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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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열매(잠언 18:13-24)

  • 관리자
  • 2017-08-13 2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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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열매
잠언 18:13-24

 

말은 삶의 이음줄이라고 합니다.

‘이음줄(Legato)’은 음악용어인데 ‘서로 다른 음과 음 사이를 끊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서로 다른 음을 부드럽게 이어줌으로 마치 한 음처럼 들리게 하는 것이지요. 제대로 된 말을 하지 않으면 타인과의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절됩니다.

오늘 잠언 18장의 말씀은 ‘혀의 열매’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한 절씩, 말씀의 뜻을 풀어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 13절 - 미련한 사람

 

‘미련한 사람’이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은 1분 동안 대략 400~450단어 정도를 생각하고, 100~150단어 정도 말한다고 합니다. 생각과 말의 차이가 큽니다. 생각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말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남의 말을 경청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청은 적극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경청하려면 먼저, 공감하는 듣기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말할 때 미리 판단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상대방의 말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한 말이 이런 뜻인가요? 내가 이해할 때에는 이런 말이었는데, 맞아요? 그래서 상대방이 말할 때에는 끼어들지 말고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 14절 – 사람의 심령

 

히브리어로 표현된 ‘사람’은 장정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남녀를 차별하는 말씀이 아니라 문화적인 한계에서 나온 말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심령’은 마음을 의미하며, 단호한 의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단호한 의지를 갖춘 사람은 어떤 병도 이긴다는 뜻입니다.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병을 이길 수 있다는 단호한 의지가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심령이 상하면’, 즉, 마음이 약해져서 삶의 의미가 상실되면 일상을 소홀히 여기게 되고, 일상을 소홀히 여기게 되면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중에는 ‘나는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나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부심을 빼앗는 방법의 하나로 ‘화장실’을 없애버렸습니다. ‘사람의 심령을 상하게 하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생존자의 중에는 ‘나는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돌을 갈아 매일 면도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단호한 의지는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 15절 – 지식이란?

 

지식은 인간의 정신적 건강의 원천이 됩니다. 그래서 지식은 곧 ‘삶의 지혜’입니다. 지식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외부의 자극은 먼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오감으로 받아들입니다. 즉, 15절의 말씀은 ‘마음과 귀’를 열고, 항상 배움을 위하여 자기를 개방한 사람이 명철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자세를 가진 사람이 명철한 사람입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큰 아이가 세 살 때, 딸을 통해서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놀이 중에서 아빠가 받아줄 만한 조금 높은 곳에서 딸아이가 뒤로 넘어지면 아빠가 받아주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딸에게는 ‘아빠가 나를 반드시 받아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던 것이지요. 아빠를 믿지 못했다면, 아이는 절대 뒤로 넘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 놀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외부의 자극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마음으로 느끼고, 오감으로 듣습니다. 그 모든 일에 여러분을 개방하십시오. 명철한 자가 될 것입니다.

 

■ 16절 – 사람의 선물

 

여기서 ‘선물’은 ‘뇌물’입니다. 문제 해결을 쉽게 하는 지름길은 권력이나 힘 있는 자에게 ‘로비’하면 쉽게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16절의 말씀은 세상 현실이 그렇다는 말씀이지, 뇌물을 장려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 17절 – 송사의 진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들으면 안 됩니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 혹은 위치에 따라 세상을 달라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다른 세상에서 100% 한쪽이 옳은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양쪽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자신의 선 자리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까지 헤아려야 진실에 가까운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어느 한 편의 말만 듣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요즘 극장가에서 광주 5.18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상영 중입니다. 지금이야 80년 광주가 어느 정도 진상규명 되었지만, 80년대에는 학살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어서 국민은 어느 한 편의 정보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광주의 진실은 왜곡되었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는지 모릅니다. 진실은 내가 확실하게 믿는다고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객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 18절 – 제비뽑기

 

레위기 8장 8절에는 제사장의 옷 가슴받이 안에 ‘우림과 둠밈’을 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또한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생겼을 때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데 사용했던 성물입니다. 이때 사람들이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는 ‘제비뽑기’를 통해서 결정했습니다. 이 말씀은 매사 제비뽑기로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에게 뜻을 물으라는 말씀입니다.

 

■ 19절 – 형제와 화목하는 일

 

남자가 아내에게 헤서는 안 될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동차 운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직접 부모가 가르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가깝고 사랑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는 큰데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하면 화가 납니다. 그래서 자동차 운전이나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일은 돈이 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맡깁니다. 자기 아이를 잘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도, 다른 아이들은 잘 가르칩니다. 19절의 말씀은 ‘이해당사자와 가까울수록 화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잘 아는 사람끼리 다투게 되면 마치 ‘산성 문빗장’보다 더 단단하게 마음이 닫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형제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딱 하나가 있는데, 어느 한 쪽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 20-21절 – 혀의 열매

 

두 말씀은 모두 ‘열매’와 연결이 됩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산성 문빗장이 풀리기도 닫히기도 합니다. 외경 <집회서> 37장 16-1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말은 만사의 시작이고
모든 행동에는 계획이 앞선다.
마음은 변화의 뿌리다
그것은 네 갈래로 나타나는데
선과 악, 생명과 죽음이다.
그리고 이들을 끊임없이 다스리는 주인은 혀다

(집회서 37:16-18).

 

‘마음은 변화의 뿌리’인데 그것을 다스리는 것은 혀라고 합니다. 어떤 말을 하는지에 따라서 선한 열매가 나타날 수도 있고 악한 열매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죽음의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혀를, 어느 쪽으로 작동하시겠습니까?

 

■ 22절 – 아내를 얻는 자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을 보시며 ‘참으로 좋아더라!’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기 전에도 창조하신 세상에서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거기에서 ‘아내를 얻는 자’라는 표현이 나온 것입니다. 사람 人(인)이라는 글자는 함께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함께 함으로 지옥인 사람도 있습니다. ‘타타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해서 부부로 살아간다고 해도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상대방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서 부부가 된다는 것은 모험입니다. 부부도 낯설 때가 잦습니다. 칼 야스퍼스는 부부에 대해서 ‘서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관계’라고 정의했습니다. 서로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것이 결혼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상대방의 부족함을 포용해주고, 포용함으로 자기를 더 큰 존재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는 것’입니다. 물로, ‘남편을 얻는 자도 복을 얻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복이 되려면 ‘더 큰마음으로 품어주면서 손해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 23절 –가난한 자와 부자

 

16절의 말씀처럼 현실은 이렇다는 말씀입니다. 이것 역시도 ‘뇌물’과 관련이 있는 말씀입니다. 인간사회에서 말은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이 말을 독점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똑같은 말을 해도 힘 있는 사람이 하면 대단한 말이 되고, 힘없는 사람이 하면 평범한 말이 됩니다. 이것이 말의 권력, 언어의 권력입니다. 바벨탑이야기는 언어의 생성을 밝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벨탑의 언어는 바벨탑을 쌓은 벽돌처럼 획일적인 틀에 갇혀있는 일방적인 말입니다. 권력자들의 명령과 그들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노예들은 쉴 틈 없이 바벨탑을 쌓습니다. 바벨탑의 벽돌처럼 일사불란함을 강요하는 것이 제국의 언어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졌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권력자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제국의 언어가 무너졌다는 말씀입니다.

현실은 이렇지만, 하나님의 자녀의 공동체인 교회의 언어는 달라야 합니다. 서로 소통해야 합니다. 획일적으로 목사나 당회가 결정했으니 무조건 따르라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 24절 – 친구

 

이 말씀 역시도 16절이나 23절처럼 현상에 대한 말씀입니다. 친구를 많이 사귀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를 갖되 친구들에게나 형제들에게나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친구도 형제도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면 해를 당할 수밖에 없으니 균형을 잘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으로 균형을 잡습니까? 말입니다.

 

말이란, 의사소통의 수단이요, 대화의 수단이요 사인(sign)입니다. 그러므로 대화는 눈빛이나 표정, 행동 등 다양한 요소로 표현됩니다. 그 모든 것이 말입니다.

집회서의 말씀대로 말이 만사의 시작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교우들 간에 ‘말’로 상처 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한마디의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은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한남교회 교우들은 서로 간에 선한 말,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한 주간 동안 살아가실 때에 생명을 살리는 말, 선한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혀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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