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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이 있습니까?(2017대림절 첫주)

  • 관리자
  • 2017-12-03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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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이 있습니까?(2017대림절 첫주)
이사야서 64:3-9

 

대림절 첫째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마중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이사야서 64장 3-9절의 말씀은 ‘교회력’에 따른 말씀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 마중물

 

지하 깊은 곳에 맑은 샘이 있습니다. 이 맑은 샘에 있는 물을 퍼올리기 위해서 과거엔 펌프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펌프로 물을 퍼올리려면 반드시 마중물이 필요합니다. 마중물 한 바가지를 붓고 펌프질을 하면, 이네 ‘꾸억꾸억’ 하며 물이 올라오는 느낌이 옵니다. 참으로 신비한 것은 여름에는 얼음장처럼 시원한 물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중물이 있어야 깨끗하고 맑은 샘물이 세상에 나와서 목마른 사람의 목을 축이기도 하고, 더러워진 몸도 씻고, 옷도 빨고 밥도 해먹을 수 있습니다. 대림절이 시작되는 때에 ‘마중물’을 떠올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신앙고백 할 때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강림이죠. 저는 이 고백에서 ‘하나님 우편’은 깊은 지하의 맑은 샘물이요, 예수님의 강림은 그 깊은 지하의 샘물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맑은 물을 맞이하려면 마중물이 필요한 것처럼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에게도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 회개라는 마중물

 

먼저 우리가 준비해야 할 마중물은 회개라는 마중물입니다.

사람들은 후회하지 않는 삶, 후회 없는 선택 운운하면서 만족하는 삶에 대해 강조합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신앙적인 태도와 회개의 관점에서 본다면 후회 없는 삶은 문제가 있습니다. 후회는 사전적인 의미로 이전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만족은 모자람 없이 마음이 흐뭇하다는 뜻입니다. 후회는 무언가 다음 상태, 즉 내 행동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포함하지만, 만족은 종결인 동시에 현상유지거나 더 많은 것으로 채우기 위한 전 단계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강조하는 ‘후회 없는 삶’이 우리의 신앙에 잘못 적용되면 ‘회개 없는 삶’이 될 위험성도 있습니다. 만족이라는 것과 비슷한 신앙적인 용어 ‘자족’입니다. 그러나 비슷할 뿐 뜻은 전혀 다릅니다. 만족이라는 것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채워져서’라는 뜻이 있다면, 자족이라는 것은 ‘결핍에도’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겠지만, 회개 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존재 자체가 숙명적으로 죄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이것은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입니다. 우리 인간은 숙명적으로 풀 같아서 죄악이라는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런 풀 같은 존재지만, 죄악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죄악이라는 바람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어서고 마침내 웃는 김수영 시인의 풀처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반전, 그래서 우리는 죄는 인식하지만, 죄의식에 빠져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죄를 제대로 인식했다면, 회개가 뒤따릅니다. 그리고 그 회개는 주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시는 ‘마중물’이 되는 것입니다.

 

■ 본능과 노력

 

심리학에서는 부정적 정서는 타고나고 긍정적 정서는 노력해야 얻어진다고 합니다. 의학에서는 우리 뇌의 내부와 중심에는 타고난 본능이 자리하고 있고, 뇌의 바깥쪽인 대뇌피질은 후천적인 노력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정리하면, 우리 뇌의 중심에는 본능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것은 부정적인 것들이고, 뇌의 바깥쪽에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긍정적인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정서의 일종인 공포나 불안, 생존 본능과 관련이 된 것은 뇌 중심에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직관적이고, 긍정적인 정서인 감사와 행복 같은 것은 뇌 바깥에 있어 좀 더 생각해보고 해석해봐야 하므로 조금 늦게 인지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겨울이 되면서 외풍을 줄이려고 속칭 뽁뽁이를 사다 작업을 했습니다. 마침, 저 혼자서 그 일을 하게 되었는데 커터칼을 들고 작업을 하다 그만 의자가 미끄러지면서 얼굴 쪽을 살짝 그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아야!”하며 불쾌한 반응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뇌 중심에서 반응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울로 상처를 보니 다행히 크지 않습니다. 그때 “더 깊이 베이지 않게 하셔서 감사합니다.”하는 것은 대뇌피질이 작용한 것입니다.

 

신앙은 본능이 아니라 노력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본능에 머물게 하려면 끊임없이 죄의식을 부추기면 됩니다. 원죄를 강조하고,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 말세 등으로 위협하면 됩니다. 사이비 종교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본능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반전이요, 그래서 신앙은 본능이 아니라 노력입니다. 마중물을 붓는 노력과 펌프질을 하는 노력이 있어야 땅속 깊은 샘물을 길어올릴 수 있듯이 우리도 신앙의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해야 생명수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신앙의 반전

 

8절에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는 말씀은 위대한 반전의 말씀입니다. 진흙과도 같은 존재, 죄악으로 말미암아 소멸하는 존재인 인간을 토기장이 되신 주님께서 빚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반전이 있습니다. 깨어지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깨어지기 쉬운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반전이 있습니다. 깨어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반전의 반전은 본능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간절히 구할 수 있게 됩니다. “분노하지 마시며, 죄를 기억하지 마십시오(사 64:9).” 그렇다면, 이런 신앙의 반전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갑니까? 마중물 같은 삶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중물이란 회개와 관련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무엇입니까?

 

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며”, 이 말씀에서 중한 것은 ‘공의를 행하되 기쁘게’ 주님을 기억하되 ‘주의 길에서’입니다. 누구나 공의를 행할 수 있고, 주님을 기억할 수 있지만, 기쁘게, 주의 길에서 공의를 행하고 주님을 기억할 때 의미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회개란 무엇이냐 하면, 그냥 앉아서 눈물 콧물 빼며 소리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기쁘게 공의를 행하고,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 그들에게 주님은 오십니다.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이제 대림절을 상징하는 강단의 촛불이 4개가 다 밝혀지면 아기 예수님께서 오신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이 대림 절기에 예수님을 맞이할 마중물이 있는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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