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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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던지신 사람들(렘 1:4-10, 행 9:1-19, 마 9:35-10:1)

  • 관리자
  • 2017-06-18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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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던지신 사람들
(렘 1:4-10, 행 9:1-19, 마 9:35-10:1)

 

▪소명 받은 사람들

오늘은 성령강림후 둘째주일입니다.
예레미야의 소명과 관련된 성경 본문만 읽었지만, 교회력에는 오늘의 본문 예레미야서와 함께 사도행전 9:1-19절 바울의 소명기사, 마태복음 9:35-10:1절의 12제자 소명기사가 있습니다. 세 본문은 예레미야, 바울, 12제자를 부르심, 즉 ‘소명기사’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모태 전부터 선택하셨고 거룩하게 구별하셔서 예언자로 세우신 인물이었습니다. 두려워하는 예레미야를 향해서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손수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입에 넣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바울도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극적인 체험을 하였습니다. 비록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러 가는 길이었지만 주님께서는 바울을 선택하시고 부르십니다. 바울은 시력을 잃었다가 회복되는 기적을 겪었고,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주님께서 택하신 그릇이라고 선언하시면서 사도로 세우십니다. 이것은 열두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의 제자가 되면서 그들은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내는 권능을 얻었고 사람들의 온갖 질병과 허약함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세 본문에 나오는 이러한 은혜와 능력은 누구나 성령을 통해 누리고 싶어 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별하시고 함께하시면서 기적과 능력으로 우리를 세워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겁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간절히 구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소명 받은 자의 현실

 

하지만 우리는 예레미야와 바울, 열두 제자가 소명 받은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소명을 통해서 그런 은혜와 능력을 받았으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을 누리며 살았어야 할 터인데 그들의 삶은 그런 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다가 매도 많이 맞고 온갖 모욕을 당하는 일상을 살았는데 죽을 때까지 그런 상황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바울도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당하면서, 복음을 전하다 여러 번 매를 맞고 옥고를 치르며 살았고, 고문을 당하다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열두 제자들도 예수를 떠나 도망갈 정도로 그 길이 쉽지 않았고,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는 박해와 고난을 당했습니다. 제자 중,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죽었으며, 사도행전 12장 2절에 의하면 야고보는 참수를 당했습니다. 마태는 칼에 맞은 상처가 덧나서 죽었고, 요한은 기름이 끓는 큰 가마솥에서 죽었으며,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언덕에서 던져졌는데 죽지 않자 곤봉에 맞아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살이 다 벗겨지도록 채찍에 맞아 죽었고, 초대교회 집사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복을 받고 성령 충만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왜 이들은 이런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일까요?

 

슬라보예 지젝의 『신체없는 기관』이란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 신자가 불평한다.
“저는 신성한 은총을 약속받았지요. 하지만 이제 저는 신에게 버림받고, 궁핍하고, 괴로워요.”
그러자 신성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알겠느냐. 이제 진실로 너는 신과 더불어,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이니라.”

 

소명 받은 사람의 삶은 분명히 복된 삶이지만, 이것은 세상의 ‘복’이라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성공과는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서서평 선교사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서평>에는 선교사가 죽음의 순간까지 벽에 붙여두고 돼 내였던 신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ice.).”라는 고백입니다. 소명 받은 사람들의 삶은 복된 삶이지만, 단순히 세상적인 복을 구하는 단계에서 멈춰버리면 기복신앙과 다를 바 없는 초보단계의 신앙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불행은 ‘초보단계의 신앙’으로 중무장한 설교자들이 세상적인 성공을 이뤘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러한 성공이 목회의 성공인 것처럼 여기고, 그런 성공을 바라는 이들은 또한 그런 설교자들에게 열광합니다. 물론, 소명 받는 사람들에게 세상적인 성공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그것은 목적이 아니며, 때로는 그 소명 때문에 고난을 감내해야만 할 수 있으며, 고난의 길이지만 그 길만이 참된 길이므로 기쁘게 범사에 감사하며 걸어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성공의 방편으로 삼지 마시고, 신앙생활을 통해서 섬김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섬김의 삶을 실천하면,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므로 주어지는 유익이야말로 참된 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던지신 사람들

 

‘예레미야’라는 이름은 “야훼께서 세우시다.”와 “야훼께서 던지시다.”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던지기 위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파멸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예레미야를 세우시고 그를 고난의 역사 속으로 던지신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의 열두제자도 수많은 순교자와 신앙의 선배들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던지신 것입니다.

 

오늘도 그들을 세우셨던 성령께서 우리를 세우시고 우리를 세상 속으로 던지십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이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입니다. 살맛 나지 않는 세상에 맛내는 소금으로 던져진 사람들,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으로 던져진 사람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급박하게 던져진 성령의 일꾼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그 일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실 때 우리가 감당할 만큼만 요구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항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주시느니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필요한 곳으로 던지실 때에 능히 감당할만한 능력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소명 받은 자의 삶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은 예레미야, 바울, 12제자를 위시하여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과 순교자들의 삶이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상처투성이요, 실패한 삶뿐이라고 한다면 누가 소명 받길 원하겠습니까?

 

‘쥬이상스(Jouissance)’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의 뜻은 쾌적한 즐거움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스며있는 기쁨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늪을 기어가는 기쁨’으로 요약되는 이 말은 “너의 상처를 사랑하라.”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의 조언과 맞닿아 있습니다. 라캉은 억지로 상처를 잊으려고 하거나 환상에 빠지기보다, 그 상처를 직시하고, 그것 때문에 조작되어 나타나는 증상까지도 사랑하라고 권합니다. 무조건 긍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 상처까지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소명 받은 사람들, 던져진 사람들이 겪은 상처와 아픔,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리하여 마침내 빛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뭔가 되기 위해 발버둥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소명에 가치를 두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이므로, 그 소명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자신들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실패한 삶이지만, 그들이야말로 자신을 진정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요,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 자기 사랑(self-love)

 

기독교는 이웃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러다 보니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는데 ‘자기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 이웃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으므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김응교 시인은 『그늘』이라는 책에서 이런 예를 듭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작은 강낭콩이 포도알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품고 있는 존재 가치를 피워내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주님의 제자가 되면서 그들은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내는 권능을 얻었고 사람들의 온갖 질병과 허약함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던 것보다 더 큰 성령의 선물임을 잊지 마십시오. 아무리 보잘것없다 생각되어도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귀한 계획을 세우시고 나를 이 세상에 세워주셨다고 자부하고 살아가십시오. 자기를 진정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 길에서 어려움을 만나 던져질지라도, 나만 겪는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에 던진 사람들 누구나 겪는 아픔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을 예레미야에게 소명을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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