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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2017년 평화통일주일 메시지)

  • 관리자
  • 2017-08-20 2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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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2017년 평화통일주일 메시지)
이사야 30:8-14

 

■ 설교자의 고민

 

오늘은 성령강림후 열번째주일이며, 교단이 제정한 평화통일주일입니다.

저는 사실 이번 주일 설교 준비를 지난 주일 오후에 마쳤습니다. 프레젠테이션까지 다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주일 준비를 위해 금요일 오후에 모든 내용을 전도사님께 다 넘겼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허했습니다. 그래도 ‘평화통일주일’인데, 광복절 72주년을 앞둔 주일이며, 한반도가 지금 전쟁의 위기에 처해있는데 그와 관련된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미 지난 주일 오후에 설교를 마쳤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주일 새벽까지 노심초사하신다고 하는데, 저는 왜 그렇게 빨리 마친 것일까요?

 

평화통일주일에 전할 메시지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제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화통일주일이 다가오면서 아무리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를 해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한국교회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 동안 이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오셨고, 위로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셨는데,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근심과 걱정을 마음에 심어주는 것이 목사로서 잘하는 일일까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교훈이 담긴 본문을 정하고 그 본문을 해석하는 것으로 평화통일주일 설교를 가늠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아 토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다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평화통일주일’과 관련된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여러분과 나누는 말씀입니다.

 

■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는 8월 15일, 72주년 광복절을 맞이합니다. 1910년 강제로 한국과 일본이 합병된 이후, 36년 동안 우리 민족은 일본제국주의의 강압적인 폭력 앞에서 수탈당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함으로 우리에게 해방은 선물처럼 느닷없이 찾아왔습니다. 영영 계속될 것만 같았던 일제의 만행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우리 민족은 아직 해방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좌우의 대립은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가져옵니다. 비록 3년간의 전쟁이었지만, 이 전쟁은 이후 우리의 역사를 분단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살아오게 했습니다. 남북한의 권력자들은 강대국과 무기에 의지하면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왔습니다. 분단상황을 이용해서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했습니다. 자신들의 불의를 덮기 위해서 남북한의 위기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권력자들은 국민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항거하면, 그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부추겼습니다.

 

한때, 남북한이 교류하며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여행, 개성공단을 통하여 평화통일의 물꼬가 트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막혀버렸습니다. 현재는 북한의 핵무기개발이라는 도발과 미국의 대응방식 때문에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은 남북한의 위기상황을 통해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고 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당사자인 남북한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 현재 한반도의 상황

 

지난주 금요일에는 서울노회에서 14년째 이어오고 있는 ‘한일청소년 수련회’에 강의차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일본 청소년들이 15명 정도밖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유인즉,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나라에 무슨 수련회를 가느냐는 것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정작, 한국은 전쟁의 위기에 둔감한데 미국이나 일본은 곧 전쟁이 날 것처럼 연일 메인뉴스로 한국의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속내는 뻔합니다. 그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는 순간 그들은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됩니다. 무기 판매를 통한 수입뿐 아니라, 아베 총리나 나 트럼프 대통령의 하락한 지지율도 순식간에 회복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패전하든 패전국으로서의 막대한 보상금과 전후복구비용 등은 패전국으로 망해가던 일본이 1950년 한국전쟁을 다시 일어서는 발판을 삼았던 것처럼,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게 막대한 이익을 줄 것입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불장난을 해대는 북한도 문제고, 미국의 정책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남한도 문제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권력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민 중에는 미국을 구세주로 착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우방인 것은 맞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사실입니다. 트럼프가 말했듯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반도에 전쟁이 나서 몇천 명 죽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닙니다.

 

■ 한국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나라가 광복 72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도 이렇게 평화가 위협을 당하고 있는데 그동안 한국 교회는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했는지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한국교회는 평화통일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평화통일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일을 해온 것은 아닙니까? 편협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북한을 주적으로 정죄하고 그들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피조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쓸어 없애야 할 사탄이나 마귀로 보도록 가르친 것은 아닙니까? 지금도 광화문이나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와 십자가와 성조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어떤 특정 문제에 대해서 혐오를 부추기며 부채춤을 추는 이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들의 외치는 구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 목사들이나 그런 목사들의 말에 맹종하는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합니까? 그것도 신앙고백의 다른 측면이라고 인정해야 합니까? 그런 것이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입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한국 교회는 회개할 의지도 없지만, 더 심각한 것은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서 미리 세를 규합하려는 특정 정치권과 손잡고는 이런저런 운동들을 벌이고,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 지역의 교회나 목사는 이단취급을 하고, 자발적으로 혹은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왕따 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동조하는 목사들도 많고, 심지어는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서 정치권력도 잡아보겠다고 용을 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역사의 진실에 대해서 혹은 사회적인 불의에 관한 설교를 하면 정치설교를 한다면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라고 훈계합니다.

 

■ 예언자들의 아픔

 

아모스 7장 10-17절에는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와 거짓 예언자 ‘아마샤’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부자들의 타락상을 지적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이에 대해 권력자들의 견해를 대변하던 대제사장 아마샤는 자기의 힘과 권위를 이용해서 아모스의 입에 자갈을 물리려고 합니다.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물질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아주 단호했습니다. 아마샤는 권력자와 백성이 인정하던 대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거짓선지자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마샤에게 이런 벌을 내리십니다.

 

“네 아내는 창녀가 될 것이고, 네 자녀들은 칼에 맞아 죽을 것이고, 네가 가진 땅을 다 빼앗길 것이고, 너는 포로고 끌려가서 이방 땅에서 죽을 것이다.”(암 7:17).

 

이것은 비단 예언자 아모스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예언자들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심판을 선포할 때마다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를 남발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선민이므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어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헛된 믿음 때문에 이스라엘도 유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의지하던 강대국과 무기에 의해 망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의 말씀도 같은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10절 말씀을 풀면 “선견자들이여, 선견하지 말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거짓이라도 좋으니 부드러운 말만 해라.”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누가 하는가 하면, 9절 말씀에 보니까 ‘패역한 백성과 거싲말 하는 자식들과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는 자’들이 이렇게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권력을 쥔 자들이 ‘듣기에 좋은 말만 해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같은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듣기 싫다! 입 닥쳐라! 우리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라!”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오늘날 예언서를 읽으면서 예언자들의 용기에 대해서 감탄하지만, 당시 예언이 선포되던 때 환영받았던 예언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 왕따였고, 거짓선지자와 백성들의 지탄받는 표적이었습니다.

 

■ 불편한 진실

 

패역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불편했습니다. 거짓 대제사장 아마샤에게 정의의 아모스의 예언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끝내 예언자들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들이 듣기 좋은 말만 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이사야서에서는 그 모든 일은 허망한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결과로 너희는 토기장이가 불량품을 깨뜨려버리듯 산산조각내겠다고 하십니다. 이 역시도 불편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에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6절에서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나라의 죄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과 무기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사회적인 약자들의 인권이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짓밟히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선포합니다.
설교자들이 역사의식도 없는 것도 부족해서 왜곡된 역사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돈과 명예와 권력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합니다.
교인들은 개인구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말씀에 “아멘!”은 하지만 삶이 없습니다.

 

희망이 있겠습니까?
저는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이것이 불편한 진실입니다.

 

■ 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이것이 끝입니까?

회개, 진정한 회개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한국교회는 입술만의 회개에 익숙합니다. 눈물 콧물 흘려가며 목이 쉬도록 회개하는 것은 잘하는데, 회개의 열매가 없습니다.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반공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화해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먼저 손 내밀 줄 모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돈과 무기를 의지하는 것이 진리라고 확신합니다.

 

몰라서 죄를 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바꿀 의지조차 없습니다.

평화통일 주일에 무거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의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허투루 읽지 마십시오. 습관적으로 읽지 마십시오. 그 말씀은 오늘도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혹시라도, 그런 자들이 있어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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