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창조절 넷째주일)
이사야서 40:1-11
가을이 깊습니다. 여러분은 계절의 변화를 어디에서 느끼십니까?
저는 꽃에서 느낍니다. 꽃의 세계가 참으로 신비한 것은 이른 봄부터 싹을 틔웠을 터인데 가을꽃은 가을이 되어야만 꽃을 피운다는 사실입니다. 봄에 한꺼번에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사시사철 꽃이 핍니다. 한겨울에도 남도에는 동백, 수선화, 비파가 피어납니다. 바람꽃 같은 작은 꽃들이 깊은 산, 눈을 녹이고 피어나면 봄이 온 것이고, 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여름이 온 것입니다. 입추가 지나면 들판 여기저기에는 쑥부쟁이가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지난주에 저는 많은 꽃을 만나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꽃무릇, 둥근잎유홍초, 뚱딴지, 나팔꽃, 호박꽃, 맥문동, 닭의장풀, 달개비를 만났습니다. 이 꽃들은 모두 제가 ‘시크릿 가든(비밀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교회 뒤편에서 월요일 새벽예배를 마친 후에 만났던 꽃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놀라게 했던 것은, 꽃무릇이라고도 부르는 석산이었습니다. 지난봄 전형안 집사님이 심으셨고,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예배를 마치고 화분에 물을 주는데 전날까지도 보지 못했던 꽃무릇이 기다란 줄기에 꽃을 피웠습니다. 게다가 꽃무릇에는 베짱이도 앉아있었는데 이 척박한 서울 하늘에서 그를 만난다는 것도 신비스러웠습니다. 꽃무릇이 무성하게 자란 들깨의 기세에 잘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아 들깨도 베어주었습니다. 들깨만 해도 그렇습니다. 봄에 깻잎이라도 얻으려고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나중에 지난해 떨어진 들깨 씨앗이 여기저기에서 저절로 자랐습니다. 여름을 지나면서 모종을 낸 들깨는 별 볼 일 없는데 저절로 자란 들깨들이 더 잘 자랐고, 마음만 먹으면 들기름 한 숟갈은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거기에 하이츠 빌라 담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은 새순이 어제 난 것 같은데 벌써 단풍이 들어갑니다. 이런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저는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희망의 말씀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40장의 말씀은 기원전 690년경에 선포된 말씀입니다. 제2이사야서에 속하는 40-55장에서는 계약과 구원의 선포와 위로와 용서라는 주제가 발전되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고 용서하시며 구원하시는 분으로 계시가 됩니다. 제2이사야서의 특징 중 하나는 기원전 587-538년경까지 약 50년간의 바벨론 유배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핵심 주제는 바로 노예 생활과 같은 유배지에서의 해방입니다. 이제 곧 유배지에서 해방될 것이니 희망을 품으라는 구원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유배지에서의 생활은 마치 역사의 겨울과도 같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훼손되었고, 고향 땅에 남아있는 이들은 희망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이들은 고향 땅을 그리워하면서도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로하시며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사 4:2)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회복될 나라에 ‘그루터기’를 남겨두었고,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돋아날 것을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시기부터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이 시작되고 이 예언이 선포된 후 20년 뒤에는 3차로 사로잡혔던 모든 자가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겨울과도 같은 절망의 시간을 보내는 이스라엘의 마음에 하나님은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바벨론 포로기와 같은 절망의 시간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잠시 머물다가는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을 것처럼 우리를 힘겹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포로로 살아가던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 희망을 주셨던 것처럼 반드시 여러분의 삶에도 개입하셔서 희망을 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외치는 자의 소리여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 대언하신 내용은 이렇습니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하라.”(40:3)고 하십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보리라(40:5)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모든 일을 홀로 하시지 않고 인간의 몫을 남겨주시어 결단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길을 예비하고 대로를 평탄케 하는 일은 인간의 몫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기를 구하면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에는 무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예비한 길과 평탄하게 한 대로를 통하여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의 신앙적인 책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늘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의지는 늘 인간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지난주에 ‘오병이어’ 이야기에서 살펴본 대로, 소년의 바침이 곧 기적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 삶에 임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 영광이 임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꽃무릇을 보려면 종근을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심은 것이 없는데 자라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는 수고를 통해서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시편 118편 23절에서 시인이 고백하듯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통로를 만들 수 있을까요? 다양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쉽게 만나는 통로는 예배입니다. 예배에 집중해 보십시오. 특별히 주일예배에 집중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배를 관람하듯 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 여러분을 드리는 예배를 드려보십시오. 주일에 한 시간 예배를 드리지만, 그 한 시간의 예배를 위해서 집중해 보십시오. 우리가 온전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면,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고 그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분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되면, 우리의 삶은 빛나게 됩니다. 그런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지난 9월 16일, 한남교회에 시무하셨던 김재두 목사님 11주기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김준부 목사님께서 베드로전서 1장 23-25절의 말씀으로 ‘영원히 있는 것’이라는 설교를 주셨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거듭나므로 썩지 않을 씨가 되었는데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이 마르고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는 것처럼, 김재두 목사님의 육체도 마르고 떨어져 흙에 묻혔지만,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농사꾼이셨던 제 아버님께서 씨앗에 대해서 저에게 들려주셨던 말씀입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들 하는데, 씨앗이 썩으면 열매를 맺지 못해. 싹을 틔우는 거지 썩는 게 아니지.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썩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거야.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썩는다고 얘기하지, 넌 이담에 목사가 되면 이건 꼭 기억해라.” 다른 하나는, ‘풀과 꽃이 시들고 마르는 것’이 허무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시들고 마르기 때문에 해마다 새롭게 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풀과 꽃을 닮은 인간의 육체도 시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겠지요. 오히려 ‘시들과 마르는 것’은 축복입니다.
■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소설 <걸리버여행기> 3부 10장에는 왼쪽 눈썹 바로 위 이마에 둥근 빨간 점이 박혀 태어나는 '스트럴드블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이 아이가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표지인데, 그 나라에는 1,100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3년 전에 태어난 어린 여자아이가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걸리버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온갖 즐거운 상상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30세까지는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지만, 40세 이후부터는 우울 증상이 생기기 시작하고, 80세가 되면 기억력을 잃을 뿐 아니라, 국가에서는 법적으로 죽은 자로 분류되어 자손들에게 모든 재산이 상속됩니다. 그래서 겨우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수당으로 받으며 몹시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90세가 되면 치아와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미각도 사라져서 밥을 먹는 즐거움이나 식욕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습니다. 게다가 이 나라의 언어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200년이 지나면, 일상적인 말 몇 마디 밖에는 나누지 못합니다. 그래서 불멸의 존재로 태어나는 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멸시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시대를 풍자한 소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걸리버여행기>는 일부를 아이들이 읽기 쉽도록 개작한 것이고, 원작은 워낙 민감한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하고 있어서 당시 영국에서는 불온서적으로 판금 조처되었던 책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실, 유한한 존재인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서 인간이 특별한 이유는 ‘유한하다는 사실(죽음)’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물도 죽음이 닥쳐오면 공포를 느끼고, 불안해하지만 그것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라기보다는 본능적입니다. ‘죽음’을 인식하기에 ‘죽음 너머’를 생각할 수 있고,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계절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육체도 결국은 마르고 시들어 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새롭게 거듭날 근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영생이란, ‘영원히 죽지 않는다.’ 혹은 ‘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시들고 마르는 존재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늘 새롭게 거듭난다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요한복은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는 고백은 이런 맥락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40장의 말씀은 위로의 말씀입니다. 지금 마른 풀처럼 시든 꽃처럼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너희는 조국 당으로 돌아가 마침내 다시 피어날 것이다. 이것이 위로의 말씀입니다. 머지않아 꽃무릇도 시들고 서리가 내리기 전에 초록의 이파리를 내었다가 서리가 내리면 시들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내년 이맘때에도 시크릿 가든엔 꽃무릇이 피어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년에 피는 꽃은 올해 핀 꽃이 아닙니다. 전혀 새로운 꽃입니다. 새로운 꽃이지만, 다른 색깔로 다른 모양으로 피어나지 않고 똑같은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내년에 핀 꽃 안에는 올해 핀 꽃이 들어있고, 올해 핀 꽃에는 내년에 필 꽃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영원히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풀은 시들고 꽃은 시들어도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서 40장 8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하시면서 풀과 꽃의 유한성과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40장 5절의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유한성과 영원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은 풀과 꽃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의미없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더욱더 소중합니다. 마르고 시든 풀이 때가 되어 꽃을 피워 큰 기쁨을 주는 것처럼, 여러분의 삶이 피어나 하나님께서 여러분 덕분에 큰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