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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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삶을 조각하라(요한복음 15:1-5)

  • 관리자
  • 2017-08-30 2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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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삶을 조각하라
요한복음 15:1-5

 

인류의 최초 예술작품은 ‘조각’입니다. 조각에 해당하는 영어 ‘스컬프쳐sculpture’는 라틴어 ‘스쿨페레sculpere’에서 유래했는데, 스쿨페레의 의미는 ‘쓸데없고 부수적인 것을 덜어내다, 잘라내다, 쪼아서 제거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술가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조각품이라고 인정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입니다. 다윗상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1501년과 1504년 사이에 조각한 대리석상인데 1501년 피렌체에서 시청의 부탁으로 5.1미터에 달하는 다윗상을 3년에 걸쳐 완성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다윗상을 만들 대리석을 찾다가 6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대리석을 만납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커다란 대리석을 보는 순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조각상은 내가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대리석 덩어리 안에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 안에 있었고, 나는 필요없는 것을 덜어냈을 뿐입니다.’

 

예술가적인 심미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6미터에 달하는 대리석에서 쓸모없는 부분을 떼어내자 그 안에 있던 다윗이 위대한 작품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 작품의 가치를 드러내려면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덜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 성악설과 성선설

 

그러면, 여러분 안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동양에서는 우리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는 성선설이고, 다른 하나는 본질적으로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성선설은 맹자가 주장했고, 성악설은 순자가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키워주거나 악한 본성을 억제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학문의 목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어느 쪽일까요?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을 하셨으므로 선하게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우리를 어떻게 볼까요? ‘원죄를 가진 존재’로 봅니다. 성서의 내용과 배치되는 것인데 우리는 왜 인간에 대해서 ‘죄인’이라고 여기는 것에 익숙하여졌을까요? 그것은 다윈의 진화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로 다윈은 자기의 학설을 설명했고, 중세의 시대 ‘천동설’이라는 가설이 과학의 발전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사실임이 밝혀지는 동시에 중세교회의 타락으로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은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적자생존, 약육강식’으로 대표되는 ‘경쟁’의 논리가 교회 안에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리처드 도킨스에 의해 ‘이기적유전자’라는 학설로 발전했고, 과학의 발달로 신적인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인간이 극복해 가면서 ‘무신론’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 선한 존재로 창조된 인간

 

오늘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인간존재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은 선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선한 존재로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나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만 하는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의 유전자’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도록 창조된 이타적인 존재요, 자기보다 약한 이들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함께 아파하며 공감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에베소서 1장 4절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등등 수없이 많은 말씀이 우리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요, 이타적인 존재요, 선한 존재요, 복 받은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 참포도나무와 가지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참포도나무요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에게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도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포도나무 가지에 꼭 붙어서 열매를 맺으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습니다. 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입니까? 여러분, 포도나무를 보신 적이 있으시죠. 줄기부터 가지까지 포도나무가 아닌 곳이 어딥니까? 통틀어서 우리는 ‘포도나무’라고 하지, 줄기는 포도나무요, 가지는 포도나무가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은 “너희는 하나님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하면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시며 인간존재에 대해 무한긍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모두,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들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가꿔주시는 분들이십니다.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친밀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는 하나 되어 더불어 살아가던 것들을 분열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던 것들이 서로 반목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은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점점 자기 아닌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죄라는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지요. 마치 우리는 커다란 대리석이라는 감옥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 삶을 조각하라

 

이 감옥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요? 처음에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삶을 조각해야 합니다. 조각이란 불필요한 것들을 쪼아서 버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다 쪼아서 버리고 나니 대리석 안에 들어있던 멋진 다윗상이 드러났던 것처럼, 우리 삶 역시도 불필요한 조각들을 쪼아 버리다 보면, 우리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께서 주신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가 다윗상을 만드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를 쪼아서 우리 안에 들어있는 형상을 드러나게 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단 한 번의 회심으로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 작업을 평생토록 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기회의 시간입니다. 어떤 기회의 시간이냐면, ‘아직 네 안에 들어있는 너를 다 드러내지 못했으니 불필요한 것들을 쪼아 버리고 내가 준 너를 완전히 드러내라.’고 주신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런 시간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길 원하지만, 불쑥불쑥 내 안에 들어있는 불순종의 모습들을 봅니다. 헌신하고 싶은데 대충대충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머리로만 듣는데 익숙합니다. 삶으로 살지 않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데 늘 손님처럼 구경꾼처럼 행동합니다. 예배의 주체가 되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기 위해서 힘써야 하는데, 그냥 구경만 합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가 쪼아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서 늘 그 자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늘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쪼아 버리지 않으면,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가지를 잘라내지 않으면 해마다 자잘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고, 정으로는 쪼아지지 않을 정도로 굳어지거나 혹은 쪼던 틈으로 이물질이 들어가 대리석이 갈라져서 작품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옛날 저희 집 마당 우물 곁에는 커다란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70년대 마당이 있는 집이었는데, 펌프 곁에는 시멘트로 만든 네모난 다용도 욕조가 있고, 욕조 옆으로 포도나무가 자라 올라가는데 교회 앞마당 등나무처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해주었더니 여름이면 그늘이 생기고, 낮에도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목욕을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포도가 익을 즈음이면 교회청년들과 교인들을 초대해서 잘 익은 포도를 따서 접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포도가 점점 작아집니다. 그늘이 더 좋았으므로 가지치기를 하지 않았더니 포도는 점점 자잘해지고, 이파리만 무성하고, 나중에는 포도가 열려도 제 입에 차지도 않을 정도로 작습니다. 아쉬웠지요. 7-80년대 청년회 활동을 할 때 연중행사 중 하나가 과수원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복숭아가 열릴 즈음이면 복숭아 과수원에 가서 원두막에서 복숭아를 먹으면서 친교를 하고, 수박이나 참외나 딸기가 열릴 때에도 그랬고, 포도가 열릴 즈음에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남한산성에는 포도밭이 있는데 당시에도 포도밭이 있어서, 청년들하고 포도가 익을 즈음이면 마천동으로 해서 서문으로 올라가 동문 근처에 있는 포도밭까지 가서 포도를 사 먹고 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포도밭에 처음 갔을 때 놀랐던 것은 포도송이가 너무 먹음직스럽다는 것 때문에 놀랐고, 그렇게 실한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들이 제 키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 때문에 놀랐습니다. 봄에 가지치기하면 새 가지가 올라오는데 거기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포도가 최상품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원줄기에 해당하는 가지들만 남겨두고 잔가지들을 쳐주기 때문에 포도나무가 늘 그 크기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과수목도 마찬가집니다, 배나 복숭아나 사과 같은 것들도 얼마나 가지치기를 잘하는지에 따라 열매가 다른 것입니다.

 

■ 네 삶을 조각하라

 

포도나무 가지치기와 대리석을 쪼는 일, 거기엔 수고와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고와 아픔을 통해서 실한 열매를 맺고,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아름다운 형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가지치기를 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쪼아내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을 조각하는 일은 아픔을 동반하지만, 기쁜 일이지요, 좁은 길이지만 생명의 길이므로 기쁘게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습니다. 그 형상을 감추는 거짓을 쪼아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을 허락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의 모습을 완성하라고 주신 기회의 날입니다. 완벽하지 않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석공이 바위를 쪼갤 때 망치질 한 번에 쪼개지 못하지만, 바위가 쪼개질 때에는 반드시 마지막 한 번의 망치질이 있기 마련입니다. 단 한 번의 망치질만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 삶을 조각하는 일, 불필요한 것을 쪼아내는 일을 쉬지 마십시오. *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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