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언어(송년주일예배)
마가복음 13:28~32
어느새 2019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이 계셔서 행복했고, 감사합니다.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리며, 새해에도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강을 주시고, 하시는 사업과 직장과 계획하시는 일들도 잘 풀려서 매 주일 하나님께 함께 예배할 수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冬至(동지)가 지나 밤이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겨울은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겨울은 깊어가고 있는데, 남도에는 동백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제주도에는 수선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답니다. 아마 전남 나주 금사정 뜰에 있는 수렴 500년의 동백도 붉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 ‘금사정’과 동백
500년 전 기묘사화 당시, 전남 나주 땅으로 숨어든 열한 명의 사림파 선비들이 '금사정'이라는 작은 정자를 짓고 정자 앞에 동백을 심었답니다. 옛 선비들에게 절개의 상징으로 쓰인 대표적인 나무는 소나무였지만, 엄동설한에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 역시 선비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나무였습니다.
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1월 남곤·심정·홍경주 등의 재상들에 의해 조광조·김정·김식 등 사림이 화를 입은 사건입니다. 중종이 즉위한 후, 정국을 장악한 훈구파에 대항해 신진 사림파가 정계에 진출하면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결국, 권력을 잡은 훈구파에 의해 신진세력인 사림파가 숙청당하면서 사림파에 속했던 선비들이 살 길을 찾아 숨어든 곳 중 하나가 전남 나주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동백을 심었을까요? 그냥 예뻐서 심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엄동설한에도 피어나는 붉은 꽃, 댕강댕강 모가지 잘리듯 떨어진 동백꽃을 보면서 어쩌면 올 곧은 삶을 살아가다 유배된 자신들의 좌절된 꿈을 생각하면서 사시사철 푸른 이파리처럼 언젠가는 개혁의 뜻을 피워낼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심은 나무가 아닐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낙화한 동백을 보면, 33살 가장 아름다울 청년의 나이에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 무화과 나무의 비유
지난주 마가복음의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겨울나무'를 묵상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압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하시고, ”들에 피는 꽃을 "보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피조물을 통해서도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적인 안목이 있는 분들은, 성경책만 보고 그분의 뜻을 가늠하고 듣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보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고 봅니다.
■ 나무의 언어
저는 오늘 송년주일에 나무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삶의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나무의 삶을 통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배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확장해 보고자 합니다.
초식동물들이 한 나무를 먹기 시작하면 얼마 안 되어 나무에서 쓴맛 나는 물질이 분비되고 이물질이 주변 나무들에까지 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분이 지나면 초식동물은 50-100M 떨어진 나무로 이동하여 나뭇잎을 먹는다고 합니다. 초식동물이 나뭇잎을 먹기 시작하면 나무는 에틸렌이라는 쓴맛을 내는 화학물질을 방출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곁에 있는 나무들이 그 신호를 받고 반응을 해서 자신들도 에틸렌올 방출하는 데 그 범위가 적게는 50M-100M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식동물이 나뭇잎을 먹다가 쓴맛이 나기 시작하면 50-100M를 이동해야만 쓰지 않은 나뭇잎을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을 식물학자들은 식물의 '향기 언어'라고 표현합니다.
식물에도 자신들끼리 소통하는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무도 포함되겠지요. 나무에도 감각이 있고, 나무의 소통 방식은 인간으로 치면 비언어적 소통이자만,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무의 생태를 보면서 그들의 언어를 상상해보는 일은, 자연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상상하는 것과 맞닿아있는 것입니다.
■ 이기적인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독블 장군입니다.
주로 인간들이 자연림을 베어내고 인공림으로 조성하는데, 인제의 자작나무 숲이 유명합니다.
자작나무는 속전속결로 자랍니다. 싹을 틔운 후 10년까지는 1년에 1M 이상씩 자라 25M까지 자랍니다. 다른 나무와 경쟁하는 것을 싫어해서, 길게 늘어뜨린 채찍을 닮은 축 늘어진 나뭇가지로 경쟁자가 될 나무의 수관을 때려서 떨어뜨려 다른 나무들이 고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작나무만 있는 숲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저돌적인 성향 때문인지 수령은 120년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것은 자작나무를 통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부정적인 측면들만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니 자작나무를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은 지구가 존재하는 한 계속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숲은 수명이 있습니다. 자작나무 숲도 그렇지만, 전나무 숲이나 잣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숲 등, 자라던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한가지 나무로만 조성된 숲은 일시에 황폐될 수 있으며,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이 이룬 것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으며,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것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삶으로 들어가려면, 이기적인 독불장군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 보이지 않는 뿌리를 통해서
어린나무들은 싹을 틔우면서 '어미나무' 때문에 성장에 제약을 받습니다.
어린나무가 성장하려면 햇빛이 필요한데, 어미나무에 가려 그들에게 들어오는 빛은 겨우 3%에 불과합니다.
어미나무가 참 야속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때 어미나무는 섬세한 연결망인 뿌리를 어린나무의 뿌리에 연결해서 어린나무들이 최악의 상태를 극복하도록 당맥을 공급합니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과 같은 것이죠. 이 모든 일은 보이지 않는 흙 속에서 이뤄집니다. 그래서 이런 어미나무의 수고는 '그림자 노동'입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할때 '그림자 노동''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삶에 다 신경세포처럼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프면 하나님도 아프고, 내가 기쁘면 하나님도 기쁩니다.
제주도에는 '아침의 하늘'이라는 뜻을 지닌 '조천'이 있습니다.
그곳언덕에 오래된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제가 15년 전에 담았던 사진입니다. 지금도 그곳에 있습니다. 나뭇가지가 심한 바닷바람 때문에 육지 방향으로 휘어져 자랐습니다. 이렇게 자랐음에도 나무가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뿌리 때문입니다. 뿌리는 나무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기관입니다. 나무의 다리일뿐 아니라 입이고, 심장입니다. 나무가 잘 자라려면 지상부보다 지하부 뿌리가 먼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바람이 심한 제주도 같은 곳에서는 나무의 균형을 잡아주는 '버팀뿌리'가 아주 중요합니다. 한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반대방향의 나무줄기에 굵은 버팀뿌리가 납니다. 그래서 나무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나무뿌리 모양은 별모양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림자노동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삶아갈 힘을 제공해 주심으로 100%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3% 정도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나머지 97%는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3%의 가능성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니 결국, 100%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신앙의 균형입니다. 보여지는 신앙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분들의 삶은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 나무의 향이 가장 깊은 곳
나무는 상처를 치유하는 데 일생을 바칩니다.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옹이'입니다. 옹이는 나무가 감내해온 고통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곳이 가장 단단하고, 나무의 향이 가장 깊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이겨내면 삶의 옹이가 하나 둘 생깁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어른은 그냥 나이가 들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산전수전 겪으면서 삶에 이런저런 향기나는 옹이를 가득 품고 있어야 진정 어른입니다.
'어른'의 뜻은 그 어원을 살펴보면 '일꾼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입니다. 옛날엔 동네마다 '뜸돌'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돌을 일정한 높이까지 들어 올리면 비로소 일꾼으로 인정하고 성인몫의 품삯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꾼으로 인정하는 뜸돌을 드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그러므로 어른은 고난에 굴하지 않고 향기로 만들어가는 사람이요. 능히 그것을 감당할만한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어른이 되십시오. 신앙의 어른이 되려면, 고난이 온다고, 조금 삶이 어렵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나이테
이제 이번 주 지나고 2020년이 오면 우리의 삶에도 나이테가 생길 것입니다.
추운 겨울, 맨몸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를 바라보시면서 나무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와 보는 눈이 열리는 기적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바랍니다. 청각장애인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치유 기적은 단순히 육체적인 기적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치유 기적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통해서,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분의 사랑을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의 삶입니다.
나무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1. 사람이 이룬 것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으며,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것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삶으로 들어가려면, 이기적인 독불장군으로 살아갈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그림자노동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보이지 않는 내면의 신앙을 이루기 위해 힘쓰시는 분들의 삶은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3.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향기로 만들어가셔서 신앙의 어른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이 있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