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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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멘(limen)의 시간(마가복음 1: 9-15)

  • 관리자
  • 2017-03-12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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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멘(limen)의 시간
마가복음 1: 9-15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이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주님의 고난을 돌아보는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이며 교단에서 제정한 청년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어둠 속에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통과의례’였습니다. ‘죽음’이라는 통과의례 후에야 비로소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수필가 민태원(1894-1935)은 ‘청춘예찬’이라는 유명한 글에서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라고 했지만, 과연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청춘,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가슴 설레게 살아갈 수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청년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을 ‘통과의례’로 봐야만 희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청년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있는 대한민국과 우리 모두에게도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이 ‘통과의례’라는 용어에 담긴 의미가 되겠습니다.

 

▪현관(玄關)

 

수수께끼를 하나 내겠습니다.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건물 내부로 들어갈 준비를 하기도 하고, 건물 밖으로 나갈 준비도 합니다. 건물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공간, 그것은 무엇일까요? 예 바로 현관(玄關)입니다. 그래서 현관은 ‘안과 밖의 경계에 있는 가물가물한 장소’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자 ‘현(玄)’은 누에가 고치를 치기 위해 자신의 입에서 실을 뽑는 행위와 누에가 고치 안에서 변신해 나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형상화한 단어입니다. 누에는 몸을 8자로 움직여가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실을 뽑아냅니다. 그 움직임은 워낙 작고 미미하고 여려서 잘 알 수 없습니다. 이 ‘작고 여린’이라는 뜻을 가진 문자를 ‘요(幺)’라고 부르며, 이 작은 행위를 지속하여 고치를 지어 마침내 나뭇가지에 매달린 형상을 ‘현(玄)’이라고 합니다. 밖에서는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천지개벽하는 변신이 일어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나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누에가 나비가 되기까지의 그 ‘가물가물’한 과정을 ‘현(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현관’이라는 말이 단순한 출입구나 신발을 벗어놓는 장소로 여겨지지만, 본래는 불교 사찰의 첫 번째 문을 ‘현관’이라고 불렀습니다. 속세를 떠나서 영원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출발점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라틴어로 현관을 의미하는 단어는 ‘리멘(limen)’입니다. 리멘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하고 힘든 기다림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곳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가졌던 광야 40일의 시간은 리멘의 시간이며, 부활을 앞둔 십자가 고난의 시간도 리멘의 시간이요, 청년기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시간 역시도 리멘의 시간입니다. 리멘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만 안이 되었든 밖이 되었든 문지방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아무리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해도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limen의 과정이라 여기시고 넉넉하게 이겨나가시길 바랍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상황을 변화시킬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리멘의 시간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통해서 리멘의 단계로 들어섭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베풀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가죽 띠를 찼으며, 메뚜기와 야생 꿀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주식과 의복은 당시 가난한 떠돌이들이 먹고 입던 것이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모습은 당시 거만한 유대종교지도자들과는 정반대였으며, 이러한 모습에 끌린 이들은 예언자의 말을 듣고자 요단 강가로 몰려들었고, 그의 설교를 들은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상징으로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물세례에 가난한 이들은 열광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값 없이도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었고, 지금도 우리도 값없이 예수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받으신 후 예수님은 또 다른 리멘의 단계로 들어섭니다. 그것은 바로 광야 40일의 금식기도입니다. 광야로 물러가신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증하며, 사탄의 시험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비로소 세상으로 나아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공생애를 마감하실 즈음에는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무덤에서 죽음의 시간을 보냅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는 말씀은 ‘metanoia’입니다. 이 의미는 단순히 ‘신의 은총을 얻기 위해 고해성사’하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꿈으로 타성에 젖어있는 자신의 타성적인 세계를 떠나 새로운 리멘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metanonia’는 예수님이 사용하던 아람어로는 ‘타브(tab)’이며, 히브리어로는 ‘슈브(shub)’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회개를 촉구할 때 ‘슈브’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슈브는 ‘돌아오라,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람어 ‘타브’에는 그리스어 ‘메타노니아’에서 발견할 수 없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맡긴 사명을 깨닫고,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를 언어학자 배철현 교수는 ‘신의 DNA를 회복하라!’로 해석합니다. 참으로 멋진 말 아닙니까?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미션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하고, 우리 속에 감춰져 있던 신의 DNA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계신 모든 분에게 ‘하나님의 DNA’를 심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어있다는 말씀은 이런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청년 주일을 맞이한 청년 여러분, 기죽지 마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신의 DNA를 발견하시고, 회복하십시오. 넉넉히 세상을 이겨낼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이곳에 계신 모든 분에게 이뤄지시기 바랍니다.

 

▪물러섬과 나아감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광야로 물러서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물러섬의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러섬의 시간은 나아가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러섬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증한 후에 세상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잠시 세상으로부터 물러나는 시간, 타성에 젖어있는 자신으로부터 물러서는 시간, 묵상의 시간과 기도의 시간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터키를 중심으로 기원후 4세기 이후에 등장한 동방그리스도교(동방정교회)에서는 묵상을 ‘테오리아(Theoria)’라고 합니다. 즉, ‘Theo(신) + ria(합일) = 신과 합일되는 깨달음을 위한 단계’가 묵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상은 ‘자신의 마음을 깊이 보는 것’입니다. 분주하고, 바쁘고, 뭔가에 쫓긴다면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습니다. 현대인들의 비극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깊이 볼 겨를없이 숨 가쁘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옆 사람이 뛰어간다고 너무 겁내지 마십시오. 자신의 마음을 살피면서 천천히 살아도 늦지 않습니다. 빨리 먼 길을 가는 것보다, 천천히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물러섬’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물러섬의 시간은 종교적인 행위로서 기도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독서, 산책, 음악 등 다양한 형태의 물러섬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러섬의 목적은 나아감입니다. 더 새로운 걸음을 내딛기 위한 멈춤이 물러섬이기 때문입니다.

 

▪리멘의 시간

 

그렇습니다. 리멘의 시간은 통과의례의 시간이며, 이 시간을 보내지 않고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시간은 아주 큰 변화의 시간이지만, 꼭 요란스러울 필요는 없습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현(玄)의 과정’처럼 아주 조용하고 가물가물해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리멘의 시간은 광야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광야의 시간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단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모두 힘겹습니다. 이 세상을 넉넉히 이겨나가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리멘의 시간을 통해서 자기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DNA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문지방을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회개의 시간인 ‘메타노니아’, 하나님의 DNA를 회복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누에가 고치 속에서 꿈틀거리며 ‘요(幺)’의 시간을 지낼 때 그는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멘의 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리멘의 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리멘의 시간에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떨쳐버리고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누에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치의 순간’, 그것이 우리에게는 ‘리멘의 시간’입니다. 사순절기를 보내면서 한 걸음 물러서셔서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는 리멘의 시간을 가지시고, 다시세상으로 나아가시어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 거듭남은 어느 봄날, 나비가 되는 급격한 변화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실을 뽑아내기를 멈추지 않는 ‘요(幺)’의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니코스 카쟌차 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으면서 리멘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르바의 삶의 태도를 압축한 아주 짧은 문장이 있습니다.

 

“산투르를 치려면 온갖 정성을 산투르에만 쏟아야 해요, 알아듣겠어요?”

 

조르바는 산투르라는 악기를 연주할 때에는 거기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산투르를 연주할 때에는 무슨 질문을 해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열정을 다해서 몰입합니다. 조르바는 집게손가락 반절이 잘린 상태인데, 도자기 만들기에 몰입했을 당시 녹로를 돌릴 때 집게손가락이 걸리적거려서 손도끼로 잘라버린 것입니다. 이런 열정, 아주 작은 일뿐만 아니라 매사에 조르바는 열정적으로 몰입합니다. 이렇게 몰입하는 시간, 이것이 리멘의 시간이 아닐까요? 이 글을 읽고 반성하며, 음식을 먹을 때 거기에만 집중을 해봤습니다. 그 후에 쓴 짧은 글입니다.

 

먹는 것에 집중하니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던 맛들이 느껴진다.
칼국수를 먹으면서,
깍두기의 맛은 어쩌면 그렇게 오묘한지
칼국수에 왜 애호박이 빠지면 안 되는지 비로소 알았다….

 

너무 늦은 깨달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리멘의 시간’을 갖고 나니 제 삶 전반을 돌아보며 회개하게 되고, 새롭게 다짐하게 됩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 사순 절기에 잠시 세상의 분주함에서 물러서는 ‘리멘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리멘의 시간은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입니다. 이 시간이 없이 우리는 나비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DNA 속에 숨겨놓으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며, 신의 뜻과 합일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나비처럼 하늘을 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보물찾기’ 놀이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이 세상에 잠시 소풍 온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소풍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보물찾기’입니다. 보물을 숨기는 목적은 꼭꼭 숨겨서 못 찾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물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흥겨운 놀이입니다. 그래서 ‘리멘의 시간’은 행복한 시간입니다.*

 

기도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봄과 같은 푸른 청년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붙잡아 주시어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또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선택하고 결단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지혜의 영을 더해 주셔서, 옳은 것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리멘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DNA를 회복하게 하시고, 리멘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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