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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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수님의 제자(요한복음 8:31-38)

  • 관리자
  • 2017-07-09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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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수님의 제자
요한복음 8:31-38

 

지난 2주간 ‘평안’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성령의 인도 하심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이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기 위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에 주눅이 들어 살아가는 것도, 기쁜 삶의 근원을 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 쾌락’ 속에서 찾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죄의 종’이라는 단어는 자유와 상반되는 단어요, ‘너희 아비’는 ‘진리’와 상반되는 단어로 사탄이 되겠습니다.

 

이번 주 본문은 교회력에 따른 본문입니다. ‘교회력’에서는 공통되는 네 본문을 줍니다. ‘구약, 시가서, 서신서, 복음서’가 그것인데, 전통적으로 복음서를 맨 마지막에 읽고, 복음서를 읽을 때에는 일어서서 말씀을 받습니다. 오늘날에는 예배 형태에 따라 교회마다 다르지만 모든 말씀은 ‘복음서’의 말씀으로 향하고 있으며,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경 66권의 진수는 복음서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교회력에 따른 네 본문

 

욥기 28:12-28절 : 욥을 찾아온 세 친구에게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명철임을 밝힘
시편 16편 : 다윗의 금언시(황금시)로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음’을 강조
사도행전 17:16-34절 : 바울의 아덴(우상이 가득하던 도시)에서 논쟁 /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구원자가 되신다.
요한복음 8:31-38절 :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교회력의 네 본문 말씀을 알기 쉽게 정리해 보면, 요한복음의 진리는 곧 예수님이십니다. 시편에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는 말씀과 사도행전의 부활하신 주님만이 구원자라는 말씀은 결국 같은 말씀이고, 그러므로 복의 근원이요, 구원자 되시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요 명철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원자이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복된 길임을 강조하고, 그 길은 곧 구원의 길임을 밝히는 것이 네 본문이 가지고 있는 중심내용입니다. 이제 요한복음의 말씀을 풀이하겠습니다.

 

■ 잘못된 믿음

 

예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실 때에 요한복음 18장 30절에 ‘많은 사람이 믿더라(8:30)’고 증언하지만, 33, 37, 48, 59절의 내용을 보면 여기의 ‘믿은 사람’들은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시비를 겁니다. “우리는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자유로워지리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하시며,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48절에 예수를 향해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 말이 옳다”고 합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59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31절에 분명히 ‘예수를 믿은 유대인’이라고 했는데, 예수를 믿는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걸려서 예수님을 죽이려 하니 이들은 무늬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무늬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욕먹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분이신 것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이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디에서든 “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요!”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내 말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 요한복음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말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는 순간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요한복음이 애용하는 표현으로,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내재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말씀이 항상 내재해 있다는 말씀은 그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요, 말씀을 취사선택해서 좋을 때만 혹은 필요할 때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always)’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좋은 일이 생길 때만이 아니라 손해 보는 일을 당해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내 말에 거하면’이라는 뜻이므로,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을 때에만 혹은 필요할 때에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욥기에서 이야기하는 ‘주를 경외하는 것’이요, 시편 다윗의 고백처럼 ‘주 박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 찬양하며 살아가는 것이요,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37절 말씀은 의미심장합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즉, ‘거할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현실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예수님을 죽이고 있습니까?

 

■ 죄란 무엇인가?

 

이 말에 유대인들은 걸렸습니다.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윤리적으로 나쁜 짓’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분열’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였으며 더불어 살던 관계들이 모두 분열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분열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분열됩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분열되고, 급기야는 자기 내면의 분열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이런 분열된 관계들이 더 심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만으로 구원의 대상이라 생각했고, 자기들보다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원받지 못할 죄인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가 아니었으며, 진리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율법이라는 문자 속에’ 갇혀버리면서 ‘죄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들의 ‘죄의 종’인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들이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이들이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속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며 자기가 우물 속에 갇혀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용기 내어 동굴 밖으로 나왔던 사람, 두레박을 타고 우물 밖으로 나왔던 개구리가 진실을 말하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죽이려고 합니다.’

 

‘죄의 종’이 되자 ‘진리’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희 아비에게 들은 것’ 즉, 율법만 잘 지키면 구원받을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인 이상,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 또한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죄의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려면 최면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착각의 신앙, 위선의 신앙을 그들은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다양한 단어로 표현합니다. 1장 1절에서 ‘로고스(말씀)’로 예수님을 표현하는 것을 필두로 생명, 빛, 복음, 길, 진리, 어린 양, 영생, 구원, 샘물 등이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선언적인 말씀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까? ‘죄’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이 세상이 주는 평안과 기쁨은 분명히 소중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얻는 순서를 잘 정해야 합니다. 우선순위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여,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덤처럼 필요한 것들을 주실 때 그 모든 것은 진정한 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세상적인 성공을 이룬 다음에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세상적인 성공이라는 것의 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을 이룬 다음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여정 가운데 뭔가가 이뤄지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 중에서 ‘집착’만큼 끈질기고 교묘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없습니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심지어는 신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여러분, 자유롭게 하늘을 사는 새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바람과 맞서 싸우지만 날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을 나는 새니까 그렇습니다. 아주 당연하지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신앙인의 길은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이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참된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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