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행복한 교회
출애굽기 40:17-38
이스라엘 공동체가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여 성막을 만들게 하시고, 이제 성막 봉헌식을 하면서 다시금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십니다. 성막이 오늘날 교회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 교회력에 따른 본문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구약의 성서본문은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40장 17-38절의 말씀이며, 시가서의 말씀은 시편 33편 12-22절, 바울서신의 말씀은 빌립보서 1장 3-11절, 복음서의 말씀은 마태복음 18장 15-20절의 말씀입니다. 저는 설교준비를 위해서 교회력의 본문을 세 가지 한글번역본으로 읽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개역성경>과 현재 한글로 번역이 제일 잘되었다고 평가되는 <성경>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먼저 출애굽기의 요점은,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곳이기에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성막 위에는 하나님께서 구름과 불로 감싸주시므로 성막 밖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시편의 요점은,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은 복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택하신 백성이라도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만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선택받은 백성이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문맥은 다르지만, 하나님은 구름과 불이 성막 위에 거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지켜보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서신 빌립보서의 말씀은 빌립보교회에 대한 바울의 감사편지입니다. 그는 빌립보교회가 처음부터 복음을 위한 일에 동참하고 있으며,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지식과 온갖 이해로 선악간의 분별을 한다는 점입니다. 감정에 따른 신앙생활이 아니라 지성에 의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며 날마다 성장해 가는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복음서 마태복음의 말씀은 ‘형제가 죄를 범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막 공동체와 초대교회 공동체는 모두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 간에 선악을 분별하여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 회개를 권면하고, 함께 합심하여 하나님께 구하면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 본문을 오늘날의 언어로 요약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요,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를 불러 모으신 곳이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복을 베풀어주시는 곳이요, 이런 교회의 모습은 교회 밖의 사람들도 능히 알 수 있으며, 교회에 속해있어도 헛된 것을 의지하면 구원받을 수 없으며, 두세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 곧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출애굽기 40장 17-28절까지 반복되는 문장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7번 반복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했다.”는 뜻입니다. 성막은 인간의 뜻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거룩성’을 담보하게 됩니다. 그 거룩한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성막’은 주님의 영광이 거하는 곳이 되었으며, 하나님은 그 증거로 낮에는 구름이 회막을 덮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고 성경은 묘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자들이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평행본문인 시편 33편 18절에서 군대나 용사 즉,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구하시는 자를 하나님은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이 감사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가 선악 간의 분별하는 지혜가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머물러있지 말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갱신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성막 신앙’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가난한 땅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을 ‘성막’ 안에 가둬 두려고 하였습니다. 보수적인 근본주의자들도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가둬두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막 혹은 교회 안에만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성막 위에 구름과 구름 가운데 있는 불, 그것은 성막을 중심으로 행진하는 이스라엘 온 족속이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교회 안에 속해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삶에서도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 행복하여라! 주님을 모신 백성(시편 33:12-28)
번역본 <성경>에서는 ‘주님을 하나님으로 모신 백성은 복되다’고 선언하면서, 주님의 눈을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으므로 일률적으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를 경외하고, 인자하심을 바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때에 바라는 바대로 이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교회 안에 속해있다고, 직분을 받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늘 주님을 경외하고, 인자하심을 바라며,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평행본문인 마태복음 18장 15-20절에서는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권고하고, 듣지 않으면 두세 사람과 함께 권고하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방인처럼 여기라고 합니다. 이런 권고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교인으로 이미 침례를 받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으나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결론은 아주 단호합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고 추방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징과 치리’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회개가 하나님과 개인 간의 1:1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초대교회에서의 회개는 공동체 앞에 회개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추방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9월 오후 예배 때 ‘종교개혁 500주년 특강’을 통해서 자세하게 살펴볼 예정입니다. 불편한 말씀이지만, 교회에 적을 두고 있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도(마태복음 18:15-20)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18절 말씀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합니다. 조금 쉽게 번역된 <메시지>에 의하면, 땅에서 “예”는 하늘에서도 “예”고, 땅에서 “아니오”는 하늘에서도 “아니오”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번역도 어렵기는 마찬가진데,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곳이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야 할 때에는 그저 인간의 감정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오늘 평행본문 빌립보서의 말씀입니다.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마음을 열고 배우려는 사람, 마음이 열려있는 개방적인 사람, 그런 사람만이 지식과 온갖 이해가 더욱더 풍성해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바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땅이란 바로, 교회입니다. 즉, 땅에 속해 있는 교회의 모든 일은 곧 하늘의 일이 될 때 교회는 이 세상에 속해있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의 모습은 교회 밖에 있는 이들도 성막 위의 구름과 구름 사이의 불을 보듯 다 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메가 처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각종 불미스러운 일은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표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면서 지속적인 회개를 촉구해도 회개하지 않아 이방인이나 세리와 같은 취급을 받아 마땅한 현실입니다. 그들은 매고자 하지만 하늘은 매이지 않고, 그들은 풀고자 하지만 하늘에서도 풀리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들의 비리와 비윤리적인 행동들을 다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메가처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작지만 행복한 교회
그렇다면,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일까요?
성경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시면서, 교회의 교회 됨이 숫자에 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한남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작지만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합심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임하셔서 복을 베풀어주시는 곳입니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인간은 150명 이상의 사람들과는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작지만’이라고 기도하는 것은 성인 150~160명 규모를 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공동체를 원활하게 운영하고, 선교할 수 있는 적정인원입니다. 더 넘어가면 형식적인 관계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교회 됨’을 의미합니다. 목사와 교인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한남교회의 교회 됨을 보면서 교회 밖의 사람들도 ‘저런 교회가 있어서 좋다!’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남교회가 매는 것이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서로 권면하며 합심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작지만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