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1) - 부드러움
에스겔 36:22-31
성령강림주일 두 번째 주일입니다. 이번 성령강림절에는 성령 받은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령강림주일을 포함하여 8월 말까지 13주간이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의 품성을 다룬다면 13가지 주제가 되겠습니다. 현재로서는 인물과 품성을 절반씩 다룰 계획입니다. 지난주에는 성령의 기운이 충만했던 ‘엘리야’를 통해서 말씀을 전했고, 이번 주에는 성령의 사람이 간직해야 할 품성 부분에서 ‘부드러움’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주에는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렸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딱딱하게 굳었던 땅이 부드러워졌고, 흙이 부드러워지자 뿌리가 숨을 쉬고, 뿌리가 숨을 쉬자 식물들이 힘을 얻고, 식물이 힘을 얻어 새순을 내니 동물들도 덩달아 춤을 춥니다. 땅은 부드러워야 품은 생명을 싹 틔웁니다. 굳어버린 땅은 호흡하지 못함으로 생명을 피우지 못합니다. 부드러운 땅은 싹튼 초록 생명 때문에 늘 촉촉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땅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그렇습니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겔 36:26)”이라는 말씀은 희망이 없는 유다 백성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며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 그 사람만이 생명을 살립니다. 죽음의 세상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일이요, 성령의 일이요, 성령 받은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부드러운 마음’이 주는 유익과 부드러운 마음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
‘헨리 나우웬 최고의 역작’이라는 평을 받은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오늘날 목회자가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정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회자를 ‘상처 입은 치유자’로 정의한 헨리 나우웬은,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임을 역설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한계를 지니신 채로, 인간과 다르지 않은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 아픔과 상처가 있었기에 우리를 치유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처는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기인합니다. 나와 아무 관계 없는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상처가 깊어지지 않도록, 극복할 수 있을 만큼에서 상처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상처는 오히려 삶의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나무에 상처가 생기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옹이가 생깁니다. 나무의 향이 가장 깊은 곳도 옹이요, 가장 단단한 곳도 옹입니다. 나뭇가지를 자르면, 잘린 가지 아래로 두 개의 줄기가 나옵니다. 주로 분재나 나무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전지할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잘리는 아픔을 극복하고, 멋진 나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상처, 그것은 나무의 난 상처와 잘린 줄기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처는 우리를 죽이기 위한 상처가 아니라, 더 단단하고 멋진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연단의 과정입니다.
신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담당 교수님께서 목사가 되려면 가장 밑바닥 생활을 경험해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노동현장에 위장취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기 중에는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의 원주 태장동 미군 부대 근처에서 쓰레기를 치워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십일을 넝마주이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동상에 걸려서 절룩거리며 보낸 겨울, 그 밑바닥 경험을 통해서 저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났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저의 신학적인 지평뿐 아니라 사고의 지평도 넓어졌습니다. 만일 그때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저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아주 편협했을 것입니다.
▪부드러움이 주는 유익
미국의 심리학자 하로우 박사가 원숭이를 대상으로 애정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두 개의 어미 원숭이 인형을 만든 후, 새끼 원숭이들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철사로 만든 딱딱한 인형에는 젖병을 부착했고, 천과 솜으로 만든 인형에는 아무것도 부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새끼 원숭이들은 젖병이 없는데도 부드러운 천 인형에 가까이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로우 박사는 실험결과를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짐승들도 딱딱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을 좋아한다. 모든 동물은 포근하고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
사람도 같습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사람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타인으로 하여금,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쎙떽쥐 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얻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얻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주도 종달교회에서 시무할 때 텃밭을 가꾸는데 가뭄이 들었습니다. 한여름 뙤약볕에 시들 거리는 텃밭의 채소들이 안쓰러워 물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만, 권사님 한 분이 “목사님, 해가 뜨거울 때 물주면 금방 말라서 땅이 굳어요.”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물이 마르고 나니 땅 표면이 딱딱하게 굳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땅이 굳으니까, 뿌리가 호흡을 못해서 식물이 말라죽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농사법이 생각났습니다. “야야, 김을 맬 때에는 풀만 뽑는 게 아녀. 살살 호미로 흙을 돋아줘서 뿌리가 숨을 쉬게 해줘야 해. 뿌리가 숨을 쉬면 땅이 고슬고슬 부드러워져. 그러면 땅이 살지.” 그렇게 김을 정성껏 맨 도랑은 다시 땅도 부드러워지고, 땅이 부드러워지니 채소도 잘되고, 채소가 잘되어 빽빽하니 그늘이 생겨서 땅도 습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습기가 있으니 달팽이나 지렁이 같은 곤충들이 모여들고, 달팽이가 채소를 먹긴 하지만 먹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것이 많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사람에게는 부드러운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우러지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줍니다. 건강한 에너지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 덕분에 건강한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 부드러움이 주는 유익입니다.
▪부드러운 삶을 살려면
상처받은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아주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꼭 상처가 난 곳만 공격합니다. 상처가 아물만하면 또 그곳에 화살을 쏴서 상처를 더 크게 만들고 급기야는 큰 흉터를 만듭니다. 상처받은 사람의 상처만 콕콕 찌르는 이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요? 자신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사람은 상처를 준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설령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곧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당사자는 그것을 잊지 못하고 계속 확대재생산 합니다. 자기 안에서 점점 상처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드러운 삶’을 살려면 첫째, 자신의 상처를 찌르는 일을 멈추고 화해하십시오. 누가 대신해서 내 상처를 치유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내가 내 삶을 사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서 내 삶을 살아주지 않는 것처럼, 상처는 내가 반복해서 그곳을 찌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밭은 부드럽게 하는 행위를 가리켜 ‘영혼의 밭은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밭을 한 번 갈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을 때마다 갈고, 잡초를 뽑아주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부드럽게 하려면 끊임없이 적절한 때에 영혼의 밭을 갈아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밭이란, 관념으로 갈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선행을 통해서 영혼의 밭은 부드러워지는 법입니다. 선행이라는 것은 바로 잡초를 뽑아내면서 흙에 숨통을 내주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작은 선행이 모이고 모여 점점 풍성해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람의 영혼이 부드러워지면,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들면 사람다운 삶,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선행이라도 힘써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행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을 더욱 부드럽게 해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삶을 살려면, 불필요한 것들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지 않아도 될 것, 듣지 않아도 될 것, 먹지 않아도 될 것, 읽지 않아도 될 글은 읽지 말아야 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우리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지저분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갖고, 적게 말하는 습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으로 볼 것, 들을 소리, 살아가야 할 길이 보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잡초를 뽑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김을 맬 때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만, 하루 이틀만 지나면 잡초를 뽑아낸 양만큼 자라는 거야.”
잡초를 뽑는 일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잡초를 뽑고 뒤돌아보면 또 잡초가 보이고, 다음 날 밭에 나가보면 또 잡초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면 잡초만 무성한 밭이 되지만, 잡초를 다 뽑아내지 못해도, 매일매일 뽑아내면 채소가 실하게 자라면서 잡초는 시름시름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회개의 신비입니다. 회개한다고 죄 없는 상태기 되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하는 영혼을 죄 없다고 인정하시고, 회개한 만큼 영혼의 밭을 부드럽게 해주셔서 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귀한 열매들이 자라남으로 죄의 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갑니다. 이 상태가 되면, 누군가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더라도 품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큰 강물에 소금 한 줌을 푼다고 해서 강물이 짜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종지 한 그릇에 소금 한 줌이 들어간다면 짜다 못해 쓴맛이 날 것입니다. 큰 강물 같은 마음이 되면 한 줌 소금과 같은 상처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드러운 마음의 힘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부드러운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성령의 계절에 이 부드러운 마음을 품고 사셔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