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사랑(20170402/사순절 5주)
요한복음 3:16 –21
▪ Most(The Bridge)
<Most(The Bridge)>라는 단편영화가 있습니다. ‘Most’는 체코어로 ‘다리’라는 뜻인데, 이 영화는 제76회 아카데미 단편영화부문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철도 교량을 관리하는 아버지와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자기가 일하고 있는 일터에 아들을 데리고 갑니다. 아버지의 일터는 개폐식 철로를 관리하는 곳입니다. 강 위로 철로가 놓여있어서, 배가 지나갈 때에는 철로를 올리고, 열차가 오면 철로를 내려주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아들과 함께 철로를 개폐하기로 약속했고, 아들은 잠시 낚시를 하러 강으로 내려갔고 아버지는 기계실에서 일합니다. 배가 들어오자 철로를 올렸는데 열차가 정지신호를 보지 못하고 그곳으로 달려옵니다. 먼저 이것을 본 아들은 자기가 철로를 내리려고 하다가 기계실로 빠지고, 뒤늦게 기차를 발견한 아버지는 기계실로 달려가다가 아들이 기계실로 빠지는 것을 봅니다. 철로를 내리면 아들이 죽고, 내리지 않으면 열차에 탄 승객들이 죽게 됩니다. 이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희생시키고 승객을 살리는 선택을 합니다. 아들의 희생으로 승객은 사고를 면했지만, 그들은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이 인간의 죄 때문에 타락해가는 것을 더는 보실 수 없었습니다.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은,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창조한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불완전한 존재였기에 늘 생각하시고 기억하시며 도와주셨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는 자신들뿐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모든 것들을 함께 파멸의 길로 몰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참 좋았던 세상으로 만들어 가실 것인가?’ 고민하셨습니다. 예언자들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시기도 했으며, 여러 징조를 통해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단 하나의 방법 외에는 인간을 구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돌이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아들, 하나님에게는 둘 다 소중한 것이었으나 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참으로 무기력한 하나님을 봅니다. 그러나 저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하시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쪽을 선택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사순 절기는 바로 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무기력한 사랑, 영원하신 하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희생제물은 인간을 위한 것
죄를 사해주시며 구원해 주시는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희생제물’을 받지 않으시고도 세상을 구원해 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신앙이 어렸을 때의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실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 ‘희생제물’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희생제물’ 없이는 자신의 죄가 사해졌으며,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인간을 배려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은 증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졌으며,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영생과 구원’의 삶이 열렸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구원받을 방법이 없었지만, 예수님 이후에는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The Most(The Bridge)’라는 영화에서처럼 아들도 구하고 열차의 승객도 구하는 방법은 없었던 것이지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순간, 하나님은 이 세상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 - 11:40분에 play
이쯤에서 제가 말로 설명한 영화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석과 자막은 이해를 위해서 약간 첨가하고 뺐습니다(7분 15초 분량).
열차 안에 있는 승객은 선하거나 착한 사람만 있지 않았습니다. 거기엔 쾌락을 좇던 마약중독자도 있었고, 이별에 슬퍼하던 사람도 있었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모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사고 없이 그곳을 지나간 승객들은 아들의 희생 덕분에 자신들이 살았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마약중독에 빠져 쾌락을 좇던 여인만이 오열하는 아버지를 볼 뿐이요, 그것도 왜 그토록 절규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만일 한 아버지와 이들의 희생, 그리고 그 희생으로 살려낸 수많은 사람, 당신이 그 기차 안에 있었다면, 시간이 흐른 뒤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들이 사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아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살린 그 아버지를 만난다면 당신은 무슨 말로 그 감사를 표현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버지가 바라는 것, 그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당신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약 중독에 빠졌던 여인이 건강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앙이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시면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 사랑’ 찬양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는 /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으시는 /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그 사랑 예수/ *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