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찬가(대림절 4주)
누가복음 1:39-55
대림절 초를 하나 더 밝혔습니다. 오늘 말씀은 천사에게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친척 엘리사벳을 만나 기쁨을 노래하는 장면입니다. 지난주에 말씀을 나눴습니다만, 기꺼이 ‘주의 여종이오니’ 수태고지를 받아들였던 마리아였지만, 어린 소녀가 온전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마리아는 어디로라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천사가 일러준 그곳은 나사렛에서 120Km 떨어진 친척 엘리사벳의 집이었습니다. 교통수단이 거의 없었으니 최소한 사나흘 자갈밭, 광야, 산길, 험한 길을 걸어 산골 촌 동네를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진 여행의 끝에는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아기를 가질 수 없었던 불임여성이었던 엘리사벳은 이미 임신 6개월이 되어 복중에서 아이가 뛰어놉니다. 그뿐 아니라, 수태고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리아를 만난 순간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여자 중에 내가 복이 있으니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외칩니다. 이렇게 만난 두 여인은 천사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면서 기뻐 노래를 부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마리아 찬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신비롭게 이뤄집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될 사람에게 아이를 갖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생각 너머에 있는 신비입니다.
■ 마리아 찬가 – 개인적인 영역
마리아찬가의 내용에서 중요한 문장과 단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개인적인 고백과 관련된 것입니다.
(46)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
(49)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마리아는 지금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런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기쁨이 없다면 신앙의 빨간불이 들어온 것임을 알고 되돌아봐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기쁨이 없다면, 교회에 와서 봉사하는데 기쁨이 없고 의무만 있다면 신앙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처한 상황은 사실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을 만나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는 과정임을 깨달아 알고 기뻐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리아 찬가는 여종, 즉 개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큰일을 비천하고 작은 개인을 불러 응답하게 하시고 행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대단한 사람들을 불러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별 볼 일 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죄인으로 취급받던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으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빈부의 귀천이나 권력의 유무로 편 가르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한 자들뿐 아니라 부자들도 권세 있는 자들도 다 사용하셨는데, 그 기준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쓰임을 받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불순종하는 이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경외한다는 말씀은 50절의 ‘두려워하는’이라는 부분인데 헬라어로 ‘후포베우에노스’입니다. 이것은 공경하다, 존경하다, 경외하다라는 뜻으로 ‘공포’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겁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 마리아 찬가 – 국가적인 영역
개인으로 시작된 마리아의 찬가는 51절부터 국가적인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51)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4) 이스라엘을 도우사.
‘교만한 자들’은 당시 로마제국에 빌붙어 동족 위에 군림하던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들로부터 수탈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비천하다 취급받는 사람들이 높아질 것을 소망하는 노래입니다. 지배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마리아의 노래는 국가전복을 획책하는 불순한 노래입니다. 그리고 더 확장되어 54절에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사’, 즉 로마제국으로부터의 독립까지 염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찬가는 당시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갈망하던 메시아 대망 사상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전성기는 다윗왕 때였고, 그리하여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었으며, 그런 까닭에 지극히 정치적인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중 착취를 당했습니다. 로마로부터 착취를 받는 것도 모자라 로마를 등에 업은 세리들과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권력을 잡은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착취를 당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신앙의 선조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기도하고 독립운동을 하며 해방을 꿈꿔왔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메시아가 오시면 그런 현실적인 부조리함으로부터 해방해주실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마리아 찬가는 이런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그들이 기다리던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실 때에 환호하던 군중이 배신한 것도, 제자들조차 죽음의 순간까지도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까 다투다가 정작 예수님을 팔고, 배신하고 떠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메시아를 오해한 것이지요. 물론, 이런 오해는 세상권력도 마찬가지여서 예수님은 정치범들에게나 처해 지는 십자가형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치활동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신 것뿐인데, 세상은 그것을 오해한 것이지요. 그리고 구약의 예언자들이 끊임없이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의 메시아를 예언했지만, 그들은 예언자들의 예언보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메시아 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오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앙은, 예수님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내 생각에 가둬두고 내 욕심을 이뤄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오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타락한 배경은 하나님을 오해했고, 성경 말씀을 오해한 데서 기인합니다. 마리아찬가는 오해는 있었지만, 그래도 한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느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과 성경 말씀을 오해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말씀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깊은 묵상을 해야 합니다. 말씀 공부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심하셔야 할 것은 말씀 공부는 본인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하셔야 합니다. 저는 말씀 공부 좋아서 이 단체 저 단체 전전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분들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내년도 목회 표어는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서려면 ‘오직 말씀!’ 그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다.
말씀 위에 바로 서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 대림절
대림절은 아기 예수님, 메시아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올해는 바로 내일 성탄절이라 오늘 성탄 맞이 행사도 합니다만. 대림절기에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회개입니다. 내 마음에 아기 예수를 맞이할 만한 빈방이 있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아 높여진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한남교회는 예수님을 맞이할 만한 교회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적인 만족을 위해서 모이는 집회인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모이는 집회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런 진지한 성찰 없이 성탄절을 맞이하고 보낸다면 세상 사람들이 맞이하는 성탄절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런 성찰 없이 부활절을 맞이하고 성탄절을 맞이한들 우리 신앙의 진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비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응답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응답하고 순종했던 마리아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부르십니다. 부르실 때에 순종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마시고,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감독 노릇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하게 여겨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옷 입는 대림절기로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신앙의 신조로 삼고 있는 신앙이 참으로 옳은 것인지 그냥 화석화되어 굳어버린 신앙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이유는 뼈와 살이 부드럽기 때문이요, 어른들이 성장을 멈추는 이유는 살에 근육이 생기고 뼈가 굳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부드러워야 합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신앙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나무를 보십시오. 죽은 나무는 겉과 속 모두 굳어있지만, 살아있는 나무의 속은 부드럽습니다. 이단 사설에 대해서는 나무 껍데기처럼 단단해야 하지만,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부드러워야 합니다. 내일은 아기 예수님 오신 성탄절입니다. 인생을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길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5분이면 충분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찰나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세속적인 성탄축하보다는 오늘 밤에는 촛불을 켜고 가족들과 함께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