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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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시편 8:1-9)

  • 관리자
  • 2017-03-26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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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시편 8:1-9

 

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분께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지난주 뉴스를 통해서 다양한 소식을 접했습니다만 저는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알려진 영국 런던에서 차량 테러가 뉴스와 바다에 잠긴 후 1,072일 만에 다시 떠오른 ‘세월호’를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어떤 마음 상태면, 자기의 목숨을 걸고 상대방의 생명을 죽이고, 어떤 마음 상태면 어린 자녀와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가족에게 종북빨갱이 딱지를 붙이면서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본모습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창세 전에 귀한 계획을 세우시고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인간의 모습은 저런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려 시편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은 시편 8편 5-6절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시편 8:5-6/개역)”

 

▪시편 8:5절의 번역의 역사

 

히브리어 성서에서의 인간은 기원후 4세기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체계화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유전적으로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일 뿐입니다. 히브리어 성서는 기원전 3세기경에 그리스어로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70여 명의 유대학자가 성서번역 작업에 참여하여 ‘칠십인 역’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때, 이 부분(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이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그는 그를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형성한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오역’을 한 것입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382년 로마교황 다마스쿠스는 성서학자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에게 라틴어 번역성경을 출간하라는 명령을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문을 직접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a)’를 제작하지만, 70인 역의 번역본을 참고 해서 재번역하면서 이 부분은 역시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로 해석됩니다. 당시 시대적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하던 시기였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신 중심적인 헤브라이즘의 시대에서 인간 중심적인 헬레니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유대교는 이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헤브라이즘 시대에 강조하던 ‘인간은 신의 대리자, 동역자’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폐기하고 ‘인간과 신은 질적으로 다름’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과 질적으로 다른 인간이기에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점차로 잊힌 것입니다. 이에 더해 기원후 4세기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에덴동산의 선악과 사건을 조명하면서 ‘원죄’ 개념을 만들었고, 이후 이 개념은 그리스도교의 핵심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인간을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만들 수도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인식은 그리스도교 내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께서 귀한 뜻을 가지고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창조하신 귀한 존재라고 고백합니다.

 

▪사회적인 약자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

 

시편 8편 2절에 등장하는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는 ‘사회적인 약자’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약자들을 대할 때, 불필요한 존재 혹은 사회적인 비용을 증가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지극히 물질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물질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인간 중심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인간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요,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존귀한 존재요,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는 부모의 도움 없이는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필요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젖먹이가 주는 기쁨은 이 세상이 주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늘 사회적인 약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아우성치고 부르짖을 때에도 기꺼이 그들의 역사에 동참하셨으며, 언제나 사회적인 약자가 부르짖으면 침묵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회적인 약자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뤄가는 통로입니다. 사회적인 약자가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하나님의 정의가 이뤄진 세상입니다.

 

▪피조물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시편 8편 3절에 등장하는 ‘하늘과 달과 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것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일상을 거룩하게 하는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것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지는 꽃을 보면서, 하늘 나는 새를 보면서,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새들이 지저귐과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심지어는 뭔가에 찔렸을 때 아픔을 느낄 수 있는 통증까지 모두 신비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시편 8편 5절에서는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당신이 만든 모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시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먼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을 가장 귀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신 것은 ‘창조의 동역자’로 우리를 삼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의 동역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다 망가뜨려 놓고, 이제 이 세상은 오염되었으니 다 버리고 천국에 가자는 심보를 가진 사람들에게 천국은 없습니다. 천국은 공간적으로 저 하늘 위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곳이 곧 천국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존재이십니다. 그러므로 ‘조금 못한’이라는 말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어찌 보면,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달려온 기록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완벽 콤플렉스

 

왜 하나님은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셨을까요? 이것은 인간을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한 개별인간으로 하여금 완벽하라고 요구하고, 사람은 그에 맞춰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당연한 차별과 완벽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내재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음모입니다. 결국, ‘완벽하지 못한 인간은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그 실패는 당연하다.’라고 각인시키는 것이지요. 이런 세상에서는 육체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실패자로 살아야 하고, 다수결의 폭력 속에서 사회적인 소수자로 몰리면 마녀사냥을 당합니다. ‘완벽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행복한 이유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못 생겼으면 어때!”

 

본래 사람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생각하시고 돌봐주시는 것(시 8:4)입니다. 책임져 주시는 것이지요.

 

동영상을 한 편 보시겠습니다.

두 살 때부터 청력을 상실했고, 노심초사 끝에 삽화가가 되어 안정되는 삶을 살아가는가 싶었는데 회사가 망하고, 실명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위기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구경선 작가는 자신의 삶이 마치 구멍 난 그릇처럼 느껴졌습니다. 깨뜨려버리고 싶은 구멍 난 그릇, 그러나 그는 곧 알게 됩니다. 그것은 구멍 난 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인테리어 조명기구였습니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 우리의 삶의 장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특별한 계획을 세워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잘하는 일 한 가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부족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시고, 주눅이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너를 그렇게 창조했단다. 그리고 ‘내가 안다! 완전하지 않아서 힘들어 하는 것을 내가 안다!’ 그래서 늘 너를 생각하고 돌봐주는 것이란다.”

 

기도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저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귀하게 우리를 창조하여 주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완벽하지 않음으로 인해 기죽지 말게 하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귀한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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