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자랑하라(창조절 첫째주일)
고린도후서 10:12-18
창조주 하나님의 평화와 위로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창조절 첫째주일입니다. 저는 사계절 중에서 가을을 가장 좋아하는데 겨우내 마른 가지에서 연록이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도 신비스럽지만, 오랜 수고 끝에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익어가는 열매를 보면 마치 기적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결실에 이르기까지는 고비가 참 많습니다. 가뭄도 이겨내야 하고, 홍수도 이겨내야 하고, 거센 바람도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의 열매가 감동인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 심은 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다는 말은 인간적인 욕망에 휘둘리며 살아간다는 것이고, 성령에다 심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에 조율된 삶을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욕망에 휘둘리며 살아가다 보면 결실을 보아도 공허하고 헛헛하고 쓸쓸합니다. 그래서 안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살아 맺은 열매는 기쁨과 평화와 안식을 줍니다. 많은 사람이 기쁨과 평화와 안식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령을 따라 산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린 후 김을 매고, 물주고, 복돋는 노력과 가뭄이나 홍수나 거센 바람 등을 잘 이겨내야 결실 맺는 것처럼 성령을 따라 살아가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어려운 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때론, 온갖 노력에도 공들였던 일들이 허망하게 끝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 사람을 아끼라
지난주에 나눈 말씀처럼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애써 세운 고린도 교회에 종교혼합주의가 들어오고,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교회는 분열의 길을 갑니다.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오히려 바울을 비방합니다. 바울은 졸지에 사도가 아니라 몹쓸 사람이 되었습니다. 언변도 시원치 않고, 용모도 변변치 않은데다가, 추천장도 없는 이가 사도인척하고, 헌금은 어디로 빼돌려 쓰는지 알 수도 없고, 하고많은 날 고생만 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모르는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사도 바울은 정말 문제가 많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낭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단 어떤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를 몹쓸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가 가진 장점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 속에 아름다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부족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을 아낄 줄 알아야 하나님도 제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때도 묻고, 뒤틀리고, 일그러지기도 했지만,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피조물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물론, 건전한 비판조차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람에 대해서는 근거도 없이 정도가 넘는 비방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바대로 디도를 통해 고린도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자 기적같이 그들은 회개합니다. 회개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에 대한 오해를 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모든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이라는 지난주 설교 제목은 그렇게 붙여진 것입니다.
■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자기의 직무를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은 누가 진실한 하나님의 일꾼인지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12절에서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저희들끼리 서로 대어 보고 자희끼리 견주어 보고 있으니 분별없는 자들입니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기준이 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아테네로 가는 길목에 집을 지어 놓고는 자기 침대에 사람을 끌어다가 침대보다 작은 사람은 늘리고, 큰 사람은 잘랐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에 눕혀지는 순간 죽거나 불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단순히 신화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깁니다. 누구나 자기의 마음에 저마다의 침대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바울의 적대자들이 저마다의 침대를 가지고 바울을 비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바울은 그 사람들이 내세우는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신앙을 바로 세워갑니다.
■ 하나님이 전하여 주신 한도
첫째, 그는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한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웠습니다. 13절에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적정 한도 안에서만 자랑할 것입니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위임한 한계 안에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큰 사도들처럼 추천장도 없고, 언변도 뛰어나지 못하고, 용모가 준수하지 못했지만 그는 자기에게 위임된 일, 즉 이방 선교에 충실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시어 지경을 넓혀주신 것입니다.
소위 큰 사도들이 근사하게 보인다고 하여 그것을 넘보았다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위임하신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직업이나 경제력에 대한 것 말고, 존재로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지 마라
둘째, 그는 자기가 이룬 것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15절에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에게 자랑거리가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기가 이룬 성취를 떠벌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바울이었기에.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의 영적인 추락도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을 이룬 후에는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사람이 누추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겸손하십시오. 사람의 칭찬에 좌고우면하지 마시고, 묵묵히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집니다. 나를 자랑하는 순간, 내 신앙의 침대에 다른 이들을 눕히는 순간이 영적으로 추락하는 순간임을 잊지 마십시오.
셋째, 바울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구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박수갈채를 보낸다고 해도, 하나님이 고개를 저으시면 그는 실패자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면 그는 잘산 것입니다. 지난주 수요일 새벽예배 시간에 스바냐서 3장을 읽었습니다. 3장 17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그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고르반’과 다르지 않습니다.
■ 하나님 사랑 = 이웃사랑
‘고르반!’이 무엇입니까?
헌물, 재물이라는 뜻인데, 불효자식들이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자기가 취하면서, “하나님께 드렸다”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물론이고, 부모의 몫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이지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별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며,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확증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구하지만, 이웃에게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 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직업이나 경제력에 대한 목표, 세상적인 목표말고 존재로서의 목표, 신앙인으로서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적인 욕망에게 내주었던 우리의 마음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재창조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자꾸만 닦고 또 닦아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닦고자 할 때,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 안에서 자랑거리가 넘쳐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