여!” 예수님도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물음을 통해서 우리는 치유될 수 있습니다.
 


넷째, 상처를 준 사건 속에 예수님을 초대하십시오.
예수님을 초대해야 과거의 상처에서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눈으로 우리의 과거 사건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 앞에서 기도했는데도 상대방을 증오하는 마음이 남아있다고 실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 몇 번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맺힌 한을 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점점 치유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치유는 과정입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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