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여종이오니(대림절 3주)
누가복음 1:26-38
■ 감당 못할 은혜
때는 이천 년 전 갈릴리의 작은 동네 나사렛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기원전 3세기까지 어떤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별 볼 일 없는, 작고 소외된 변두리 동네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을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합니다. 피에타로 유명한 작품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40대 중반을 갓 넘긴 여인의 모습입니다. 그 나이를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나이는 13세 정도의 어린 나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관습에 따르면 여성은 13~15세에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사이였는데 약혼을 하면 지참금을 지급한 후 여자들은 자기 집에서 신부수업을 받고 일 년 뒤에 결혼식을 하게 됩니다. 이때는 이미 지참금을 지급했으므로 여성의 소유권은 남자에게 있었고, 결혼식 전까지 보호권은 그 부친에게 있었습니다. 만일 결혼식을 하기 전에 여자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여자 집에서 손해배상을 해야 했습니다. 시대가 불안하고 침략을 많이 받은 민족일수록 여성들을 일찍 결혼시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시대 원나라가 조공으로 처녀를 바치라고 하여 딸들이 어린 나이임에도 일찍 결혼을 시키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부모들이 딸을 오랑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친 역사의 흔적이 조혼의 역사이므로 조혼의 역사에는 약소국가의 슬픔이 어려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13세 혹은 14세, 지금으로 중학생 정도의 나이였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놓을 엄청난 소식을 들고 가브리엘이 메시아의 어머니가 될 마리아를 만나 소식을 전하는 장면은 수많은 화가의 그림 주제가 되었습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 프라 안젤리코, 가브리엘 로세티 등 수많은 명작이 있고, 그림 하나하나마다 깊은 의미를 담고 있고, 수태고지의 신비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2006년에 개봉되었고 지난주 목요일(12월 14일) 재개봉된 영화 ‘위대한 탄생(네티비티 스토리)’에 나오는 앳된 소녀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리아가 여인으로서의 성숙한 메시아의 어머니로서의 신비함보다 역사상 실존인물로서 가장 가깝게 묘사된 마리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마리아는 특별한 구석도 없는 침상에 앉아 여느 때처럼 햇빛 들어오는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상이 반복되는 곳, 그곳에서 마이라는 그저 무심하게 빛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탄생고지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리아, 이렇게 평범하고 이렇게 어린 소녀에게 이뤄져도 되는 것일까 싶을 정도입니다.
천사는 마리아를 향해 입을 엽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28,30)
천사는 은혜라고 이야기했지만, 정혼한 여인 마리아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놀라운 소식이었고, 인생과 가정의 파탄을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과 약혼하고 신부수업을 받던 마리아에게 천사가 은혜와 평안을 이야기하면서 전해준 소식은 ‘임신’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 혼전임신은 여성에게 있어서 인생을 망치는 불행이었고, 마리아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날 수 있었으며,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은혜요, 평강의 소식이라니 가당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요셉이 조용히 마리아와 파혼하려고 했지만, 작은 나사렛 마을에서 마리아의 임신은 충격적인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수태고지를 들은 마리아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반문합니다. 그러나 천사는 자기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령이기 때문에 내용을 수정할 수도 없습니다. 임신하게 되면 어떤 일이 전개될 것인지 잘 알고 있던 마리아는 놀랍게도 이 위험한 소식을 받아들이고(수용) 있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 이로써, 마리아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었지만,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축복). 감당 못할 은혜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던 일입니다.
■ 일상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
구원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주도권을 행사하십니다. 그러나 이때에 하나님은 인간의 응답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하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주권을 행사하시는 곳은 언제나 인간이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이요, 역사요, 일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자기가 발 딛고 살아가는 역사와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보고 듣지 않으면, 보고 들을 것을 외면하면 아무도 신앙의 진수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면 예수는 식민지 백성이었고, 사형수였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예수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예수님의 말씀만 줄줄 외우고 인용한다고 해서 신앙이 자라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고 신앙의 성숙을 이루려면, 예수의 역사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일상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은 구체적인 삶으로 살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몇 부류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역사의식이 부재한 목사입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현혹하여 신앙 따로 삶 따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유혹합니다. 삶이 곧 신앙이고 신앙이 곧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볼 수 있습니다.
■ 믿음은 수용입니다.
기독교신앙은 내 뜻과 계획을 관철하는 종교가 아니라, 먼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앙이 왜곡되고 타락하는 지점에는 포기하지 못하는 내 뜻과 계획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소유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조르고 떼쓰는 것을 신앙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졸라대니까 귀찮아서라도 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 선한 재판관이라도 과부의 청원이 ‘억울한 누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내 뜻을 관철하고, 내 계획을 끊임없이 졸라대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귀를 기울이고 수용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마리아를 통해서 배워야 할 신앙입니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믿음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맞지도 않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그것을 받아들였다가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될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들까지도 파탄에 이르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이 바로 기독교신앙입니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많은 합리주의자가 교회를 떠났고, 시대의 지성을 자처하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뿌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이기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갑자기 고향 땅을 떠났던 아브라함이 그랬고, 약속의 징표인 이삭을 죽이라는 것도 그랬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조차도 아무 힘없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라고 하실 때 순종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의 부르심 앞에 서 있습니다.
■ 새해의 목회 초점
내년도 우리 교단 주제는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말씀으로 바로 세워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저는 제가 선포한 말씀을 다양하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설교하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소책자를 통하여 3번에 거쳐 말씀을 묵상하게 합니다. 지난 19개월 동안 선포된 말씀을 잘 읽어보시면 전체적으로 제가 어떤 목회의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저의 신앙고백이 어떤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신비입니다. 매일매일 새롭고, 알면 알수록 신비롭습니다. 내년에는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을 모아서 성경공부 반을 개설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시행하다 중단되었던 성경 필사도 완성하고, 성경 읽기 반도 개설하려고 합니다. 교역자들은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공개적으로 모집할 때 많은 분이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목회의 초점은 말씀이 되겠습니다.
또 하나는 초점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전통에 따라서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 오랫동안 드려왔던 예배의 순서도 전통적인 제의에 따라 수정하여 일부 변경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마음을 가다듬고 새해부터는 더욱더 예배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많습니다. 예배를 통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주일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막힌다면 그만큼 우리가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모든 분이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한남교회가 여전히 의미 있는 교회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과 예배, 이것은 저의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말씀에 대해서는 제가 취임식 때 약속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말씀을 연구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 잔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것이 살아있음의 증거입니다. 그 변화가 단지 세월의 축적일 뿐이라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단순히 우리의 삶이 늙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우리의 육신은 날로 쇠퇴하지만, 우리의 영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나이 듦이 허망하지 않고, 나이 듦이 오히려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살을 더 먹으니 그 이전에,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가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신비와 비밀을 깨달아 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옛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메시아의 임재가 변방 작은 마을 나사렛에 살던 어린 소녀 마리아에게 임하고, 그가 ‘주의 여종이오니’ 순종했을 때에 온 인류에게 구원의 물꼬가 터진 것처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물꼬가 되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