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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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회복하는 신앙(마가복음 3:1-6)

  • 관리자
  • 2017-03-19 1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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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회복하는 신앙
마가복음 3:1-6

 

따스한 봄날입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의 삶이 봄날처럼 따스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그 고난이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절기입니다. 이러한 사색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올해 사순 절기에는 십자가의 고난을 향하여 묵묵히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면서 신앙의 본질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에는 ‘거룩한 낭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전한 메시지의 의도는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boundaryless) 향유를 부은 여인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이 경계 지은 종교적인 행위나 법규라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이냐?’의 문제를 다루면서, ‘거룩한 낭비’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사회가 금기시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우리의 신앙의 본질과도 다르지 않은지 고민하셨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사순절 두 번째 주일에는 ‘리멘(limen)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물러가신 후 세상으로 나아와 복음을 선포하시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제가 전한 메시지의 의도는 ‘누구에게나 리멘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으며, 이 리멘의 시간은 마치 누에가 나비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제의’와도 같은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순절만이라도 빨리빨리 초스피드 세상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신앙의 본질을 회복할 길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했습니다.

오늘은 ‘안식일에 마른 손을 고쳐주신 치유의 이야기’를 통해서 안식일 법의 본래 목적을 살펴보면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저는 나름 사순절을 보내면서 ‘신앙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때,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늘, 설교를 마친 후에 드는 회의와 반성은 내가 의도한 바를 잘 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버벅거리는 설교를 지난 일 년간 경청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목회자의 숙명

 

설교는 목사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느새 한남교회 강단에서 메시지를 매주 선포한 지 일 년이 되었습니다. 일 년 52주이니까 수요예배와 오후 예배를 포함하면 150편의 설교와 새벽예배 300회, 매달 금요기도회를 했으니 12회 등 최소한 450회 이상입니다. 스스로 위로하기는 신앙의 성장이란 ‘콩나물시루에 들어있는 콩나물’ 같은 것이라서 듣고 잊어버리는 것 같지만, 서서히 성장하는 것이라 여기며 오늘도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느 선배 목사님이 청년 주일을 앞두고 열심히 설교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전할 수 있을까 예화도 적절하게 포함해서 잘 전했다고 합니다. 다른 날보다 “아멘!”도 많고, 호응도 좋아서 ‘오늘을 잘 들었나 보다.’ 흐뭇했다고 합니다. 예배 후에 점심을 먹는데 교인들이 모여서 목사님의 이번 주 설교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신도회별로 모여서도 목사님의 설교에 관해 대화를 나눕니다. 설교를 잘 들었는가 기분이 좋아서 귀를 기울여보니 메시지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고 ‘청년들처럼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싶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목사님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으면 어울릴까, 아닐까? 목사님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어도 된다, 안된다.”는 것이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메시지의 핵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교인들은 ‘찢어진 청바지’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지요. 한남교회 교우님들은 제가 단순히 ‘찢어진 청바지’만 해도, ‘그 속에 어떤 귀한 뜻이 있을 거야!’ 생각하시면서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안식일 법의 본질

 

안식일 법은 십계명의 제4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주신 유일한 말씀입니다. 이 돌판은 둘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의 돌판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법을 새겨주셨고, 다른 돌판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법을 새겨주셨습니다. 두 돌판에는 각기 ‘적극적인 명령형’으로 제시된 계명이 있는데, 첫 번째 돌판에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제4계명이며, 두 번째 돌판에서는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의 노예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쉼 없이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쉼’은 곧 자유이며, 해방의 상징입니다. 그들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자유로운 삶, 해방의 삶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으로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들만 쉴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것, 나그네와 종은 물론이요 가축과 땅까지도 안식일에는 하나님 앞에서 쉬어야만 그들에게 다시는 쉼을 강탈당한 노예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강력하게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죽이라!’고 까지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습니다.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순종하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출 6:7, 19:5-6).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주실 때 하신 말씀으로 ‘계약법전’의 중심입니다. 계약서를 써보셨을 겁니다. 계약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약이 지켜지려면 쌍방이 합의한 것을 깨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한 쪽이라도 계약을 파기하면, 그 계약은 무효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그중에서도 ‘안식일법’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법으로 인식했고, 안식일을 잘 지키면 나머지 하나님과 관련된 1계명에서 3계명까지를 온전히 지키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식일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할까 노심초사했고, 혹시라도 어떤 행동이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구체적인 시행령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세칙들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안식일과 관련된 법규는 모두 39가지로 알려졌는데, 농사에 관한 것으로는 씨 뿌리기, 밭 갈기, 추수하기, 거두기, 타작하기, 까불기 고르기, 빻기, 체질하기, 반죽하기, 굽기, 목축에 관한 일로는 털깎기, 희게 하기, 빗질하기, 물들이기, 실 뽑기 베틀에 실 걸기, 실 짜기. 실 제거하기, 매듭 매기, 매듭 풀기, 바느질하기, 가죽 찢기, 덧 놓기, 죽이기, 가죽 벗기기, 소금 치기, 선 긋고 재단하기, 가축털 제거하기, 알파벳 두 자 이상 쓰고 지우기, 건축하기, 허물기, 불 피우기, 불 끄기, 망치질하기 2미터이상 운반하기 등등입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어기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죄를 지을 수 있는 이들은 유목민으로 살아가던 일반 백성이었고, 당시의 제사장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들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안식일 법은 해방과 자유의 법이었는데 본질을 상실하고 백성을 억압하는 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행위는 그 당시 안식일 법과 종교지도자들의 잣대로 보면 ‘명백한 안식일 법 위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실 리 없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활동을 예의주시하며 음모를 꾸미는 이들은 어떤 구실을 잡아 예수님을 고발할까 유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실 리 없는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은 한가운데 서게 하시고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하는 이들을 향하여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는 것이 옳으냐?” 묻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은 ‘안식일 법’의 본질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은 예수를 고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식일은 선을 행하는 날이며, 생명을 구하는 날이다. 자유와 해방의 날이다. 그러나 너희는 악을 행하고, 생명을 죽이고 있다.”는 도발입니다. 손 마른 사람(곰배팔이)의 병은 이미 오래된 병입니다. 안식일이 아니라 내일 고쳐주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리기가 급했으면 어제 고쳐주어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치유의 기적을 전하는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의도를 아시고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한 사건은 예수님을 죽음의 길로 내몹니다. 안식일 법을 어겼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수님도 모르지 않으셨을 것이고, 제자들 역시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미숙한 행동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저도 만일 제가 합리적으로 학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자 했다면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 있는 신비’ 그래서 ‘알 수 없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상상입니다만 그 당시에 제가 거기에 있었고, 예수라는 청년을 무척 좋아해서 그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면, 33세의 예수가 회당에서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극구 말렸을 것이고, 기어기 안식일 법을 어겨가면서 병자를 고쳐주었을 때에 ‘미래를 도모하지 않고 미련한 짓을 했다.’고 꾸짖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합리적인 것으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안식일 법을 어기심으로 십자가의 길을 향해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신 것입니다. 십자가 고난이라는 통과제의가 없이는 인간의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그 길을 피하고 싶었지만, 다른 방법이 있기를 바랐지만, 그 방법 외에는 하나님도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단 하나의 방법, 그것은 하나님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신의 죽음,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합니까? 무기력한 하나님만 본다면 우리는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에서 멈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둔 시점에서 죽음 뒤에 부활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계약의 본질을 회복시키려면 “지금 내가 죽음의 길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법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안식일 법의 본질’을 회복하시기 위해, 인간이 훼손한 안식일 법을 죽이시기 위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본질을 회복하는 신앙은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본질 앞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신앙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이번 사순절기에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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