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태도를 배우라
빌립보서 2:1-11
오늘 본문은 2016년 3월 20일, 종려주일에 ‘하나님이 높여주는 삶’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을 때와 같은 본문입니다. 그때, 종려주일에 대해 설명을 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겸손이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며, 남을 낫게 여기려면 자기를 비우는 삶을 살아갈 것이며, 비움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채워갈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일은 탐욕의 노예가 된 자신을 비우는 날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은 그리스도의 뜻에 우리의 뜻을 조율하는 과정이며, 튜너가 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말씀이 설교의 중심내용이었습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이 말씀대로 살아오셨으리라 믿고, 그 노력만큼 여러분의 신앙도 성숙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 닉 베세이의 X-Ray Man
지난주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중인 닉 베세이의 사진전 ‘X-Ray Man’을 관람했습니다. X-Ray 사진으로 유명한 그의 사진을 보면서 어떤 기법으로 찍었는지 호기심이 컸습니다. 한편으로는, X-Ray 영상장비만 있으면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전에 어떤 사진가도 X-Ray로 사진작업을 한 일은 없었으므로 단지 ‘새로운 시도’ 때문에 유명세를 탄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전시실 초입에 사진작업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 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완성하기 위해서 많게는 수백 장을 찍고, 심지어는 6개월을 작업해서 한 장의 사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사선의 위험성 때문에 다양한 시설도 필요하고 다양한 기술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단지, 장비만 있어서 작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철학적인 사색과 다양한 재능으로 보통의 사진작가들이 찍을 수 없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양한 소재들이 작품에 동원되었는데, 제게 감동을 준 것은 의류였습니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의류들을 X-Ray로 찍었는데 디자이너들도 알 수 없었던 다양한 선들이 엑스레이 사진에 들어있었습니다. 의류 관련 사진을 전시한 곳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차를 운전하는지와 같은 얄팍한 이슈를 중요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적 만족을 찾는 것이다.” - 닉 베세이-
그의 작업은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것을 우리는 중요시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적인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진전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빌립보서 2장 5절의 말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는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 얄팍한 이슈에 불과하고, 내 안에 무엇을 품고 사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내가 드러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은밀한 가운데 나의 모든 것을 보십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제가 추구해야 할 신앙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 빌립보서 2장 5절 분석
목양실로 돌아와 빌립보서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또다시 놀랐습니다. GNT(Good News Translation) 번역으로 읽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The attitude you should have is the one that Christ Jesus had:”
당신이 가져야만 하는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태도입니다.
보통의 영어 성경에는 “Have this mind in you” - “이 마음을 품으라”고 번역되어있는데 GNT와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에는 공통적으로 ‘attitude(태도)’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이며 심리학자로 유명했던 윌리엄 제임스(1842-1910)는 사람들은 더 좋은 방향으로 삶을 바꾸길 원한다고 하면서,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가려면 단지 마음먹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읽은 말씀을 요약하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겸손한 태도를 본받아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마음으로 다짐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의 변화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도 필요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에 따른 태도도 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태도란 무엇인가?
마태복음 26장 41절 말씀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은 함께 깨어 기도하기를 원하는 마음은 있지만, 육신이 약하여 잠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과 태도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일도 중요하지만, 태도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보면 ‘이 마음을 품으라!’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태도를 가지라!”는 말씀이 더 합당합니다.
태도(態度)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나타나는 행동 및 감정입니다. 그래서 태도는 버릇이라고 가리키며, 또한 습관(習慣)도 역시 이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은 가치관을 바꾸어 작은 생활습관까지라도 예수님처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작은 생활습관이나 버릇을 바로 세워가는 일이 곧 신앙의 구체적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잘못된 생활습관이나 버릇을 별것 아닌 것처럼, 신앙과는 별개의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에 ‘네 삶을 조각하라’는 제목의 말씀에서 강조한 바대로 ‘우리 삶의 불필요한 것들을 쪼아내는 것’이 곧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소소한 습관들을 바로 세워가는 일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일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 안에 채우는 일입니다. 신앙이란, 이렇게 구체적입니다.
우리의 태도가 변화되려면 가치관이 바로 서야 합니다. ‘가치관’이란 삶의 우선순위에 관한 것입니다. 2순위라고 해서 혹은 3순위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1순위로 삼고 있는 것이 올바른 것일 때 나머지 2, 3순위의 가치들도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우리 삶의 1순위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마음만 ‘예수 그리스도가 1순위입니다.’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무엇인지, 최대의 관심은 무엇인지 우리 삶의 태도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께서 보실 때에도 기뻐하실 만한 것인지를 봐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삶의 태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일에 소홀히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그의 삶의 태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 예수님은 ‘위선자’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핑계로 자기가 맡은 책임을 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반 친구 중에는 단어 하나를 외우려면 연습지 한 장을 가득 채워야만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성적도 뒤에서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으니 공부하는 머리는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계속 노력을 해서 서울대에 갔습니다. 당시에는 연합고사 점수만 가지고 대학엘 갔는데 맨날 쉬는 시간이면 춤이나 추고, 수업 시간에는 잠이나 자고, 시험을 볼 때면 커닝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영어문장을 제대로 읽지 못할 정도로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시험을 봐서 연세대학교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커닝을 한 결과였습니다. 그 친구는 세 학기 만에 학사경고가 누적되어 제적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 친구들을 만났는데 머리가 나빴지만, 공부를 열심히 했던 친구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었고, 커닝을 통해 남의 수고를 훔치던 친구는 사기를 치다가 교도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보면서 몇 등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를 공부를 대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부하는 태도는 곧 인생을 사는 태도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에게 중요한 것은 ‘몇 등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자녀의 등수에 연연하지 말고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십시오. 그 태도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1순위로 놓고 살아가십시오. 예수님이 주어진 삶을 어떤 태도를 받아들이며 반응하며 살아가셨는지 묵상하면서 그렇게 닮아가려고 노력하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을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우리는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태도는 가치관에 따라 나타나는 행동이나 감정이라고 했습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가치관을 세워줍니다. 오늘은 거창하지 않은 극히 작은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일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해 이 본문으로 말씀을 드릴 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일은 탐욕의 노예가 된 자기 자신을 비운 날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주님을 채우며,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조율하는 날, 그리하여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가 있는 예배에 참여하는 예배자는 어떤 태도로 예배에 임해야겠습니까? 세세하게 제가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참석할 때, 쪼아내어야 할 습관들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 둘 제거하십시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되며, 그 예배를 통해서 우리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가치관의 변화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이 작은 변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품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주일예배에 어떤 태도로 참석하셨을까요?*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