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주일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
이사야 42:5-9/고린도후서 2:17/요한복음 1:1-5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
오늘은 1517년 10월 마지막 날 밤, 마르틴 루터가 구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313년 이후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는 억압받던 종교에서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으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가 가는 곳마다 전파되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전 세계의 지배자’로 불릴 정도로 넓은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후에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분리된 후 멸망했지만, 로마 제국의 마지막 시기에 로마의 지배를 받던 모든 나라는 하나의 종교로 통합되었고, 그 종교는 기독교였습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의 시대를 중세시대라고 하는데, 로마제국은 사라졌지만, 기독교의 역사는 이어졌고, 과거 로마의 지배를 받던 나라들은 여전히 교황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기독교가 널리 퍼지며 맹위를 떨쳤던 것입니다. 물론, 종교개혁 이후에도 천오백 년 가까이 조상이 섬겨왔던 기독교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고, 우리나라는 130년 전인,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 의해 개신교가 들어왔습니다. 물론, 천주교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783년에 이승훈이 조선인 선비로서는 첫 세례자가 되었고, 귀국 후 명동성당의 터인 명례동 김범우의 집에서 이벽, 이승훈, 정약전 3형제 등과 조선교회를 설립했으니 이것을 기점으로 하면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230년 정도 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한국교회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부흥을 이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급속한 양적인 부흥을 이뤘습니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며 양적인 면에서 출석교인 48만 명으로 세계 1위인 교회도 있고, 서울에서는 매주 82만 5천 명이 주일예배를 드림으로 세계 대도시 중 예배출석률 1위로 2위 나이지리아의 34만 명의 두 배 이상입니다. 그리고 서울은 대형교회가 많은 도시 중 17개로 3위를 차지했고, 안산은 7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은 끊임없이 개혁을 이뤄오는 과정에서 나름 건강해졌고, 사회적인 신뢰도도 높아졌는데 오히려 개혁한다고 기독교로부터 출애굽한 개신교회는 이전의 타락했던 중세교회보다도 더 암울한 현실이니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이 쑥스럽습니다.
■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
우리 교단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였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제대로 서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말씀에 바로 서지 않은 은혜, 그리스도, 믿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결코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의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라는 슬로건은 방향을 잘 잡은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오늘날에는 ‘설교 = 말씀’이라는 공식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매 주일, 서울에서만 8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주일예배를 드리며 하며 말씀을 듣는데,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선포되는 말씀이 문제가 있거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문제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하고, 교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를 통해서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설교 이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신 66권의 성경이 있으며, 자연과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지혜와 용기만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 이사야 42:5-9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7절 말씀대로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새 일(9)’입니다.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려면 먼저 우리가 눈을 떠야 합니다. 감옥에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려면 먼저 우리가 갇혀있는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빛을 누려야 합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무엇을 통해서 가능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머물러있지 않습니다. ‘생명’은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그저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성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내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이방의 빛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나만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두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이방의 빛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은 뒤로하고 개인구원에 너무 집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개인이 눈을 뜨고, 갇힌 감옥으로부터 해방되고, 빛을 누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 신비의 비밀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실족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이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 것으로 알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눈을 밝히는 전제조건이 되어야 할 우리의 눈뜨는 일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 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진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므로 더더욱 그렇습니다. 말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 =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분석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이단 사설과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행위’로 규정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은 문자주의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위선자요, 외식하는 자요, 마귀의 새끼들이라고 했던 이들은 사실 모두 문자주의에 빠졌던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살펴보면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는, 아주 단순한 하나님의 규례와 율법을 베베 꼬아버린 것입니다. 안식일 법의 기본정신을 생각해 보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비비 꼬아서 안식일의 기본정신을 훼손했습니다. 결국, 말씀을 오염시킨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 진리는 혼잡하지 않고 분명합니다. 미사여구와 온갖 신학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설교를 지나치게 좋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중 핵심적인 것은 사실, 더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황금률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사랑=이웃사랑”입니다. 무슨 해석이 더 필요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요, 이웃을 사랑한다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이유가 무엇입니까?
■ 요한복음 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창조물이 있기 전에 절대적인 시간을 초월해서 이미 말씀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중요한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말씀, 생명, 빛, 진리, 길 등이 그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조하는 것이 ‘로고스(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분을 믿음으로써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요 20:31)입니다. 그 모든 일은 말씀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의 로고스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으며, 문자 그대로 말씀의 형태로 계셨다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는 다르면서도 같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인간에게 말씀을 친히 전해주심으로 우리와 관계를 맺으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로고스 그리스도론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고,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입니다.
결론입니다.
이사야서 말씀과 요한복음에서는 ‘빛’이 강조되고 있고, 고린도후서의 말씀에서는 그 빛의 ‘단명함’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빛은 로고스이며, 로고스는 예수님입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 빛을 통해서 어둠을 물러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통해서 그 빛을 봅니까?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우리 교단의 방향성은 제대로 된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잔지 선언으로 끝날 것이냐, 실천할 것이냐입니다. 지난 102회 총회에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과 그 후에 진행되는 일들을 보면 그 옛날 외식하는 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은 번지르르한 데 실천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먼저 말씀 위에 바로 서야 한다는 도전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교단을 바로 세우려면, 그저 손가락질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먼저 우리가 말씀으로 새로워져, 그 새로워진 마음으로 그들을 바로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오늘부터 여러분의 가정이, 우리 교단이, 한국 교회가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